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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화백 Nov 17. 2023

망할 영어



 내 인생의 평생숙제. 

망할 영어는 단연코 내가 통으로 시간이 날 때 매번 틈틈이 시도하는 분야이다. 그리고 또 매번 3개월 이상을 이어가지 못하고 무너지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번 제주에 오면서 어린이의 학교에 방문할 일이 꽤나 있는데 외국인들과의 만남이 잦을 예정이다 보니 내 마음이 더욱 작아지기도 하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싶기도 했다. 사실 학교 측에서는 거의 항상 통역역할을 해줄 한국인선생님이 계시지만 어쩐지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안그래도 코딱지만한 몸이 더더욱 쪼그라드는 느낌이라 이제는 좀 어깨를 펴고 싶었달까. 한없이 어깨가 말려 반으로 접힐 기세라 과연 펴지는게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가장 최근에 망할 영어를 시도했던 때는 대략 2년 전쯤이었다. 나의 두 번째 어린이가 세상에 나오고 나서 일을 모두 쉬었다가 몇 달 후 사회활동을 시작해야겠다 결심하고 슬슬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였다.

당시 직장 근처에 원어민과의 1대 1 회화 학원이 있었어서 오전일을 마치고 학원으로 향했다. 이전까지 내가 경험했던 회화는 필리핀 전화영어가 전부였기에 당시 주 2회 리얼 원어민과의 회화타임은 매우 생동감 있었다.


난 이전까지 항상 외국인들의 유머코드가 나와는 너무도 맞지 않는다고 느껴왔다. 이는 20대 초반 강남역의 대형 어학원에서 당시 리스닝의 바이블이었던 시트콤 프렌즈를 가지고 수업했는데 정말이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그즈음이었을까. 한창 미드가 열풍이던 시절, 친구들이 1화를 보기 시작하면 중단할 수가 없어 이틀 밤을 꼬박 새워가며 끝냈다며 프리즌 브레이크 석호필사랑을 노래하기에 내심 기대하며 1화를 오픈했지만 그 1화조차 미처 끝내지 못하고 석호필과는 만남과 동시에 이별을 고했던 나를 기억한다. 도대체 미드는 어떤 부분이 재미진 것이며 미국시트콤은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십수 년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그때 회화학원에서 만난 리얼 외국인어쩐일인지 다들 유머러스했다. 어린이가 두 명이 되면서 가중된 육아업무에 찌들은 아주미와 나불거려 줄 대화상대가 누가 되어도 상관없었던 건지, 파란 눈의 뉴페이스와의 대화 그 자체가 즐거웠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회화시간에 까르르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것이 그나마 3개월 정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3개월 수강 이후 재수강을 등록해야 할 시기에 때마침! 풀타임 업무로 바꾸게 되어 매우 부득이하게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 3개월간 내가 얻은 것은 영어실력의 향상이라기보단 외국인과의 만남을 어떻게든 피하려고만 했던 내 모습에서 개미똥만큼의 자신감 획득이다. 3개월 이후 나는 가족들과 함께한 해외여행에서 갈 곳 잃은 시선처리 없이 호텔직원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말을 걸 수만 있고 어가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리하여 올해 맞이한 백수생활에서 나는 역시나 애증의 망할 영어를 시도했다. 이번엔 원어민 줌 회화수업이었다. 제주라는 지역적 한계와 언제든 어린이들의 기본적 케어가 필요한 점, 그리고 코로나 시대 이후 너무도 당연해진 화상수업이 전혀 거부감 없이 다가왔다.


새롭게 만난 나의 줌선생님들은 편안하고 따뜻하게 백수 아주미 학생의 심란한 영어를 받아주고 있고 나 역시 조용한 이곳에서 단지 나불거리는 행위가 좋은 건지 영어로의 대화가 편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즐겁게 수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제 마의 3개월이 되었다. 이것은 백수생활도 3개월 차가 되었다는 뜻이며 나는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영어를 뿌리 뽑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기에 어떻게든 계속해보려 한다. 포기만 안 하면 중타는 친다는 소신을 가지고. 내년이 되면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시간에 나의 어깨가 조금은 더 펴질 수 있으려나.


세상 포기가 쉬운 백수 아주미는 오늘도 힘을 내본다.


어린이의 책들.나도 읽어야지 했는데 왜래 재미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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