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과 통조림
삼재와 쫄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한창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누가 맞장구를 쳤다.
“아! 맞다. 삼재도 있었다.”
“그래, 그, 누고? 쫄래도 안 있었나!”
며칠 전 고향 친구들의 모임에서 옛이야기를 나누다 우연찮게 나온 이름이었다. 기억도 정말 까마득한 이름이다.
삼재와 쫄래는 서로 이웃에 살았다. 타작마당과 맞댄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도단-집과 초가집이 서로 처마를 마주하고 있었다.
둘은 똑같이 육지에서 전학을 왔다.
삼재는 학교 소사 김 씨 아저씨의 외동아들이었다. 3학년 때 섬 학교로 발령받은 자기 아버지를 따라 이곳으로 왔다. 도시에서 살다 왔다고 뻐겼으나 어딘지 물어보면 늘 얼버무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 자부심인지 별 시리 위세를 부렸다. 삼재가 섬 아이들의 텃세를 누른 위세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생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거나 처음 보는 희한한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라면과 통조림이 으뜸이었다.
고추 색 삼양라면이나 손바닥만 한 국방색 통조림을 들고 나타나면 아이들은 하루 종일 삼재를 졸졸 따라다녔다. 귓밥만 한 생라면 쪼가리 하나 얻어먹으려고 갖은 비위를 맞췄다.
기분이 좋아진 삼재가 시혜하듯 쪼금씩 떼어주는 라면 쪼가리는 말 그대로 삽 살 거린 아양의 대가였다. 이것을 즐기는 녀석이 아니꼬웠지만, 라면 부스러기라도 얻어먹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손바닥에 찔끔 흘려준 수프를 약간 버무려 입에 넣으면 세상에 맛도 이런 맛이 없었다. 아까워 우두둑 씹지 못했다. 우물거리고 있으면 나중에는 멀건 죽이 되었다.
손바닥에 묻은 수프까지 훑고 나면 밍밍한 미원의 감칠맛이 삼재를 더욱 우러러보게 했다. 그때는 이런 삼재가 고마웠다.
통조림은 더 훌륭한 대접을 받았다. 작은 깡통에 지렁이 같이 그어진 이상한 그림이 미국 군인들이 쓰는 글이라 했다. 누가 보더라도 학교 변소 벽에 항 칠해 놓은 분필 낙서 같았다. 무슨 글인지 물어도 삼재는 끝내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마 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기분이 내키면 삼재는 간혹 통조림 뚜껑을 열어 맛을 보게 했다. 새끼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혀끝에 댈 때는 입이 오글거렸다. 구수한 단내가 폭삭하게 삭아서 전해오는 육질의 냄새는 입안을 온통 헤집었다.
재수가 좋으면 건더기도 조금 맛볼 수 있었으나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제만 먹는 삼재가 이때는 정말 밉상이었다. 아이들은 일부러 다마(구슬) 구멍을 파면서 흙바람을 일구었다. 그리고 미금(먼지)을 삼재 쪽으로 날렸다.
아이들은 부러운 라면과 통조림이 어디에서 생기는지 늘 궁금했다. 삼재는 자기 삼촌이 미군 부대 피엑스(상점)에서 물건을 파는 높은 사람이라 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별을 여섯 개나 달고 있다고 했다. 두 개 별이 양쪽 어깨에 붙어있고 모자에도 별이 두 개 붙어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번쩍번쩍한 별을 여섯 개 달아야 피엑스에서 물건을 팔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녀석은 제 기분대로 라면 쪼가리를 조금씩 떼어주거나 통조림 국물을 맛보게 했다. 언제나 그냥 나누어 주는 법이 없었다. 꼭 무얼 바라거나 심부름을 시켰다. 아니꼬웠지만 라면이나 통조림을 쪼금이라도 맛보려면 어쩔 수 없었다.
쫄래는 봉구 아저씨의 막내딸이었다. 위로 봉래 오빠가 있고 봉희 언니가 있었다. 봉구 아저씨는 돈 벌러 육지로 나갔다가 무슨 연유인지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바람에 쫄래도 다시 전학을 왔다.
몸이 마르고 약한 쫄래는 약간 어리숭하고 말이 없었다. 하도 얌전해서 있는 둥 마는 둥, 좀처럼 존재감이 드러나는 경우가 없었다.
