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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BUMA 요부마 Mar 03. 2024

"엄마가 이제 너를 안 보겠대."

엄마가 자식을 버릴 수 있을까

제인과 조시는 20대에 교회 모임에서 만났다.

조시는 미국 동부의 독실한 크리스천 집안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사이가 매우 좋았다. 

제인은 남아프리카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아메리카 드림의 꿈을 안고 혼자 미국에 왔다. 

조시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용기 있는 제인에게 끌렸고 데이트를 신청했다. 제인은 처음에 거절했지만, 상냥한 조시에게 마음을 열였다. 

그러다 조시는 텍사스에서 일자리 제의를 받았다.

"제인, 나 텍사스에 갈 것 같아. 혹시 나와 함께 가지 않을래?"

미국에 관광비자로 돌아온 제인은 불안정한 상태였고 당시 의지할 사람은 조시 밖에 없었다. 

둘은 텍사스에서 함께 생활했다. 

"조시, 나 임신한 것 같아." 

한 달 후, 작은 식탁에 마주 않자 저녁을 먹던 제인이 말했다.

"어떻게 하고 싶어?"

"낳고 싶어."

"그래, 그러자."

둘은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고, 2016년에 아들, 사무엘이 태어났다.

새 생명의 탄생에 대한 기쁨은 짧았다. 

제인은 조시에게 화가 났다. 아이를 낳으면 조시가 바로 혼인 신고를 하고, 자신은 그린카드(영주권)를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조시는 시간을 갖자고 말했다. 

조시는 제인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었다. 처음에 데이트를 거절했었고, 친구 사이로 지내기로 했었다. 솔직히 텍사스에 함께 가자고 했을 때도 제인이 승낙하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그녀가 함께 가겠다고 했을 때 기쁜 동시에 놀랐다. 텍사스에서 지낼 때도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짝사랑에 가까웠다. 그녀의 마음을 확실히 알기도 전에 아기가 생겼고, 아이를 낳으면 제인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알았다. 

하지만 사무엘이 태어나고 제인은 눈만 마주치면, "혼인신고는 언제 할 거야?"라며 다그쳤다. 

조시는 제인이 영주권을 받으면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자신이 설명하면 제인도 받아들이고 시간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인의 분노는 나날이 커져만 갔다. 

"네가 내 인생을 망쳤어!!!! 넌 날 이용한 거야!!!! 나쁜 새끼!!!!"

제인은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며 욕을 했다. 

조시는 충격을 받았다. 불안정한 제인에게 사무엘을 맡길 수 없었다. 

결국 짐을 싸서 부모님이 있는 로드아일랜드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셋은 조시의 부모님과 1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를 빌렸다. 조시가 일을 하는 동안 제인이 사무엘을 돌보기로 했다. 대신 조시의 엄마인, 메리가 일주일에 두세 번씩 들러서 도와주기로 했다. 메리는 오랫동안 크리스천 학교의 교장으로 일했다. 아이들에 대해서라면 경험과 지식이 풍부했다. 위탁 가족을 돌보는 단체에서 자원봉사도 30년째 하고 있다. 조시는 메리가 사무엘과 함께 있어주어 마음이 조금 놓였다. 

처음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자 제인은 메리가 자신을 무시한다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사무엘에게 하는 행동들에 대해 메리가 지적을 한다는 것이었다. 

메리 역시 제인이 사무엘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걱정스러웠다.

제인은 아기보다 자신의 감정에 집중했다. 사무엘 앞에서도 조시에게 소리를 지르고, 심하면 조시를 때렸다. 사무엘은 고작 한 살도 채 되지 않았지만, 둘의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

제인은 사무엘에게도 부드럽기보다 강하고 센 엄마였다. 

아들 가족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메리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사무엘이 태어난 지 일 년 반이 되었을 때, 조시와 제인은 헤어지기로 결정했다. 

사무엘은 아빠인 조시와 살기로 했다. 메리와 그녀의 남편인 팀은 아들과 손자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메리는 사무엘에게 사랑을 주고, 보살펴주고 싶었다. 

제인은 사무엘과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만났다. 제인은 '그룹홈'이라는 가정폭력이나 불화로 집을 나온 여성들이 지내는 임시거처에서 지내며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다. 

제인과 사무엘에 대한 연락은 메리가 맡았다. 조시와 제인 사이에는 여전히 감정적인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더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5년이 지났다.

사무엘은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랐다. 친척 형들과 함께 성장하며 배려심이 많았다. 크리스천 커뮤니티에서 자라 신앙심이 깊고 예의 바르다. 엄마의 피를 물려받은 것인지 음악과 춤에 대한 재능을 타고났다. 


조시는 카렌이라는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겼다. 카렌도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둘은 비슷한 영화, 책을 좋아했다. 조시는 카렌과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동시에 설레었다. 제인과의 사랑이 뜨거운 불에 손을 넣은 기분이었다면, 카렌은 불에 손을 가까이 대고 온기를 느끼는 것 같았다. 전 파트너와의 사이에 자녀가 있다는 점도 서로에 대해 더 이해하고 배려하도록 하는 요소였다. 둘은 서로를 사랑했다. 

조시는 당장이라고 카렌에게 "결혼하자"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메리가 말렸다. 메리는 아들인 조시가 새로운 사랑을 찾은 것은 기뻤지만, 혹시나 손자인 사무엘에게 더 큰 상처를 주게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조시에게 일 년 동안은 카렌과 서로를 알아보라고 말했다. 

