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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반맨 Apr 03. 2023

존엄사

49금 인문학 사전 16.

인간을 말할 때 거의 자동적으로 들러붙는 단어가 '자유' '존엄'이다.
과문하지만 동서고금의 내로라하는 철학자, 사회학자 등이 이구동성으로 이 두 가지가 인간이 추구할 가치 중에 으뜸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특히 '존엄은 인간의 본능이다'라고도 설파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존엄한 가치를 갖는 주체이며, 스스로 존엄하게 존재하려 노력해야 한다.
존엄성을 상실한 삶은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 clemensvanlay, 출처 Unsplash

존엄성은 또한 웬만한 나라들의 헌법에도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가치다.
오죽하면 3대 세습에 '악의 축'으로 악명 높은 북한의 김정은도 틈만 나면 불꽃놀이하듯 미사일을 쏴대며 '인민의 존엄'을 위한 것이라고 하겠는가?
게다가 북한 인민들은 그를 '최고 존엄'이라고 부른단다.
마치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 즉 '존엄한 자'라는 칭호로 불린 것을 따라 하듯이..
어쨌든 '존엄'은 인간의 '지고한 가치'이다.

근데 이걸 혹시 아시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생겨나고 또 계속 유지되게 하는 중요한 원리가 있단다.
바로 '대칭성'과 '보존법칙'이다.
일단 보존법칙은 학교 다닐 때 과학 시간에 흘려들은 '에너지 보존법칙 '운동량 보존법칙' 뭐 이런 것과 관련된 것이고, 여기서는 대칭성이 중요하다.
간단히 내가 아는 수준에서 설명하면 어떤 입자가 존재하면 반드시 이와 대칭되는 반입자가 있다는 것이며, 이런 법칙으로 예상하고 또한 발견한 것이 바로 전자의 대칭인 '양전자'다.
대칭성은 자연의 원리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간의 얼굴은 완벽히 대칭인 경우가 거의 없어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과 사진으로 찍은 내 모습이 어쩐지 달라 보인다.
(거울은 내 왼쪽 모습이 왼쪽에, 사진은 오른쪽이 왼쪽에 보이기 때문.. 그리고 김태희가 예뻐 보이는 것은 얼굴 대칭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위에서 뜬금없이 과학적 개념인 '대칭성 원리'를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다면, '대칭적으로'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인정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존엄사와 비슷한 개념인 '안락사'를 존엄사에 포함하여 글을 쓰기로 한다).

© Myriams-Fotos, 출처 Pixabay

존엄사는 아시다시피 이미 죽은 거와 다름없는 뇌사자, 또는 극도의 고통을 겪는 말기병 환자에 대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매우 제한된 의료적 행위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허용되어야 할 존엄사가 오랫동안 불법의 영역에 있다가, 몇 년 전에야 어렵사리 일명 '연명의료 결정법'으로 합법화되었다.
생물학적으로는 숨이 붙어있는데 치료를 중단하는 게 '살인'과 다를 바 없다는 윤리적인 관념도 작용했겠고, 간혹 매장 직전에 관 뚜껑을 열고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이때 가족들은 매우 당황해한다. '그냥 가셔도 되는데' 하면서...)
아직도 존엄사를 택하는 환자의 가족들은 뭔가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떨치질 못한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존엄사는 이렇게 법적으로 허용된 정도의 것들이 아니다.
즉 본인의 '사전 연명치료 거부'의사에 또는 가족의 동의와 의료진의 판단으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정도의 소극적 존엄사가 아니라, 적극적 형태의 존엄사 즉 '조력 자살(또는 적극적 안락사)'을 대상으로 한다. 자살이란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섬뜩함이 있지만 '조력 자살'이란 의료적으로 철저히 통제되고 관리되는 상태에서 본인의 뜻으로 생을 중단하는 존엄사를 말한다.
왕년의 미남 배우 알랑 드롱도 최근에 이런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
대체로 '조력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불러 모아 작별 인사를 나눈 후(파티를 열기도 한단다), 의사가 건네주는 약물을 스스로 주사하여 일종의 '자살'을 하게 된다.
물론 자살의 형식이라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의료적인 관리가 전제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자살과 다르며, 또한 온전히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죽음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소극적 안락사와도 다르다. 

