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화백 Oct 07. 2022

apple로고 아래엔 apple이 없다

모르는 게 약



  나는 주로 아이들 옷은 온라인으로 구매하는데 얼마 전 언제나 그렇듯 나를 유혹해오 sns 광고를 통해 무려 79% sale이라는 어마어마한 할인율을 자랑하는 아동복을 구매했다.  본래 가격은 무려 139,900원인데 할인해서 29,900원, 네가 결제를 안 하고는 배길 수 없을걸? 하고 말하고 있는 청자켓이었다. 물론 나는 29,900원이라는 가격일 때 보았고 실제로 139,900원에 판매적이 있는 건지, 그 가격에 이 청자켓을 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하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시멀리스트에 잔잔바리 소비왕인 나는 이미 결제를 마치고 있었다.


이맘때처럼 계절이 바뀌는 시즌에 아주 잠깐 이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지만 막상 이런 계절에 참 입을게 마땅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9살과 4살의 사이즈가 모두 있어서 남매 룩으로 맞춰 입힐 수 있는 장점까지 가지고 있었다. 가격도 어찌나 합리적인지 이미 구매했지만 계속해서 나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리고 국룰처럼 신나는 마음으로 택배상자를 뜯었다. 저렴이 청바지를 샀을 때 나는 시큼한 염료 냄새가 상당히 지독했지만 세탁하면 될 일이었고 청도 뻣뻣하지 않아 예민한 아이들에게 거절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후 남매에게 따로 또 같이 몇 번을 잘 입혔다. 남매가 같은 옷을 입고 함께 노는 걸 보면 그냥 흐뭇해졌다.

그러던 중 청자켓을 입고 둘이 나란히 서있는 뒷모습을 보며 남편이 말했다.


"pomme가  무슨 뜻인지 알아?"

"뭔데?"

"사과야. 아마 그럴걸?"

"아 그래..."


고등학교 때 불문과였던 남편이 아마도 전생처럼 희미해진 불어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는지 영혼 없는 말투로 나에게 알려줬다.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앞에 보이는 단어의 뜻을 왜 알려준 건지 모르겠지만 남편의 안물 안궁 정보 공급에 다시금 아이들의 옷을 빤히 보았다.


pomme라는 글씨 위로 귀여운 사과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과 그림 아래에 pomme라고 써져있다. 다시 말해 '사과 그림' 아래에 '사과'라고 쓰여있는 것이다.

마치 외워야 하는 단어 카드처럼 말이다.


다시 봐도 귀여운 뒷모습의 어린이들



순간 인터넷에서 숱하게 떠도는 외국인들의 한글 옷 짤들이 마구 떠오르면서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아... 입히지 말아야 하나?'


내 아이들을 웃음거리로 만들 수는 없다는 애미의 책임감 때문이었다.



이 사람들은 본인 사진이 작은 나라에서 수년째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겠지 생각하니 짠하다.


  물론 프랑스에서 입히지 않는 이상 문제 될 건 없다 할 수도 있겠지만 저 사람들이 설마 한국에서 입고 다녀서 이런 사진들이 찍힌 걸까? 우연히 그들 나라에 딸기 씨처럼 콕콕 박혀있던 한국인들의 눈에 띄었기에 사진이 찍힌 거겠지! 그리고 웃음거리가 되어 수년간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인터넷 망망대해에서 짤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는 거겠지.


알펜시아에 놀러 온 프랑스인 관광객이 이미 짠한 우리 아이들을 봤다면? (내 머릿속에선 이미 남매가 세상 짠한 처지가 되어 있었다.) 

서울 구석의 한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있는 프랑스인이 사과 청자켓을 입고 그 근처를 쏘다니는 순진한 딸의 뒷모습을 봤다면?


하지만 이내 다시 이성적으로(?) 찬찬히 생각했다.

'사과.. 사과.. 세계적 기업인 apple도 로고가 사과 모양인데 회사 이름이 apple이네?'

그러고 보니 그다지 어색한 뒷모습이 아닐 것 같기도 했다. 초일류 기업을 등에 업고 나니 갑자기 잠시간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 같았다. 외국인들은 같은 의미의 그림과 단어가 함께 있는 게 어색한 게 아닐 수 있겠다 싶었다. 애플도 로고가 애플이구만. 그저 받아들이는 문화의 차이인 건가?


그런데 나는 단순히 노인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인터페이스에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20대 후반부터는 쭉 갤럭시만 사용하는 아주미인지라 언뜻 애플 로고 밑에 apple이라는 문구도 함께 쓰이는지 여부가 바로 떠오르질 않았다. 결국 검색을 통해 애플은 어디에도 로고와 apple이라는 문구를 함께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에라이... 


기도 뭐하고 안 입히기도 뭐해졌다. 모르는 게 나을뻔 했다. 

누구야. 나한테 pomme가 사과라고 알려준 사람. 

언제나 그렇듯 기분 나빠지면 남편 탓, 기분 좋으면 내 덕분.  



매거진의 이전글 4살의 발 냄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