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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May 31. 2023

한화와 스토브리그

존중하지 않는 야구계 시리즈 3- 한화의 감독 경질

꼬리 자르기가 아니었을까. 지난 5월 11일 한화 이글스는 수베로 감독을 경질하고 퓨처스 감독이던 최원호 감독을 승격시켰다. 아무리 리빌딩이라고 하지만, 2년 연속 꼴찌는 구단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지난 2021년 한화는 리빌딩을 목적으로 육성 전문가 수베로 감독을 데려왔다(3년 계약). 한화는 '지금 당장'이 아닌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본 것이다. 이용규 같은 즉전감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방출하고 신인급 선수들을 육성하는 데 힘썼다. 그러나 2년 반이 흐른 지금은 리빌딩이 아닌 윈나우를 원했다. 


5/31 기준 한화의 성적은 17승 26패로 9위에 머물러 있다. 성적 부진의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마냥 감독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수베로 감독이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용병술인데, 실제로 야구에서 감독의 용병술로 승패가 갈리는 건 아무리 많아도 1년에 5번이다. 신인급 선수들의 경험 부족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신인급 선수들이 경험을 함으로써 앞으로 더 성장하길 바라는 게 리빌딩 아닌가. 리빌딩은 지금 당장을 보는 게 아니다. 오늘이 아닌 내일을 위해 씨를 심는 과정이다. 실제로 수베로 감독은 "모든 일에는 열매를 거두는 사람과 씨를 심는 사람이 있는데, 씨를 심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 끝이 언제일지 모르는 내일에 충실하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열매를 거두기 전 싹이 잘리고 말았다. 열매가 자라고 있었다. 국가대표 에이스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투수 문동주를 세심히 관리해 주고 팀의 주포 노시환은 현재 주춤하지만,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타자 중 한 명이다. 이들은 수베로 감독이 심은 곳에서 자란 열매들이다. 


지금 한화는 외국인 선수 문제로 속이 타들어간다. 개막 첫 경기에서 허리 통증으로 강판돼 방출되자 "한국은 쓰레기 나라"라며 글을 쓰고 떠난 버치 스미스는 말할 것도 없고 86타석에서 0.125리의 타율에 OPS는 0.337에 그치며 삼진을 무려 40개나 당한 브라이언 오그레디는 KBO 리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방출 1순위로 거론되며 한화 팬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문제는 외국인 선수가 팀 전력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데 있다. 팀의 핵심 전력이 돼줘야 할 외국인 타자가 부진한데, 어떻게 윈나우를 외칠 수 있는가. 작년 한화의 외국인 타자였던 마이크 터크먼(타율 0.289, OPS 0.795)과 결별하고 선택한 외국인 타자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다. 


시기상의 문제도 있었다. 수베로 감독은 팀이 상승세를 탈 때 경질 당했다. 한화 구단에선 그전부터 논의가 되었다고 말했으나, 하필 5승 1패를 거둔 시점이어야 했을까. 최대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프로는 결과를 내야 한다며 윈나우를 외치던 구단은 팀이 결과를 내고 있을 때 감독을 내보냈다. 지금 당장 이기려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말이다. 수베로 감독은 이 사실조차 모른 채 경기에 임했다. 눈앞에 다가온 이별을 몰랐다.


KBSN 권성욱 캐스터는 다음날 중계 멘트에서 말했다. 

