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 아재와 돛배

"돛배는 바람을 다스리는 일이야"

by 강쌍용



학이 아재와 돛배




배는 남산 쪽으로 갈지자를 그으며 힘겹게 나아갔다. 역풍을 돛에 담아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가늠해서 시의적절하게 아릿 줄을 당겼다 풀기를 반복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이런 고난도의 기술이 없으면 배를 띄우기조차 쉽지 않았다.

배가 탱탱하게 바람을 맞고 가다가도 옆에서 치는 바람을 제대로 품지 못하면 돛 폭은 금세 울어버렸다. 이때는 배의 방향을 얼른 바꿔 사면으로 바람을 받게 해주어야 했다.

이렇게 배가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하-침질이라 했다. 이런 기술을 제대로 구사해야 사람들은 돛배를 다룰 줄 아는 뱃놈이라고 인정해 주었다.




힘들게 하-침질을 거듭하던 배가 방향을 돌린다고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수면을 타고 미끄러졌다. 바야흐로 제대로 된 뒤바람을 받은 것이다. 돛 폭을 있는 대로 부풀린 돛배는 그야말로 쏜살같이 질주했다.

축 강 끝으로 몰려나와 구경하던 아이들이 일제히 손뼉 치며 탄성을 질렀다.

오른쪽으로 약간 기운 배는 거의 타락까지 물에 잠길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속도를 냈지만 학이 아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태연하게 아릿 줄(바람의 방향을 잡기 위해 돛에 매단 줄)을 잡고 따리(배의 방향타)를 틀며 오히려 유유히 속도를 즐겼다.

돛배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가 더 크게 철벅거렸다. 그래서인지 배의 속도가 한층 더 빠르게 느껴졌다.

포말이 만들어낸 뱃길이 뒤따라온 파도에 묻히는 속도만큼 배는 앞으로 또 나아가며 새로운 뱃길을 냈다. 바람을 잔뜩 받은 돛 폭은 찢어질 듯 부풀어서 보기에도 위태했다. 이를 보고 있던 한 녀석이 놀란 듯 중얼거렸다.


“와! 간첩선보다 빠르다. 그자.”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녀석이 말을 받았다.


“학이 아재는 간첩선도 잡을 수 있겠다.”


맞장구를 치는 녀석의 눈알이 반짝였다. 구경하던 아이들이 생각에 잠겼는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덩치가 좀 크다 싶은 녀석이 대뜸 소리를 질렀다.


“니가, 간첩선 가는 거 봤나? 우리 아재는 저거보다 더 잘한다!”


난데없는 역정에 두 녀석의 입술이 일거에 얼어 버렸다. 먼저 말을 꺼낸 놈이 머쓱한지 대가리를 긁으며 눈만 멀뚱멀뚱했다.

아릿 줄을 잡고 있던 학이 아재가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갱문(갯가의 방언)으로 들어왔다.

배가 속도를 줄이기 위해 놓아 버린 아릿 줄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돛대에 실하게 묶었던 돛 줄을 풀자 돛 폭이 스르르 내려앉았다. 따리를 젖히며 학이 아재가 어깨를 약간 으쓱했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 영웅의 귀환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아이들은 저마다 영검도 없는 꿈 하나를 또 만들었다.


‘이따 크면 나도 학이 아재처럼 멋지게 돛배를 몰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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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오리가 떠나는 이맘때면 바람의 방향이 자연스레 바뀌었다. 춘풍이라 찬기 없는 샛바람은 동쪽에서 불어오기 시작했다.

이때는 수백 마리의 상괭이 떼가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가거나 아니면 먹이를 쫓는다고 대규모로 이동했다. 무리 지어 움직이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공곶이와 웃 꼬장 섬 사이로 이놈들이 빠져나가며 일으킨 물보라는 잠잠하던 바다를 온통 헝클었다. 거뭇거뭇한 상괭이 등이 수면 위로 솟을 때는 마치 수백 개의 검은 항아리가 물에 둥둥 떠서 제멋대로 굴러가는 것 같았다.

떼를 지어 몰려가면서 일으킨 탁한 거품 사이로 먹이 경쟁하던 갈매기들이 부지런히 머리를 꽂아 넣었다. 양쪽의 협공을 받은 멸치가 도망치다 번지수를 잘못짚으면 갱문으로 튀어 올랐다. 이때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파닥거리는 멸치를 재빠르게 양동이에 쓸어 담았다. 이러나저러나 삼중고를 겪어야 하는 멸치다 보니 애초부터 살아날 가망은 없었다.

상괭이 떼를 구경하던 아이들은 연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른들은 이것을 보고 날씨를 가늠하거나 어황을 예측하기도 했다.

