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곤이와 근이

근이의 눈물

by 강쌍용


내 친구 곤이와 근이



무덤덤하게 친구를 내려다보는 곤이의 표정이 무심했다. 약간 취한 듯한 근이의 손이 떨리면서 잔을 채웠다. 뒤에서 누가 밀어 재끼 듯 참고 있던 말문을 기어이 뱉었다. 퉁명스러웠다.


“실컷 마시도록, 많이 부~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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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곤이와 근이는 사촌지간이다. 근이는 칠은 집 할매를 맨날 곤이 할매라고 불렀다. 지도 할매의 같은 손자이면서 스스로 차별을 두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근이를 보고 “니 할매는 누고?” 하고 물으며 가끔 놀리기도 했다. 이런 것이 못마땅했던지 곤이는 자기를 형이라 부르지 않는 근이를 늘 언짢아했다.

아무튼 둘은 사촌이면서도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슨 악감정이나 특별히 싫은 이유가 딱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쥐띠 동갑이라도 곤이가 두어 달 생일이 빨랐으니까 그렇게 우길 수 있었다.

사실 이 핸디캡 때문에 근이는 번번이 손해를 본다고 여겼다. 그러나 곤이는 오히려 동생인 근이가 말을 함부로 한다고 불평을 했다.


“야, 인마 내한테 니가 뭐꼬? 형이라 해야지.”


그러면 근이는 아니꼬운 듯 대꾸했다. 거기에는 곤이에 대한 여러 가지 불만과 조롱이 버무려진, 딴에는 불합리한 모순을 타개해 보려는 나름의 항변이 함께 섞여 있었다.


“니가 무슨 형이고? 한동갑인데!”


이 때문에 근이는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다. 어른들도 ‘하루가 어디고? 형은 형이야!’ 하고 타이를 때마다 주둥이만 만발이나 삐질 뿐 좀처럼 반격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렇게 사사건건 부딪치다 보니 자주 싸우기도 했다.

둘은 생김새도 대조적이었다. 키는 엇비슷했지만, 곤이는 짙은 눈썹에 선이 굵은 호남형으로 마치 홍콩 배우 주윤발을 연상케 했다.

그에 비해 근이는 호리호리한 체구에 물 찬 제비같이 동작이 빠르고 민첩했다. 그렇다 보니 형인 곤이는 씨름이나 뜀박질을 해도 근이를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

형이라고 늘 큰소리쳤는데 노상 나가떨어지니 자존심이 상했다. 이런 날 만약에 근이가 걸리면 무조건 작살을 냈다. 이래도 두들기고 저래도 두들기는, 근이는 말 그대로 곤이의 동네북이었다. 이래저래 앙금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근이가 매번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다툼이 심해지다 보면 먼저 주먹을 날리는 경우는 주로 성질이 급한 곤이였다.

일격을 당한 근이는 맞잡고 싸우자고 해도 주변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어른들이 하도 “형한테 그러면 못쓴다.”라고 하는 바람에 주눅이 들어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럴 때면 근이는 으레 결투 장소로 가서 정식으로 싸우자고 제의했다. 곤이는 따라가자니 근이한테 두들겨 맞을 것 같고, 안 가자니 꽁무니를 뺀다고 할까 봐 아주 난처한 처지가 되었다.

싸움은 중간에 흐지부지되면서 싱겁게 끝나는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성사되었다. 대척점에서 팽팽하게 기싸움 벌이는 곤이의 자존심과 근이의 복수심이 빚어낸 산물이었지만, 우월을 가려야 하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 흥미진진한 싸움을 부추기는 거간꾼들의 노력도 톡톡히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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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결투가 시작되는 곳은 마을에서 벗어난, 주로 붕개 새미 근처 자갈밭이었다. 나지막한 바위와 높은 밭 언덕이 앞뒤로 버티고 있어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고 웬만큼 소리를 질러도 들킬 염려가 별로 없었다.

곤이와 근이가 결투장으로 가면서 서로 벌리는 말싸움도 볼 만했다. 기가 죽지 않으려고 입에 거품을 물 때는 거간꾼조차 끼어들 틈이 없었다.

도중에 으르렁거리며 몇 번 치고받는 흉내를 냈지만, 그 정도는 약과여서 겨우 탐색전에 불과했다.



씩씩거리고 도착하면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먼저 선수를 치는 쪽은 역시 곤이였다.

벌겋게 달아오른 주먹이 먼저 근이의 대갈통을 노렸다. 이를 간파한 근이가 잽싸게 피했다. 허공을 가른 곤이의 주먹이 머쓱했다. 곧이어 근이의 모가지를 잡고 헤드록을 걸기 위해 접근했지만 날랜 근이가 여기에 걸려들 리 없었다. 곧이어 근이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두 번의 선제공격에 실패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곤이를 향해 근이가 돌진했다. 곤이의 열려있는 가슴팍을 보고 꽂아 넣은 이단 옆차기가 보기 좋게 성공했다. 순간 곤이는 뒤로 자빠지며 나뒹굴었다.

구경하던 아이들이 와! 하고 대세를 결정지은 듯 함성을 질렀다.

그랬다. 유리한 상황이라도 영리한 근이는 함부로 달려들지 않았다. 곤이가 주로 접근전을 시도하는 인파이터라면 근이는 바깥쪽을 돌다 치고 빠지는 전형적인 아웃파이터였다.

‘잡아야 이긴다.' 그리고 ' 떨어지지 않으면 진다.’라는 각자의 승리 방정식이 거듭되는 전투 속에 축적되어 있었다. 이렇게 습득한 교전규칙을 곤이와 달리 근이는 철저하게 지켰다.

다시 대시를 시도한 곤이의 안면에 날쌘 근이의 주먹이 먼저 명중했다. 아이들의 눈깔이 일제히 곤이의 얼굴로 향했다.


“터졌나? 코피!”


아~ 곤이가 쪽팔리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지고 뒤로 돌아앉았다. 근이가 저돌적인 공격 자세를 다시 취했지만, 코피를 직감하고 그대로 멈추었다.

아이들이 곤이에게 우르르 몰려 갔다. 마른 찌 검지를 둘둘 말아 곤이의 콧구멍에 대충 쑤셔 넣었다. 따가웠던지 몸부림을 치며 곤이가 발악했다.


“니, 도망치지 말고 거기 딱 섰거라!”


일종의 종선 선언이었다. 근이는 꿈쩍 안고 있는데 혼자 허풍을 떨었다. 빈소리만 허공으로 날아갔다.


잔을 올리고 조문을 마친 친구들이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이쪽을 응시하는 곤이의 영정이 흐릿했다. 뿌연 안개가 끼인 것 같았다.

상주인 근이가 친구들의 손을 일일이 잡았다. 촉촉한 눈가를 숨기느라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곁에서 빈소를 지키며 의젓하게 서 있는 꼬마 상주가 곤이의 손자라고 했다. 한눈에 보아도 붕개 새미 끝에서 결투를 벌이던 곤이 할배를 쏙 빼닮았다.

근이가 코로나로 입을 막고 있던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 곤이 형님, 너무 일찍 간 기~라!


"......!,......!!!"


"내가 곤이 살아 있을 때 형님이라고 한번 못 불러 봤다. 아이가?"


가뭇하게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친구들의 술잔을 적셨다.

흐느끼던 근이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쟁여 놓은 소리는 깊고 짙었다.

실금실금 피어오르던 향이 곤이의 콧등을 스치더니 이내 사라졌다. 지난 이야기에 밤은 점점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