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반맨 Dec 15. 2022

중꺾마

49금 유머 인문학 07.

© simmerdownjpg, 출처 Unsplash

대략 중학교 2학년에서 고1 사이쯤이다. 
동창들끼리 얘기하다 나온 ‘수포자’ 즉 수학을 포기할 결심을 한 시기다. 
어떻게 해도 성적은 안 나오지, 난이도는 더 높아지지,  앞으로도 성공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하긴 요즘 N 포 세대라 불리는 젊은 층에 비하면 그 당시의 수포자는 투정에 가깝다.
연애, 결혼, 출산 포기라는 3포 세대로 시작하여 집장만, 인간관계, 꿈, 희망이 줄줄이  달라붙어 5포에서 7포로, 이젠 셀 수 없을 만큼 포기할 게 많다는 N 포까지 온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심리학의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 개념과 관련이 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은 실험을 통해 전기 충격을 반복적으로 받은 개들이 나중에는 충격을 피할 수 있어도 포기한다는 ‘학습된 무력감’을 발표하였다.
누구든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패가 반복되면 매사가 부질없이 느껴지고,   심하면 낮은 자존감과 우울증으로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까지 잃기도 한다. 
반면에 포기 세대의 등장과 함께 새삼스럽게 역주행한 트렌드가 소확행이다. 최근엔 소확성(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감)으로 트렌드가 진화해하고 있다.
사회구조나 권력 앞에 개인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지만, 그 속에서 작은 행복과  성취를 쌓는 것이 무력감을 딛고 희망을 이어갈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신병 때 한 조각 더 받은 닭튀김으로 꽤 위로를 받았던 기억 하나쯤 있지 않은가?
가물가물하다면 여기 소확행의 끝판왕을  보며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때는 죽 한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제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로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마지막 구절)

찰리는 죽마고우인 친구와 그의 아내로부터 저녁 만찬에 초대받았다. 
만찬이 끝나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찰리의 자동차가 고장이 났다. 
수리를 부르기엔 너무 늦어서 부득이 친구의 집에서 자게 되었다. 
친구의 집에는 소파조차 없었기 때문에 찰리는 친구와 그의 아내가 자는 침대에 같이 자게 되었다. 
친구가 잠들자마자 그의 아내가 찰리를 흔들면서 이상한 요구를 해오는 것이었다. 
“난 그럴 수 없어요. 부인의 남편은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요“ 
찰리가 조그만 소리로 속삭이자 그녀가 조그만 소리로 말을 받았다. 
“염려 마세요. 그이는 한 번 잠들면 이 세상 누구도 깨울 수 없어요.“ 
“난 믿을 수 없소. 당신과 내가 이상한 짓을 하면 저 친구는 금방 깨어날 거요.“ 
“이봐요, 정 못 믿으시겠다면 남편의 코털을 뽑아보세요.“ 
찰리는 실제로 친구의 코털을 뽑아보았다. 
과연 꼼짝도 않고 자고 있었다. 
찰리는 비로소 그녀에게 다가가 일을 치르기 시작했다. 
찰리가 일을 끝내고 잠이 들려고 할 무렵 친구의 아내가 또 흔들었다. 
찰리는 또 친구의 코털을 뽑아 확인한 후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밤새도록 일이 진행되어 찰리가 친구의 코털을 일곱 번째 뽑으려 하자 찰리의 친구가 깨어나면서 중얼거렸다.
“이봐 친구, 내 아내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네만 제발 내 털로 더 이상 시험하지는 말게.”


말 나온 김에,
코털은 얼굴과 뇌 안쪽의 정맥이 연결되는 곳에 박혀있어 뽑을 때 통증이 집중된 급소이며, 재수 없으면 뇌 수막염으로 사망할 수도 있단다. 
그럼에도 절대 해서는 안될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는 이 대담한 시험은 대체 어떻게 나온 걸까?
사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를 때마다 읊조려본들 이미 우리는 수많은 시험 즉 유혹의 바다 한복판에 서 있다.

로버트 그린의 책 유혹의 기술에는 ‘익숙함은 유혹의 적이다’, ‘모호함도 무기가 된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라’ 등과 같은 24가지 유혹의 전략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다 개인적으로 강력한 기술 하나를 추가하고 싶다.
‘강한 금지로 호기심을 자극하라’이다.   
인간은 누가 하지 말라고 하면 호기심이 발동하여 더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심리학자 플라토노프(Platonov)가 실험 삼아 “자신의 책 8장 5절을 읽지 마시오”라고 경고했더니, 대부분 독자들이 그 구절을 가장 먼저 읽었단다.  
금지가 강할수록 호기심은 더 강해지는 이런 사례는 차고 넘친다.
심지어 무시무시한 신의 금지도 가볍게 재낀다.
절대 따지 말라는 에덴동산의 사과, 절대 열지 말라는 판도라의 상자,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오르페우스의 모험 등이 모두 신의 절대 금지명령을 무색하게 만든 유혹의 전리품이다.  
이쯤 되면 유혹을 피해 다니기는 쉽지 않으니 오히려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에 ‘사자가 깨어나 봐야 안다’는 당돌한 대답이 나올 만한 것이다. .
게다가 사자의 후환이 무섭다는 사실도 익히 배웠으니 준비된 도전자로서 유혹에 맞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학습된 무력감에 빠진 사자도 발견할 수 있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품격 있는 유혹의 원조 격인 세헤라자데를 소재로 한 러시아 작곡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음악을 들어보자. 
공주 세헤라자데는 1001일 동안 오로지 이야기만으로 왕을 유혹한 아리비안나이트의 스토리텔러이다. 
오랜만에 피겨퀸 김연아의 스케이팅에 동양적 신비를 담은 선율이 어우러진 품격 있는 유혹을 느껴볼 수 있다.    

2008 ISU 그랑프리파이널 프리 '세헤라자데'

2008 ISU 그랑프리파이널 프리 '세헤라자데'

작가의 이전글 역지사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