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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화백 Dec 13. 2022

그녀의 해맑음이란

그녀에게 욕심은 물욕뿐

  현재 초등학교 2학년, 내년이면 10살 3학년을 앞두고 있는 딸은 선생님들 사이에서 좋게 말해 '해맑다'고 평가받고 있다. 보통 선생님들은 학부모에게 안 좋은 말을 잘하지 못하시고 9살이 또 그렇게 진지한 평가를 받는 나이도 아니기에 큰 의미 부여를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요즘 나는 그녀의 '해맑음'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그녀는 1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1인 1악기 방침에 따라 플룻을 배우고 있다. 사실 초등학교 입학 후 악기 신청일에 애미가 까먹고 있다가 뒤늦게 신청하러 들어가니 이미 만만한 바이올린과 첼로, 타악기 등은 인원이 다 찼고 남은 건 클라리넷과 플룻 뿐이었다. 그나마 플룻이 클라리넷보다는 그 크기가 작아 보여 이거라도 해야겠다 싶었고 체구가 작은 나의 딸은 플룻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일단 1학년 1학기, 그녀는 플룻을 들고 서는 것도 버거워하여 플룻의 길이를 짧게 만들어 주는 어린이용 액세서리를 붙여 주었다. 그러나 사용을 하는 건지 아닌지 수업시간에 노는 건지 뭘 하는지 그녀는 1학년 말이 될 때까지 소리를 내지 못했다. 

역병이 창궐하여 모두가 두려워하던 코로나 초기에 마스크를 벗고 수업을 해야 하는 악기라 학부모들의 불만이 있었는지 중간에 원하면 바이올린 반을 증원하여 옮겨주겠다는 공지가 있었지만 플룻을 이미 구매하기도 했고 당시 역병에 크게 두려움도 없었거니와 기왕 시작한 건데 뭘 또 바꾸나 싶어 그냥 두었다. 


그 후 1년 동안 플룻 수리를 두 번을 맡기게 되었을 때 나는 그제야 딸에게 캐물었고 플룻으로 지팡이 놀이를 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때 당장에 때려쳤어야 하는 건가 싶지만 나는 그냥 두었다. 30만 원짜리 악기로 지팡이... 놀이를 왜 하는 걸까 싶었지만 아이를 딱히 혼내지는 않았다. (의외로 수리 비용이 무료여서 그랬나 보다)


2학년 2학기가 되었고 같은 반 다른 아이들은 플룻으로 제법 그럴싸한 곡을 연습하고 있다 했다. 그럼 너는 뭘 하고 있냐 하니 본인은 소리가 안 난단다. 1년 반 동안 소리도 내지 못한다는 사실도 사실이지만 학교에서 기악 시간에 혼자 딴짓하고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생각을 하니 이건 아니다 싶어 개인 레슨 선생님을 찾았다. 

레슨 선생님이 소리라도 내게 해주면 학교 진도에 따라는 가겠지 싶었지만 개인 레슨 6개월 차에 접었으나 아직도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는다. 심지어 과외시간마다 몇 번을 방 밖으로 들락날락, 화장실을 가네, 물을 마시네 아주 속이 뒤집어지는 모습만 보였다. 


학교에서 얼마 전 악기 단체곡 연주회를 한다는 공지가 올라와 학부모님들을 초대한다 했다. 딸에게 물었다.

"OO야, 너 소리도 안 나는데 어떻게 연주회를 해??"

"어 그냥 하는 척만 하면 돼"


..... 그렇구나 내 딸, 이미 세상 안에서 잘 묻어가는 법을 알고 있구나 훌륭하게도.


훌륭한 내 딸은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욕심이라고는 오로지 물욕뿐인 이 아이의 교육 방향을 어찌 잡아야 할지 매우 고민이 되었다. 

결국 학교 플룻 선생님께 딸이 플룻을 계속 유지하는 게 맞는지 냉정하게 지금이라도 다른 악기로 전향하는 게 맞을지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이번 발표회에서는 하는 척만 하면 된다고 나에게 말하더라 하니 선생님께서 매우 즐거워하시며(?) 

"우리 OO가 참 해맑아요~" 라 마무리하셨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선생님께서는 명확하게 악기를 바꾸라 마라 결정을 내주 시진 못했으나 오직 그녀만이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팩트를 비중 있게 덧붙였다. 

결론은 2학년 2학기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소리를 못 내서 더 이상 음계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는 학생은 오로지 나의 훌륭한 딸 단 한 명이며 정작 이 아이는 스스로 잘하고픈 의지가 없고 의지와 해내고 싶은 욕심 없는 학생이 훗날 갑자기 일취월장하여 뛰어난 연주를 보여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하셨다. 물론 조심스럽게 에둘러 말씀하셨지만 그 대화 속 핵심은 그러했다.    


배움이란 자고로 본인의 의지가 동할 때 효율이 나는 것인데 이렇게 의지가 없어서야 그 어떤 선생님께 부탁을 하건 그냥 돈을 길바닥에 버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 비록 가계부를 써가며 매달 우리 가계의 지출과 수입을 따지면서 살지 못하지만 분명한 건 훌륭한 내 딸의 플룻 레슨비가 낭비임은 너무도 확실했다.  


평소 내가 일이 바쁘기도 하거니와 다른 모범생 친구들 엄마들과 교류가 없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어 그 소식이 자꾸 들려오기라도 한다면 매일 머리 위 뚜껑을 날리며 열폭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첼로나 바이올린 반으로 바꿔보자 제안했지만 그녀는 원치 않았다. 홀로 소리를 못 내도, 발표회에서 하는 척만 해도, 혼자 비행기만 1년째 연습하고 있어도 플룻반에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어차피 악기를 전공할 건 아니지만 나는 수업시간에 내가 제일 못하는 아이가 되면 속상할 꺼라 생각했는데 아 아이는 진심으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인생을 살면 살수록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으며 그중에서도 내 자식을 이해하는 게 가장 어렵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나는 오늘도 육아와 교육, 그 혼돈의 세계 안에서 어지러이 휘청 거린다.





딸아. 나는 너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엄마가 되도록 매일 다짐하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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