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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Oct 25. 2023

여행의 의미

마지막 전체여행에서의 소회

지난주 학교에서 강릉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1년에 한 번 전교생이 다 같이 3박 4일로 전체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 일정은 단순한 휴양의 목적이 아니다. 경험을 통한 배움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란 사실을 학생들이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정이다. 학교(더불어가는배움터길)의 교육철학과 이념을 여행에 가서도 적용하며 학교에서의 배움을 계속해서 이어간다. 우리 학교는 숙소를 잡을 때 호텔이나 펜션 같은 호화로운 곳을 잡지 않는다. 폐교를 개조한 숙소를 가거나 민박집, 혹은 수련원에 숙소를 잡아 3박 4일을 보낸다. 전교생이 6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학교에서 비교적 허름한 곳에 숙소를 잡아 여행 일정을 소화하는 까닭은 굳이 넓고 호화로운 곳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잘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실제로 여행을 가기 전 숙소에 대한 불만을 내비치는 학생들이 있지만, 막상 여행을 간다면 불만을 쏙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함께 지내는 공간에서 각 방끼리 생활하며 불편함을 내비치기에는 모두가 웃는 얼굴로 각자의 여행에서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설명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우리 학교는 방을 6개(남자 4방, 여자 2방) 정도로 나눠 단체생활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명이 숙소가 불편하다고 투덜대는 경우가 있지만, 하루를 지내고 나면 얌전해진다. 사실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해왔던 분리수거라든지 다 함께 지내려 하는 공동체 정신이 여행을 와서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공간과 숙박이라는 형태만 다를 뿐 지내는 방법은 학교와 마찬가지기 때문에 금세 적응하고 재밌게 논다. 게다가 나와 같은 마지막 해를 보내는 학년은 이러한 의미를 말로 설명하지는 못해도 몸으로 경험하고 익혀 왔기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후배들을 챙겨주며 우리는 함께 발걸음을 내딛는 공동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여기 있는 모든 행위는 선생님들의 입김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기에 나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다. 실제로 여행을 갔을 때 선생님들은 소등 시간이나 그 외 인솔 같은 최소한의 영향만을 주시며 응급상황 같은 돌발상황이 아닌 이상에야 문화, 혹은 방의 규칙, 갈등이 일어났을 때 해결하려는 시도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행한다.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이 같은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다시 말하면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방치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학교에서 도움을 주시며 여행과 같은 단체생활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거다.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이 알려주셔도 학생이 직접 해보며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서의 여행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시도해 보며 학생들이 부딪치고 더 단단해지는 과정이라고 본다. 


이번 강릉 여행은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단순히 마지막 전체여행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나와 같이 마지막 여행을 가게 된 친구들은 우리가 그동안 여행에서 배우고 해 왔던 것들을 가장 먼저 실천하며 후배들을 이끌었다. 학교에서도 해왔던 것처럼 말이다. 3박 4일의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당장에 집에서만 3박 4일을 보내라고 한다면 그 시간이 쏜살 같이 지나가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정말로 빨리 지나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고 친구들과 족구를 하다 단체 외부 일정을 보내고 돌아오면 하루가 끝나 있었다. 우리들의 전체여행 일정은 언젠가 끝나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몰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지막 날 밤에 캠프파이어를 하고 있었다. 캠프파이어를 하며 한 친구와 그저 가만히 불을 보고 있었다. 다른 후배들이 불 앞에서 이것저것 구우며 신나게 노는 동안 우리는 말 한마디 없이 불만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우리가 나눈 첫마디는 "시간이 빠르다."였고 그다음은 "불 앞에만 있는데, 옛날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였다. 실제로 그랬다. 학교를 다니는 5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갔다. 신입생으로 입학할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순간이 흘러간 과거가 되었고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물론 우리는 그때보다 성숙해져 있었고 시간의 흐름은 우리를 비껴가지 않았으나 우리를 비껴가지 않은 채로 우리의 삶을 관통했다. 


눈 깜짝할 새 흘렀던 5년이 지나고 나서야 여행의 의미를 돌아보면 선후배가 섞여 함께 지내는 것을 시작으로 학교에서 배우며 익힌 것들을 공동체라는 작은 사회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누구는 희생하고 누구는 배부른 게 아니라 모두가 잘 지낼 수 있게 자신이 불편한 걸 감수하고 인내하며 함께 지내는 게 우리 배움터길의 여행이 주는 의미다. 우리는 마지막이라고 해서 편하게 있으려 하지 않았다. 마지막인 만큼 아쉬웠기에 우리가 배운 것들 그 이상을 하려 했고 무언가 어려워하는 후배들이 있으면 우리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앞으로 해나가야 할 척도를 제시해 주었다. 후배들이 여행을 즐길 수 있게 우리가 노력했던 부분은 우리가 후배들의 힘든 것까지 다 하려는 게 아닌 후배들이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게 방향성을 제시해 준 것이다. 우리 학교는 그 어디보다도 학생들의 자기 주도성,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립과 같은 부분을 중요시 여긴다. 우리는 이 가치들을 중요시 여기는 환경에서 5년을 보냈기에 말보다 몸으로 먼저 실천한 것이다. 배움터길에서의 전체여행은 우리가 배운 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경험을 해보게 하는 학교의 교육과정이다. 


이 글은 불 앞에 같이 앉아 있었던 친구와의 회상으로 마무리지을까 한다. 불 앞에 앉아 있던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말을 꺼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갔고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말이다. 5년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 순간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그 친구뿐이 아니라 같은 기수 친구들이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나 같이 여행을 즐거워했으며 그 누구보다 아쉬워했다. 마지막이 주는 특별함은 우리를 서글프게 만들기도 한다. 이제 잘할 수 있는데, 이제 잘 적응했고 후배들을 도울 수 있는데 졸업이라니.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의왕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청춘이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뜨거웠다. 5년 동안 타올랐던 우리는 뜨거운 순간을 함께 보냈다. 뜨거웠던 5년의 시간을 함께한 나와 친구들에게 모든 날, 모든 순간의 기억은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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