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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Jun 01. 2023

말의 책임

존중하지 않는 야구계 시리즈 4- 오재원과 박찬호

지난 5월 중순, 오재원 해설위원이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공개 비난해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 있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오재원은 오랫동안 쌓아온 앙금을 공개적으로 퍼트리며 야구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오재원은 "나는 코리안 특급이 너무 싫다, 국민들이 새벽에 일어나 응원하던 그 마음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가 해설로 나와 바보로 만든 선수가 한두 명이 아니며 책임을 지지 않는 것 같다."라며 생각을 밝혔다. 스포츠계에서는 후배가 선배를 공개적으로 저격하는 일을 보기 쉽지 않은데, 오재원의 이러한 행동은 우리가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앞에서 말했듯 스포츠계, 특히 야구계에서는 후배가 선배에게 들이대는 듯한 언어를 사용하는 걸 보기 힘들다.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위계질서가 한몫하는데, 그런 면에서 오재원은 당돌했다. 오재원을 시작으로 많은 야구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전달하는 방법은 아쉽기만 했다. 사석이 아닌 공석이었으며 말하는 대상을 적으로 여겨 비난했다. '국민'이란 단어에 들고일어난 팬들이 많았다. 이에 오재원은 사과문을 올렸지만, 사과문 역시 아쉽게만 보였다. 박찬호의 조심스러운 발언을 기대했던 오재원의 사과문 안에는 잡지사를 향한 소위 '남 탓'이라 부르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오재원은 사과문에서 신중하지 못한 발언을 남겼다. 


이제야 설명하는 사건의 발단은 2014년 아시안게임 예선에서 박찬호가 해설을 맡았고 오재원 타석 때 지난 일(몸에 맞는 공을 두고 시비가 붙었다.)을 이야기하면서부터다. 그러나 팬들이 박찬호에게 당시 영상을 보여주어 박찬호는 결승전 중계를 하며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여기서 마무리되는 걸로 보였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오재원이(또는 박찬호가) 잘못을 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한 이분법적 내용이 아니다. 말, 언어를 전달하는 방법이 달랐으면 어땠을까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절대로 특정 인물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야구계에서 다양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건 박수받아야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소통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고 야구계도 예외는 아니다. 선배들의 올드한 생각을 후배들이 탈바꿈하여 야구계를 부흥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바꾸는 것은 결국 소통인데, 소통은 서로를 인간으로서 존중해 줄 때가 돼서야 성립된다. 


정리해 보면, 이념을 바꾸려면 소통이 필요하고, 소통을 위해서는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서로를 존중하려면 말을 아름답게 할 필요가 있다. 소통의 창구가 트인 건 환영해야 할 일이어도 소통 창구 개설을 좋지 않은 방법으로 하게 된다면 오래가기 힘들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말을 조금 더 신중하게 할 수는 없었을까. 말은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오재원이 후배 된 입장으로 소신을 밝힌 건 존중받을 수 있지만, 오재원은 자신이 신중하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언어'를 수단으로 삼아서 말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데 가장 확실하고 쉬운 수단인 '언어'는 양날의 검이다. 말에는 책임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박찬호 역시 오재원을 대상으로 한 해설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오재원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았다.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오재원이 자신의 신중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계속 활동을 해나갔으면 어땠을까 한다. 야구인들에게 선례를 만들어 주고 앞으로 계속 소통을 해나갔다면 조금은 달라졌을 거라 본다. 가설이기 때문에 길게 다루진 않으려 해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시적 언어로 표현하면 말이 너무나 날카로웠다. 


오재원과 박찬호 전에도 사례가 하나 더 있다. 양준혁 해설위원의 WBC 참사 조롱이다. 사석에서 해도 좋을 말을 자신의 개인 채널을 통해 말하며 야구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사회인 야구나 뛰어라, 배는 타고 오되 오리배 타고 와야죠."라고 거칠게 비판했다. 계속 강조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때는 '언어'라는 수단이 가장 쉽고 편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말을 조심하는 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를 경우 그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얘기하고 싶었던 건 소통의 중요성과 말의 책임이다. 어느 시대나 있어 인간이란 존재는 살아가기 위해소통을 해왔고 그것은 오늘날의 언어가 되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했다. 언어라는 집에 인간이 살고 있기 때문에, 마치 인간이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언어가 인간의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 언어가 너무 살벌해지고 있고 사람들은 자신이 마치 주인인 것처럼 반지성적인 무서운 언어들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 세대가 우리 ‘존재의 집’을 이렇게 훼손해 놓으면 다음 세대들은 어디서 살아야 할까? 야구는 삶과 굉장히 비슷하다. 그게 야구장 밖이든 안이든 간에 말이다. 야구장 밖에서 선배들, 혹은 어른들이 보여주는 이런 모습 후손(후배)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표현하기 쉽다는 이유로 막 내뱉고(막말) 다른 사람에게 모욕감을 준다면 더 이상 소통의 창구가 열리긴 힘들다. 


소설가 이청준은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에서 "모든 말들이 길을 헤매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들을 혹사했고 말들을 배반했고 말들은 그들의 고향을 잃어버리고 그들은 고향에 대한 감사와 의리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배반당한 말들은 자유였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말'이 어떤 말일지에 대해서는 읽어주시는 분들의 생각에 맡기겠다. 어느 순간부터 말이 남용되었다. 말이 꼭 필요한 곳에 쓰이지 않고 불필요한 곳에 쓰이고 있다. 내뱉은 말은 정처 없이 떠돈다.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야구인들이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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