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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화백 Dec 06. 2022

애미는 세상에 굴복할 수 없다

기저귀와의 재회

  나의 작고 소중한 아들은 현재 38개월 차 인생을 살고 있다. 뭐든 신중한 누님에 비하면 성장 발달 과정에서 걸음마도 빨랐고 말도 빨랐다. 조잘조잘 어찌나 말이 많은지 대화하고 있자면 미소를 아니 지을 수 없는 아이이다. 그런 그가 단 한 가지 여타의 친구들보다 느린 것이 있다면 바로 배변훈련이다. 두 돌 즈음이 되자 어린이집에선 친구들이 하나둘씩 경쟁적으로 기저귀를 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아직 변기를 이용하고픈 의지가 없어 보였고 나 역시 때가 되면 알아서 떼겠거니 싶어 특별히 열심히 연습시키지 않았다.


그러다 슬슬 30개월이 넘어가면서 다른 친구들이 소변기에 서서 볼일을 보는 것을 보니 그것이 형아 된 도리라 스스로 깨달았는지 자연스럽게 그는 기저귀와 이별했다. 그래도 아직 똥만큼은 아무도 없는 곳에 서서 해결하길 원해서 매번 다시 갈아입히고는 있지만 내년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똥 변기에 그의 마음이 동하길 기다려 주는 중이다.


어쨌든 나는 육아와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유독 기다려주기를 잘하는 편인데 이는 아이들의 속도에 특별히 기대가 없어서 인 것 같기도 하다. 첫째도 학교 입학 전 한글 떼기에 전혀 열을 올리지 않았고 뭐든 때가 되어 스스로 의지가 생기면 하겠거니 싶어 빨리빨리 앞서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자다가 이불에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기저귀와 이별을 고했다고 생각하고 안심하고 지내는 중이었는데 2-3일에 한 번씩은 꼭 새벽에 침대 위에서 쉬를 하는 것이다. 평소 기다려주기 전문가인 나는 이불에 실수하는 것도 때가 되면 자연스레 없어지겠지, 허허허 하며 한결같이 세상 너그러운 엄마였으면 좋았을 테지만 일주일에 2-3번씩 아침마다 오리털 이불과 퀸사이즈 매트리스 커버 두 짝을 싸그리 벗겨내서 빨래하고 있자니 그 마음이 그저 녹록지만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행여나 내가 욱하는 마음에 자제력을 잃어 아이를 나무라진 않을까, 참을 인 자를 마음에 새기며 조용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것만으로 겨우 겨우 버티고 있었다.


남편은 아들의 실수가 두세 번 반복되자 자기 전에 다시 기저귀로 갈아입히고 재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만큼은 결코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가 몇 번 더 수고하고 말지 아이에게 밤마다 기저귀로 갈아입으라 하는 건 정말이지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36개월 아이의 자존심은 아닐 듯 하니 당연히 애미의 자존심이었다. 뭔가 이미 이별한 기저귀를 자기 전에만 다시 만나게 하는 건 세상에 굴복하는 것 같은 참담한 기분이었다. 때를 기다리다 그 시작이 늦어지는 것은 개의치 않으나 이미 해낸 일에 있어 뒤로 퇴보하는 것은 이상하게 용납할 수가 없다.


다행히도 그 후에 수차례 이불을 빨고 빨고 또 빨다 보니 어느새 실수 없이 연속 2주를 기록했고 이후 우리는 해외로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꽤나 고가의 리조트 호텔이었고 저녁을 짜게 먹었는지 아들은 끊임없이 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남들에게 피해 주는 걸 극혐 하는 성격의 남편은 심지어 한국이 아니었기에 더 아들의 쉬에 예민했다.

마침내 남편은 아들에게 잠들기 전 기저귀를 입자 권했다.


그때 나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마치 갈길을 잃은 듯이 흔들리는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아들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갑자기 일제강점기의 비장한 호국열사로 빙의했다.

'안돼. 여기서 무너질 순 없다.  내 아들의 쉬는 내가 지킨다'


그리고 세상 단호하게 말했다.


"안돼. OO 그런 애 아니야. 할 수 있어. 지금 쉬 한번 하고 자면 돼"


나름 비장하다 자부했지만 내 목소리와 눈동자는 사실 떨리고 있었다. 안된다고 강경하게 주장했다 만에 하나 내일 새벽 혹시라도 이 침대 위에서 축축하고 습습한 그 느낌을 맞닥뜨리기라도 한다면 어쩌지. 나 역시 아들의 방광과 요도괄약근은 내 소관이 아니기에 사실 호언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장하면서도 초조한 심경을 숨길수 없는 애미는 침대에 누워있는 아들의 다리를 연신 조물딱 거리며 남편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 바로, 쉬통 가져다줘"

애미는 진지했다.


그런데 남편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툴툴 거리며 쉬통을 가지러 돌아선 순간, 아들의 눈이 스르르 감기고 있었다. 이런.. 잠들기 전 그의 마지막 방광을 비워낼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떠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당황스러운 기분이란. 호국 열사의 나라 잃은 심정이 이런 것일까.


결국 나는 세상에 굴복했다. 무릎을 꿇고 잠든 아들의 팬티와 기저귀를 바꿔치기해 버렸다. 마음속으로 눈물이 또르르... 흐르진 않았지만 어쨌든 참담했다. 애미는 아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고급 리조트의 침대 매트리스와 맞바꾼 매국노가 된 것이다.


내 참담한 얼굴을 보며 여전히 남편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 저래"


흥이다. 췟.

난 조용히 남편을 흘겨보았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아들의 기저귀를 확인했다.

바삭했다.


"거봐! 안 한다고 했지!!! 물 좀 많이 마신다고 침대에서 쉬하고 그러는 애 아니라고!!!"


간밤에 잠든 아들의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했음에 더욱 죄책감이 들었고 호국 열사로 빙의했던 애미는 아들을 꼬옥 안아주었다.


여행중의 사랑스런 남매. 푹신한 침대위에 참사가 일어나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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