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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화백 Dec 04. 2023

냄새로 그를 판단하지 마세요
선생님


  나의 5살 둘째 어린이 만두는 요즘 새로운 환경에서 유치원에 다닌 지 이제 3개월 정도 되었다. 5살이니 올해 3월부터 보육중심이던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교육중심의 유치원으로 옮겼고 그에 따라 혼자 화장실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우리 나이로는 5살이지만 사실 이제 갓 48개월 차 인생을 넘긴 만 나이 4세이다. (우리나라도 새롭게 나이정책이 바뀌었지만 나는 아직도 5살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해서 누가 물으면 항상 5살이라 대답하게 된다.)


이곳 새로운 유치원 선생님께서는 이전에도 아이가 똥이 마렵지만 말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말씀하신 적이 있다. 실제로 아이는 유치원에서 아직 한 번도 똥을 싸 본 적이 없다. 외출 시 바깥에서 똥 싸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는 것은 아닌데 유치원에서만 유독 그런 걸 보니 아직 엄마의 부재상황에서 자의 응꼬를 타인에게 맡기는 것이나 자신의 똥을 남들이 보는 것이 창피한 것 같았다.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오늘 아이가 어딘지 모르게 안절부절못하고 동공이 흔들리는 걸 보니 똥이 마려운 것 같은데 얘길 못하고 참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며 본인 아이도 이 문제로 매우 크게 고생한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 큰 고생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했지만 묻진 않았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만두야, 화장실에 가볼까? 똥 마려우면 언제든 이야기해."라고 권했지만 아이는 웃으며 아니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선생님의 전화를 받은 그날 하원 후 아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똥이 마렵다 하길래 나는 바로 물었다.

"만두야, 오늘 유치원에서 똥 마려웠었어?"

"응"

"그럼 선생님께 말씀드리지 그랬어. 왜 참았어?"

"그냥. 창피해서. ^-^"


아이는 명확하게 대답했다. 선생님이 제대로 보셨다. 아이는 똥이 마려웠고 유치원에서 말하는 게 창피해서 참았다고 했다. 다시 한번 친절하게 설명했다. 똥이 마려운 건 전혀 피한 일이 아니며 엄마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 똥이 마려울 수 있고 마려우면 참지 말고 싸면 되는 거라고. 

엄마도 아빠도 친구들도 모두모두 밖에서 언제든지 마려우면 바로바로 똥 싸고 있어!! 엄청나게 강조하며 말했다.


이 무렵 어린이들과의 대화는 이토록 원초적이고 단순해서 참으로 마음에 든다...


그리고 얼마 후 선생님은 다시 한번 전화를 주셨다.


"어머님~ 오늘 혹시 만두가 집에 가서 변을 봤나요? 오늘도 왠지 말을 못 한 것 같아서요. 방귀냄새가 정말 많이 지독했는데 계속 안 마렵다고 하더라고요..

여러 번 권유해서 같이 화장실에 갔는데 결국 실패했어요.."


"아고 그렇구나..ㅠ 혹시 선생님 보시기에 만두가 오늘도 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힘들어 보였나요?"

"아, 그렇진 않았어요. 그런데 계속 방귀를 뀌는데 냄새가.. 이건 그냥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이 조금 더 친해저서 그런지 만두가 방귀를 뀌면 냄새난다고 표현을 해서 혹시나 상처받을 수도 있고.."


나는 모든 상황을 들은 후 매우 진지하게 궁서체로 대답했다.


"선생님, 만두는 집에서도 냄새가 항상 지독하답니다 아시다시피 워낙 평소에도 다채롭게 많이 먹는 아이라서요. 그렇다고 항시 똥이 마려운 건 아니니 냄새만으로 변의를 예측하시진 않아도 될 것 같아요.. ^-^"


말대로 아이는 거의 항상, 매일 냄새가 독하고 우리는 그의 냄새에 익숙하지만 선생님은 그렇지 않을 수 있으니 충분히 걱정할 만하여 나는 그 문제에 있어 설명을 해드려야만 했다. 아이가 방귀를 뀔 때마다 매번 화장실에 앉히려 하실 것 같아서 말이다.


아이가 하원하고 물었다.

"만두야 오늘도 유치원에서 똥 마려운데 참았어?"

아이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아니"

"유치원에서 만두 방귀 뀌었어?"

"응, 어엄청 꼈지!!!"

"아.. 친구들이 냄새난다고 뭐라고 했어?"

"어, 코 막고 막 그랬지."

"그러면 만두 혹시 속상해?"

"아니?"

아이의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표면적인 그의 대답으로는 다행히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일상에서 내가 똥과 방귀에 대해서 이토록 진지하게 오래도록 대화를 나눌일이 이 시기와 이 아이 조합이 아니면 또 있을까. 그러나 나도 선생님도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나는 5세 아이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큰 중대사인 똥문제에 대하여 관심가저주시는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선생님 냄새로 그의 의중을 판단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만두는 매일매일 지독하거든요! 허헛.


조만간 유치원똥에 성공하길 바라며...


제주방구쟁이 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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