지금은 이런 광경을 보는 자체가 쉽지 않다. 벌써 희귀종으로 분류돼 멸종 어종으로 보호받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상괭이가 지나가고 분위기가 시들해지면 학이 아재가 기다렸다는 듯이 댄마(발동기가 없는 작은 나무배)를 물에 띄웠다. 적당히 불어주는 바람이 배꾼(뱃 사람)의 본능을 자극한 것이다.

인물(배 선수)에 먼저 작은 돛대를 세웠다. 갱문 가를 천천히 벗어나면 뒷꼴(배 후미)에 큰 돛대를 세우고 돛을 매달았다. 그리고 따리를 꽂고 방향을 잡으면 학이 아재만이 할 수 있는 하-침질의 진수가 펼쳐졌다. 일종의 전매특허를 공개하는 셈이었다.


“아이고, 이 바람에 학이도 안 될 거다.”


아이들 뒤에 멀찌감치 떨어져 이를 지켜보던 어른들 가운데 누군가 빈정거렸다. 은근히 용심 섞인 비아냥이었다. 평소에 바라졌다고 자주 꿀밤 맞던 녀석이 또 나섰다.


“그러면 아저씨는 할 줄 압니까?”


당돌하고 모난 일침이었다. 대꾸를 예상하지 못하고 일격을 당한 어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안 그래도 한창 동생뻘인 학이 아재한테 자존심이 상해 있는데, 그냥 지나칠 리 만무했다.


“인마 이거, 이것 봐라! 어디서 어른한테 버릇없이 말대꾸고?

머리 소똥도 안 벗겨진 놈이!”


녀석도 지지 않았다. 학이 아재에게 집중한 아이들은 들은 체 만 체했다. 괜히 끼어들었다간 본전도 못 찾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소똥이 어디 있습니까? 다 벗겨지고 뒤통수에 조금밖에 없는데!”


이때 가만히 듣고 있던 다른 녀석이 '조금 있는 것도 있는 거다.' 라며 옆구리를 찔렀다. 이 말이 녀석의 염장을 질렀다.


“니는 인마! 가만있어라. 니 대가리 소똥이나 신경 써라!”


언쟁이 오고 가던 이 와중에 하-침질에 성공한 학이 아재 돛배가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고물 쪽에서 불어주는 뒤 바지 바람을 맞고 간첩선보다 더 빠르게 질주를 했던 것이다.

어른이 먼저 입을 닫았다. 기세가 오른 녀석이 머리를 긁으며 퍼뜩 일어섰다. 앉았던 자리에 마른 소똥 같은 버짐 가루가 부옇게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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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배는 말이야. 배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다스리는 일이야!”


학이 아재의 역삼각형 울대가 말을 할 때마다 꿀렁거리며 굴곡을 지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학이 아재는 말도 너무 잘한다고 생각했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은 돛배는 절대 전진할 수가 없어.

뒤로 밀려날 뿐이지.

그때는 옆으로 방향을 조금 틀거나 기다려야 해,

그래야 다시 바람을 받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어!”


그러고 보면 돛배가 나아가는 것이나 인생을 산다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돛배도 언제나 바람이 불어주는 것이 아니다. 인생도 늘 햇볕 드는 양지만 있을까? 지금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당장 새드엔딩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람이 다시 불어오는 것처럼 한발 물러서 잠시 생각해 보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난감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도 어딘가는 불빛이 있을 테고 구명줄 던져줄 누군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절망을 견디며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어려움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주는 거야.

돛배가 바람을 타고 항해하듯

우리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길은 반드시 있어!"


귀에 쟁쟁했다. 하침-질에 성공한 학이 아재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울림이 있었다. 거역할 수 없는 어떤 카리스마가 아이들을 주눅 들게 했다. 어설픈 대꾸나 반론을 감히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분위기를 압도했다. 아이들은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는 학이 아재가 거짓말 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곁에 있던 어른들은 나오지 않는 헛기침을 해댄다고 손으로 목을 감쌌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학이 아재 말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들이 빠져나간 갱문에 다시 나불(큰 파도)이 밀려왔다. 사람들이 미처 다 거둬들이지 못한 멸치 몇 마리를 주우며 녀석은 야무지게 다짐했다.


‘나도 크면 꼭 돛배를 멋지게 몰아야지!’


육지 쪽에서 날아온 갈매기 한 마리가 붕개 큰 여에 자리를 잡았다. 난파선 같은 바위에 부서진 흰 물거품이 돛배를 밀던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아무래도 오늘 밤에는 큰바람이 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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