하필이면 이런 쫄래를 삼재가 좋아했다. 쫄래가 타작마당에서 공기놀이하거나 고무줄을 뛸 때면 삼재는 늘 라면이나 통조림을 들고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그러나 쫄래는 이런 물건에 호기심이나 관심을 거의 두지 않았다. 이것이 삼재의 애간장을 태웠던 모양이다. 그날도 쫄래가 타작마당에서 고무줄 위로 폴짝폴짝 뛰었다.
삼재가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쫄래의 진짜 이름을 물어보고 자기한테 알려 주면 라면의 반을 떼어준다는 것이었다. 학교나 밖에서 하도 쫄래라고 불러대니 진짜 이름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삼재를 바보라 생각했다. 쫄래 한 테 자기가 바로 물어보면 될걸 애먼 라면만 잃을 것이라 여겼다.
아이들이 횡재라 여기며 우르르 쫄래에게 몰려갔다. 그리고 느닷없이 물었다.
“쫄래야~! 니, 금숙이 맞제? 조금숙 아이가?” 하며 막무가내로 다그쳤다.
당황한 쫄래가 영문도 모르는 채 안절부절못하고 배시시 웃기만 했다. 이것을 보고 예전부터 쫄래를 은근히 좋아했던 창구형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쪼…. 오~래애야, (쫄래야,)
저. 저. 저 얼~ 대로…!!! 마. 마. 라~지 마…~~ 라! (절대로 말하지 마라!)
아~~ㄹ. ㄹ…ㅏ. 지?”(알았지?)
숨이 찼다. 어떻게 하던 삼재의 수작을 막아보려는 창구형의 심한 말더듬이는 하염없이 늘어지며 시간만 낚았다. 마음이 급했다. 그럴수록 말문은 더욱 더디기만 했다. 삼재의 수작을 막기에 어림도 없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창구형이 쫄래에게 말을 채 끝내기 전에 녀석들이 전속력으로 삼재에게 달려갔다.
“삼재야~! 금숙이가, 맞다 하더라~ 조금숙!”
삼재 입이 하늘만큼 벌어졌다. 라면의 반을 뚝 잘라서 녀석에게 기분 좋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을 금숙이한테 갖다주라고 했다. 수프까지 몽땅 내어 주었다. 삼재가 그렇게 통 큰 녀석인 줄 처음 알았다.
아이들이 어릿거리는 금숙이에게 우글거리며 다시 몰려갔다. 그때부터 해가 지도록 온갖 아양을 떨며 금숙이를 따라다녔다.
“금숙아! 라~면 좀~ 도!”
어느 녀석도 금숙이를 감히 쫄래라고 부르지 않았다. 평소 쫄래를 짓궂게 했던 녀석들이 후회했지만, 소용 없었다. 수프까지 거머쥔 쫄래가 그렇게 예뻤다.
두 손을 뒤로 감추고 자꾸 뒷걸음치는 쫄래를 보고 창구 형도 같이 소리쳤다.
“그. 그…. 그~ㅁ~ 숙아? (금숙아?)
나... 나~~~ 아~도, 쪼~옴, 도~~!”(나도, 좀, 도!)
하도 소란스럽던지 무서운 일이 할배가 봉창 문을 열고 내다봤다. 돼지우리에서 애먼 돼지 새끼가 요량도 없이 캑캑거렸다. 갱문(바닷가)에 수줍게 핀 백합이 안갯속에서 고요했다.
라면 하나로 동심을 확 뒤집어 놓던 시절이었다. 막연한 기대에 도달하지 못한 어떤 욕구가 낡은 편철을 뚫고 나와 기억을 때리는 그런 멍한 기분이었다.
참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라 각자의 기억을 짜깁기하며 가까스로 맞춘 퍼즐이었다.
삼재, 그리고 쫄래!
우리의 유년을 함께했던 이들을 이렇듯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달고나 같은 끈적끈적한 부침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철저하게 잊힐 수 있는 것이라면, 나중에 기억될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비록 씁쓰름한 망각의 울타리는 열어젖혔지만 지난 일을 들추어내기에 세월이 너무 흘렀다.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유년에 대한 기억은 경외심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쓸 수밖에 없었다. 더 잊히기 전에 갈무리해놓고 싶은 욕심이었다.
그것은 적어도 동시대를 함께 했던 친구들에게 보내는 지극한 애정이기도 하다. 또한 뛰놀던 고향에 대한 추억을 나름대로 표현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
부끄럽더라도 숨기지 않을 것이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시절이었으므로 인해 기쁘게 쓸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