조시도 그동안 사무엘과 메리와 톰이 겪은 힘든 시간을 생각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추수감사절에 조시는 카렌과 그녀의 두 딸을 만났다. 잔뜩 긴장했지만, 두 딸은 조시에게 호의적이었다. 아이들은 카렌처럼 아름답고 밝았다. 

크리스마스에 조시는 사무엘을 데리고 카렌의 부모님이 초대하는 저녁 식사에 참석했다. 카렌의 가족들 사이에서 사무엘은 환영받는 존재였다. 

그때까지는 모든 게 수월했다. 


새해가 되었다. 

화요일 오후, 제인은 평소처럼 메리의 집에 가서 사무엘을 데리고 나왔다. 항상 둘이 이른 저녁을 먹는 '칙필레'에 가서 치킨 너겟과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해 테이블에 앉았다.

"사무엘, 지난주는 어땠어? 학교에서 별일 없었어?"

"좋았어요. 지난주에 멜리사랑 지젤이랑 바다 보고 왔어요."

"멜리사랑 지젤? 학교 친구야?"

"아니요. 카렌 아줌마 딸이요."

"카렌? 아빠 여자친구?"

"네."

"그 여자를 만났어?"

"네."

"......."


그날 메리는 제인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앞으로 사무엘을 보지 않을 거예요. 내 인생을 살기도 벅차요. 사무엘이 18살이 되면 그때, 나를 찾아오겠지요.'

메리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무슨 말이야. 다시 생각해 봐. 사무엘은 상냥하고, 사랑이 넘치고, 아름다운 아이야. 그 아이에게 이렇게 하면 안 돼. 엄마가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무엘이 받을 상처를 생각해 봐.

제인도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슬퍼했잖아. 자신이 받은 상처를 아이에게 주면 안 돼.'


하지만 제인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3주가 지났다.

사무엘이 메리에게 물었다. 

"왜, 이번주도 저번주도 엄마가 날 안 보러 와요?"

메리는 사무엘에게 설명해 주기로 했다.

"아마도, 엄마는 아빠가 자신에게 묻지 않고 새 여자친구에게 너를 만나게 한 것에 대해 화가 난 것 같아.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 사무엘, 네 잘못이 아니야. 엄마와 아빠와의 문제야. 이렇게 되어 미안하구나."

메리를 가만히 쳐다보던 사무엘은 그녀를 안아주며 말했다.

"괜찮아요.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어떻게, 엄마가 자식을 안 보겠다고 할 수 있지?' 

늦은 저녁, 메리에게 제인이 더 이상 사무엘을 보지 않겠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내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생각이었다. 

내가 메리와 사무엘을 처음 만난 건, 5년 전 동네에서였다. 이후로 가족처럼 가깝게 지냈다. 메리와 조시에게 제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도 그만큼 오래되었다. 

메리는 속이 깊은 사람이라 자기 마음을 말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외국인인 나는 그녀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고, 조용히 듣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제인과의 갈등, 손주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또한 싱글 대디였던 조시는 오랫동안 부모 집에 살면서 성인 남자로서 답답한 부분들이 있었고, 또래였던 나에게 자신의 고민에 대해 편하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조시가 제인을 만났던 날부터 어떤 걱정과 갈등이 있었는지, 카렌과의 만남부터 지금 그가 얼마나 그녀를 좋아하는지를 다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다. 

반면 제인과는 오가며 인사를 주고받은 것 외에는 그녀가 말하는 자신의 입장을 들어본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은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진심을 알 수 없다'는 이유다. 

'미국인과 혼인으로 비자 취득'은 미국에서 체류가 불안정한 여성이 자주 받는 유혹이기도 하고, 오해이기도 하다. 그건 제인과 조시 둘 밖에 모른다. 어쩌면 본인 밖에 모른다. 제인이 조시를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비자를 받기 위해 그의 사랑을 이용했는지는 그녀 자신만 알 거고, 어쩌면 한때는 진짜 사랑을 느꼈지만 그게 지속되지 않았거나, 조시가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 그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는지도 모른다. 이건 너무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다. 


하지만 '사무엘이 카렌을 만났다'는게 어떻게 엄마가 자식을 보지 않겠다는 결론으로 도달할 수 있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사무엘이 감당하기에는 잔인하고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어른들의  갈등이던,  제인 자신이 본인의 삶에 집중하기 위해서건 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운전을 하고 가다가, 나도 나단이에게 비슷한 짓을 한 경험이 떠올랐다.

출산하고 3개월 정도 지나 산후우울증에 걸려, 어린 아기를 데이케어에 일주일에 세 번, 3시간씩 맡긴 적이 있었다. 그때 나 먼저 살아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에게 맡겨진 아이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나단이가 네 살때는 남편과 싸우다가 집을 나간 적이 있다. 아침에 나가서 친구네 집에서 눈물 펑펑 쏟으며 하소연 하고, 호텔 방이라도 잡을까 하다가 아이 생각이 나서 저녁 6시쯤 다시 돌아왔다. 

네 살이면 부모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을 다 안다. 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 아이는 분명 두려웠을거다.


엄마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아이에게 '최고의 선택'인 것은 아니다. 알면서 현재에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리고 그 선택이 주는 대가는 주로 선택을 한 어른이 아니라 아이가 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어쩌면 제인은 두세 달 뒤에 화가 풀려 다시 사무엘을 보러 올지도 모른다. 아니, 엄마 입장에서는 꽤 확신한다. 하지만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사무엘이 받은 상처는 치유될 수 있을까?  화가 난다고 나를 버리고 간 엄마를 믿을 수 있을까, 기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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