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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eo Nov 03. 2022

시라스 아즈사를 위하여

네, 프로필에 있는 그 캐릭터입니다.

블루 아카이브, 요즘은 다른 이유 때문에 유명하지만, 출시 초기부터 모바일 게임 즐기는 유저들 사이에서는 꽤나 화제인 타이틀이었다. 이 게임에서 당신은 선생으로서 수많은 학생과 함께 키보토스라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해야 한다. 학생을 지도하려면 청휘석이라는 것으로 학생을 모집해야 하는데… 그렇다. 근본은 가챠겜, 혹은 디지털 뽑기다.
그래도 이 게임에는 수많은 캐릭터가 있고, 수많은 캐릭터마다 저마다의 스토리와 개성이 있다. 그렇기에 수많은 선생(플레이어)이 청휘석을 모으며 캐릭터 뽑기에 도전한다. 필자 역시 수개월을 허비해가며 뽑기신에 소원을 빌곤 했다. 그러다 한두 달 전에 ‘시라스 아즈사’를 뽑게 됐고… 이제는 아즈사를 위해 열심히 ‘어른의 카드’를 쓰고 있다.


이하 글에는 블루 아카이브 게임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가능하시다면 게임을 플레이하고 읽어주세요.


이것은 스파이의 이야기

아즈사는 블루 아카이브의 메인 스토리 중 하나인 ‘에덴 조약’의 핵심인물 중 하나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닮은 ‘트리니티 종합학원’에는 성적 부진 등의 이유로 다른 동아리에서 쫓겨난 이들을 모은 ‘보충수업부’가 있었다. 보충수업부 멤버로는 아즈사를 비롯해 선도부 출신 ‘시모에 코하루’, 누구보다 야한 얘기를 많이 하는 ‘우라와 하나코’, 평범(?)하지만 윗선과 커넥션이 있는 ‘아지타니 히후미’가 있다. 이들을 선생이 지도해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에덴 조약의 주된 스토리다.

그런데 트리니티 윗선에서는 앙숙인 ‘게헨나 학원’과의 평화조약을 앞두고 배신자로 의심되는 학생들을 보충수업부로 몰아넣고 학교에서 축출시키려 했다. 하지만 보충수업부의 지도교사인 선생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고, 선생과 보충수업부는 함께 무사히 시험에서 통과했다. 그렇게 보충수업부는 다시금 평범한 학생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즈사는 과거 트리니티 학원의 일원이었지만 사상의 차이로 대립하다 박해당하고 쭃겨난 ‘아리우스 분교’ 출신의 스파이였다. 본디 아즈사는 트리니티 학생회의 일원인 ‘유리조노 세이야’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트리니티로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리우스 대신 트리니티의 편에 섰고, 계획이 틀어진 아리우스 측에서는 특수부대인 ‘아리우스 스쿼드’를 투입해 평화조약 당일에 대형 테러를 저지른다. 이에 아즈사는 다른 보충수업부 멤버와 함께 파국을 막기 위해 싸우게 된다.

일견 뭔가 사나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사정이 있었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지만…

아즈사가 속해 있던 아리우스 분교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를 모토로 삼고 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구약성경 전도서 12장 8절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아리우스 학생들은 이러한 모토를 총이나 옷 등에 새기며 염세주의 아래 인생을 살아간다. 아즈사 역시 총에 전도서 12장 8절을 새겨 놓았다.

추후 스토리가 추가되면서 아리우스 분교생들이 그렇게 염세적인 마인드를 지닐 수밖에 없던 사정이 드러난다. 열악한 시설 아래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음은 물론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도록,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옛이야기에 매몰되어 모든 것에 분노하도록 주입식 교육을 받은 탓이다. 조만간 한국 서버에도 아리우스 스쿼드 멤버를 캐릭터로 뽑고 인연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게 될 예정인데, 인연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이들의 서글픈 가난함과 현실적인 어려움이 잘 드러난다.

아즈사 역시 염세주의적인 삶의 자세 속에서 항상 모든 것을 경계하며 살아간다. 아즈사와의 인연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느라 날이 서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노력하는 캐릭터가 바로 아즈사다. 그래서 아즈사는 암살 대상에게 자신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질문하고,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찾아낸다.

아즈사는 그 누구보다 염세적이면서도,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고난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아리우스의 스파이로서 세이야를 처치하는 데(정확히는 처치한 것처럼 위장하는 데) 성공한 아즈사는 평화조약을 지키기 위해 아리우스를 속이면서 이중스파이로 활동한다. 이 과정에서 아즈사는 보충수업부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그녀는 보충수업부에 자신이 이중스파이임을 고백하고, 그동안 다른 이들을 속여 왔음을 사과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허무하다 느끼는 속에서도 오늘에 최선을 다해온 아즈사를 히후미와 하나코, 코하루 그리고 선생은 진심으로 아즈사를 받아들이고 보충수업부는 함께 시험을 통과했다.

이후 아리우스 스쿼드의 습격으로 조약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고 선생이 총에 맞은 상태에서도 아즈사는 파국을 막기 위해 한때 동료였던 아리우스 스쿼드의 리더, ‘조마에 사오리’와 대적한다. 그 과정에서 아즈사는 히후미와 함께한 약속을 깨기에 이르고 결국 좌절하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결국 사오리를 이겨내며 위기에서 선생과 키보토스를 구해낸다.

그렇다. 아즈사는 삶은 고통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즈사의 이야기 속에는 그녀가 원치 않았던 고통도 있었고, 그녀가 선택해야 했던 고통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이 지켜야 할 것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으며, 이를 행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또한, 아즈사는 자신의 과거를, 자신과 함께 했던 친구를 외면하지 않았다. 한국 서버에 새롭게 공개될 에덴 조약 4장에서는 악의 무리에 사로잡힌 아리우스 스쿼드의 멤버, ‘히카리 아츠코’를 선생이 다른 아리우스 스쿼드와 함께 구출하는 이야기가 다뤄진다. 비록 아즈사는 구출작전에 직접 참가하진 못하지만, 트리니티에 아리우스 분교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과거 아즈사가 집단 폭행을 당했을 때 그녀를 구출해준 이들이 바로 아리우스 스쿼드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10대 소녀스러운 면모도 있다.

아즈사가 전해주는 믿음

이 글을 쓰기 전, 주말에 한창 블루 아카이브를 하며 이벤트를 기다리던 중, 이태원에서는 사람들이 사람들에 깔려 죽었다. 작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렸는데도 이를 통제하고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사망자가 150명을 넘었음에도 책임을 피하는 목소리만 가득하다. 8년 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참사는 마치 고장 난 녹음기처럼 일어나는 것 같다.

꼭 이번 사태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전 지구적인 전염병과 시시각각 목에 차오르는 기후 위기, 어처구니없이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힘을 모두 소진해버린 것처럼 보인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SF소설 ‘최후의 질문’에서는 엔트로피의 족쇄를 벗어나기 위한 인류의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지는데, 현재는 이미 엔트로피의 한계점에 다다른 것만 같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 아즈사처럼 오늘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의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나, 더 나아가 모두가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도록 하려는 이들이 있기에 아직 세상은 마지막 불씨를 잃지 않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이 있다면 아즈사 같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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