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 몇 개의 글을 쓰지도 않았지만, 그 글들을 보니 모두 삭제해 버리고 싶다. 본 사람도 몇 없으니, 삭제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새로운 초심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남겨 두고 싶다.
브런치 외에 한 군데 더 꾸준히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곳이 있다. 바로 귀농귀촌 커뮤니티 ‘그린대로’이다. 그곳에는 꾸준히 매달 3개의 글을 올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거기와 여기엔 다른 내 태도가 있었다. '그린대로'는 돈을 준다. 그리고 편하다. 내 글에 조회수에 대한 나의 기대도 없고, 누구 하나 내 글을 제대로 클릭해서 보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글쓰기가 쉬웠다. 그리고 글만 쓰면, 그 수준에 상관없이 돈을 주니, 일단 쓰고 볼 일이었다. 그런데 ‘브런치’는 달랐다. 글을 쓰기 위한 주제와 제목도 수십여 개 만들어 놨지만, 막상 글은 써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냥 일 년이 흘렀다. 최근에 새 마음을 가져 보고자 오랜만에 ‘브런치’에 로그인해보니, 글이 가관이다. 아이를 그대로 사랑하고자 마음먹었고, 좋아하는 거 시키며 살아보자고 많은 일들을 계획했다.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그것 중에 하나였고, ADHD라는 것이 궁극의 장점으로 부각이 되어, 소위 ‘성공’의 반열에 올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것을 MSG 열심히 친 내 ‘브런치’에서 느껴졌다. 솔직했다. 사실이 아닌 내용은 없다. 하지만, 그 내용 안에는 덤덤한 듯 긴장하며, 예민하게 단어를 골라낸 내 마음이 보였다. 아마도 잘 키운 ADHD 아들을 뽐내거나, 다른 엄마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허세, 선민의식 가득한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부끄럽다.
최근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었다. 히틀러에게 인종청소의 학문적 ‘명분’을 만들어준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평전이다. 평전이라 하면, 누군가를 존경해 마지않는 그런 내용일 거라는 내 편견과는 다르게 그의 생애와 태도에 신랄했다. 그 책을 다 읽는 순간, ‘브런치’가 떠올랐던 건 세상에 대한 내 ‘겸손’의 부족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편안한 내 글에서 ADHD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의 공감과 위로를 만들고 싶다던 겉모습과 다른 ‘의식’ 적인 글. 누구도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그 삶을 부정하거나 수정하게 할 수 없다. 조언과 부정, 비판과 수정을 요구하는 글이기보다는 ADHD 엄마가 ADHD 아들을 너무도 잘 알 기에 오히려 편안하게 지내고 있고, 때론 나랑 너무 같아서 괴로운 마음 가득한 그것이 내 글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 다른 모습의 아이와 가정 속에서 아이는 그 존재 자체로 사랑받아야 한다는 지독히 기본적인 육아의 신념이 2024년 브런치에 다시 글 써보기를 마음먹은 내가, 올해 마지막이 되었을 때, 잘했다고 나 스스로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