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거의 주말마다 집에 있는 날이 없고 월요일 공휴일이라도 있다 하면 무조건 여행을 가는 편이다. 이 날도 9살과 4살을 데리고 평창으로 향했고 호텔방에 짐을 풀고 4살의 신발을 벗겨준 후 침대에 앉혔다.
... 그런데 이건 무슨 냄새지?
어디선가 쿰쿰하고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분명 아는 냄새인데 사실 최근에는 맡아본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 냄새... 평소 4살의 머리에서 자주 나는 땀냄새와는 분명 다르고 4살의 궁둥이에서 풍기던 구수한 냄새 하고도 다른 그 어떤 설명하기 힘든 냄새였다. 사실 4살 아들에게서는 현재 9살 딸을 키우면서는 그다지 맡아보지 못한 냄새들이 많이 난다.
처음 아이를 갖기 전 막연히 나는 아들이 갖고 싶었다. 딸의 예민한 감정선을 내가 잘 보듬어 줄 수 있을지 조금 자신이 없었기도 했고 예쁘고 귀여운 딸의 옷 입히기보다는 감각적으로 아들 옷을 잘 입히는 엄마들을 보며 막연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저런 극히 사소한 이유들로 아들을 아주 잠시 원했었지만 내 뱃속의 아기가 딸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그런 생각을 언제 했냐는 듯 갑자기 딸이 좋아졌다.
내게 처음 찾아온 딸은 유아기에 너무도 유순하고 자기감정 표현이 서툴어 양육자로 하여금 이 아이가 현재 아무 불만이 없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성격이었다. (아기가 너무 울지 않아 눈물이 터지는 날에 영상을 찍어둘 정도)
반면 두 번째로 내게 찾아온 아들은 자기표현이 매우 명확하고 과하게 꾸밈없이 솔직하며 그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래서인지 쓸데없이 냄새까지 빠르고 정확하게 자신을 표현하려고 아우성인데 그 점이 상당히 힘든 부분이다.
왜 똑같이 씻겨도 4살은 벌써 머리에서 냄새가 연기처럼 올라오는 것이며 왜 방귀는 그토록 자주 뀌는 것이며 발가락 사이사이 틈에서 이런 당황스러운 냄새가 나는 것일까. 바로 안아 들고 비누로 빡빡 닦이는데 그 와중에 4살은 지금 나는 씻기 싫다, 내려달라, 물이 차갑네 마네 아주 본인 감정을 표현하느라 바쁘다.
내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발가락 틈새 발톱 틈까지 구석구석 뽀득뽀득 씻겼지만 여전히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 나 정말 환장하겠다 하면서 계속 4살의 발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저녁 시간 탕에서 놀면서 목욕을 30분 이상 하고 대추마냥 쪼글쪼글해진 발가락을 보며 이제는 없어졌겠지! 했지만 나의 오산이었다. 남편이 옆에서 도대체 왜 자꾸 그걸 맡고 있냐고 했지만 이상하게 자꾸만 내 코는 4살의 발바닥에 5분 간격으로 붙어있었다. 킁킁킁.
지독하고도 집요했다. 4살의 발 냄새란. 그리고 내 코도 집요했다.
9살 딸은 4살 동생의 과도한 자기표현이 마땅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과 욕구가 그 즉시 표현이 안되는 것은 나를 닮았다. 나 역시 불편함이 있거나 원하는 게 있어도 바로 표현하지 못하고 '이상하게 기분이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시간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보낸다. 그리고 상대방은 이미 상황을 다 잊어 갈 때쯤 '그때 당신의 이런 점이 또는 그때의 그 상황이 나를 불편하게 했었군' 하며 혼자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그 사실을 겉으로 내뱉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고 나서 또 바로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삶을 사는데 큰 불편감을 느끼지 않고 근 40년을 살아왔다. 이런 나이기에 1초 만에 표출되는 4살의 자기표현 방식이 사실 나에게는 많이 버거웠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나와는 너무 달라서 보는 것만으로 버라이어티 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내 코가 자꾸만 그의 발가락에 갖다 붙는 것처럼.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그 방법은 비단 말과 행동으로만 가능한 건 아니었다. 냄새로도 나를 알아달라며 아우성이다. 나는 또 이렇게 아이들을 보며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배웠다.
오늘도 나는 습관처럼 4살의 큰 머리와 토실한 엉덩이, 포도송이 같은 발가락에 코를 붙이고 킁킁댄다. 그 주장들을 최대한 수용해 보고자.
집에 돌아와 샌들을 두 번이나 세탁했지만 그의 자기주장은 너무도 강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