"우리는 실패로부터 많은 것을 배웁니다. 실패를 격려하고 칭찬을 통해 실패는 과정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실패는 누구나 두렵지만 누구도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내일의 승리를 위해 오늘 주어진 실패할 자유. 그러나 그 자유도 영원할 수는 없는 것. 실패할 자유의 유통기한은 2년 5개월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실패는 수베로 감독의 실패가 아니라고 본다. 수베로 감독이 육성한 수많은 선수들의 실패다. 수베로 감독이 부임하던 시절엔 실패할 수 있었다. 실패를 통해 내일 더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는 감독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겨야 한다. 마음껏 실패하고 성장하던 그들은 하루아침에 실패할 자유를 박탈당했다. 영원할 수 없다는 건 알았지만, 그 순간이 이렇게나 빨리 찾아올 줄은 알고 있었을까? 구단에서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프런트는 꼬리를 잘랐다. 올해 성적 부진의 이유를 감독에게만 물었다. 지난해부터 감독이 프런트에 요청한 외야 FA는 관심도 없었다. 그나마 채은성과 이태양, 오선진을 영입해 전력을 강화했지만, 그럼에도 뎁스가 얇은 건 분명했다. 뎁스를 두텁게 하기 위한 외국인 선수들은 기대 이하였고 이로 인한 성정 부진은 오로지 감독의 몫이었다. 


역할이 조금 바뀌긴 했으나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백승수가 생각난다. 한화 프런트와 비교하면 더더욱.    

<스토브리그>에서의 백승수는 야구인은 아니지만, 씨름, 아이스하키 팀을 우승시키고 온 단장이다. 야구인이 아니기에 직원들의 불신을 샀지만, 나중엔 결과로 보여준다. 자신이 했던 트레이드와 부조리 철폐가 드림즈라는 팀을 위해서라는 걸 말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인 걸까? 현실은 다를까?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백승수의 결과는 백승수만이 일궈낸 게 아니란 거다. 백승수는 다른 조직원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하는 그는 누구 한 명이라도 없으면 팀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의 능력을 이끌어냈다. 강경한 태도로 반감을 살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드림즈의 직원 모두가 백승수를 믿고 있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메시지는 이거다. "강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서로 도울 거니까요" 


서로를 믿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스토브리그의 백승수 단장은 한화의 프런트와 다르다. 현재 팀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것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얻을 건지에 대해 단독결정을 하지 않는다. 직원들과의 회의에서 그 유명한 '백승수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설득시킨다. 그중에서 압권은 모든 책임은 본인이 지겠다고 말하며 조직원들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거였다. 단장(프런트)이라는 역할이 그렇다. 현장에 필요한 걸 지원해 주며 믿어주는 거다. 구단의 프런트는 공을 던질 것도 칠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팀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모든 일을 다 하는 거다. 


백승수는 이런 대사를 남긴다. "성적은 단장 책임, 관중은 감독 책임. 그걸 믿는 편입니다. 단장은 스토브리그 기간에 팀이 더 강해지도록 세팅을 해야 하고 감독은 경기장에 찾아온 관중들의 가슴속에 불을 지펴야죠." 성적은 단장 책임이며 팀의 세대교체(리빌딩)의 선택 여부도 단장과 프런트에게 달렸다. 리빌딩의 필요성을 느낀 한화 프런트(이 사이에 정민철 단장은 손혁에게 단장 자리를 넘겼다.)는 수베로 감독을 선택했고 수베로는 '보살'이라 불리는 한화 팬들을 야구장으로 끌어들였다. 올해 4월 최하위였던 한화의 관중 순위는 7위였고 9위로 올라선 현재 관중 순위는 9위다. 수베로는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일궈내며 경기장 안 팬들의 가슴속에 알 수 없는 뜨거움을 선사했다. 한 한화팬은 "팀이 꼴찌할 때도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에 응원했다."며 한화의 낭만을 전했다.  


그러나 프런트는 성적과 팬심에 대한 책임을 모두 수베로 감독의 탓으로 돌렸다. 팀이 더 강해지도록 비시즌에 FA 영입을 했으나 중요한 외국인 선수에 대해서는 소홀했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리빌딩을 이유로 수베로 감독과 동행했지만,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이유로 수베로 감독을 경질했다. 자신들의 목적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을 보았다. 목적이 바뀌었다는 것에 대해선 섣불리 말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들이 믿고 동행하던 사람을 한 순간에 내친다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 프런트가 책임을 져야 한다. 성적에 대해, 자신들이 선택한 외국인 선수에 대해, 자신들의 목적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면 현실에도 백승수 단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드라마의 이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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