또 다른 형태의 존엄사가 있다.
이 방법은 의료 또는 법적인 이슈 없이 온전히 본인의 의지로 존엄하게 죽음을 결행하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관리가 안 되는 형태라서 사례가 널리 알려지지 않지만, 주위에서 종종 들려오는 죽음의 한 방법은 '죽어야 될 때다 싶으면 곡기를 끊고 굶어 죽는' 방식이다.
생의 끝자락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느니 내 스스로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겠다는 의지로, 음식물 섭취를 극도로 줄이다가 2-3주 내에 죽음을 맞게 되는 경우다.
대개의 경우 죽을 정도의 병이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생을 무의미하게 유지하는 것이 스스로의 '존엄'을 해칠 수도 있겠다 싶으면, 가족들에게 의사를 밝힌 후에 '초인적 의지'로 고결하게 죽어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고대 로마의 귀족 남성들은 자신이 더 이상 공동체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곡기를 끊어 생을 마쳤는데 그것을 존엄을 지키는 죽음, 즉 존엄사(Dignity Death)라고 했다.
그 나이가 대략 70대 중반이었다고 하니 요즘 나이로 보면 90대 정도 아닐까?

여기서 잠깐 일본 얘기를 좀 해야겠다.
일본은 전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노인국가'이다.
그러하니 아무래도 죽음을 좀 더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측면도 있고, 게다가 전통적으로 '하라 기리 (할복)'라고 툭하면 스스로 배를 갈라 죽음으로써 명예를 지키는 '사무라이' 문화 잔재도 있어서 죽음을 좀 쉽게 생각하는 전통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제로센' 전투기에 기지로 귀환할 수 없는 양의 연료만 채운 채 적의 군함을 향해 '자폭 비행'을 불사했던 좀 기이한 민족이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죽음을 앞두고 살고 싶다고 울고불고하는 한국 사람을 본 일본인이 '한국인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몰라' 했단다.
한국인이 맞받기를 '맞아, 근데 너희 일본인들은 왜 죽어야 하는지를 모르더라'...

아무튼 일본인들의 죽음에 대한 개념은 같은 유교국가이지만 우리와는 많이 다른 듯하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매년 약 130만 명이 사망하는 ‘다사(多死) 사회’로 접어든 일본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삶의 마무리를 스스로 준비하는 종활(終活·슈카쓰)이 확산되고 있다. 
또한 ‘단사리(斷捨離·끊고 버리고 떠난다는 뜻)’라고 과잉의 인간관계나 생활 방식을 정리하고, 극히 필수적인 것들만 남기는 '미니멀 라이프'의 개념도 유행이다.
종활이란 말 그대로 '활동을 종 친다‘는 뜻으로서, 엔딩노트’ 작성에서부터 상속 및 증여, 소장품 처리, 장례 방법과 절차 등을 미리 정리하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행위다.
숙적(?) 일본의 문화라지만 일본인 특유의 깔끔함과 치밀함이 엿보이는 문화다.

반면에 한 호스피스 전문 의사의 말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도 짧고, 죽음의 질도 극도로 나쁘다고 한다. 
그는 그 이유를 ‘강한 집착’에서 찾았다. 자식들은 부모가 내일모레 하더라도 끝까지 안 보내려는 게 효(孝)라고 생각하고, 부모도 삶에 집착하는 게 가족에 대한 ‘의리’라고 생각하는 문화 때문에 벽에 똥칠을 하면서도 죽기 살기로(?) 살려고 아둥바둥한다는 것이다. 
나도 일본인들처럼 종활을 잘 해놓으면 언제라도 원하는 때에 곡기를 끊고 '존엄사'를 결행할 수 있을까? 혹시 죽음 직전까지도 삶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남아 있어서, 먹을 것만 보면 환장하면서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두렵기만 하다.
'살아 있다'라는 위장막에 가려진 죽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니 공연히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뒤숭숭 한데, 이런 말도 새길만하다.
'좋은 죽음이란 없다다만 좋은 삶이 있을 뿐이다.'
끝으로 장래에 장례 절차가 걱정 되시는 분들에게 안내 말씀 드리며..

吾以天地為棺槨(오이천지위관곽) “나는 하늘과 땅을 관곽(棺槨)으로 삼고,
以日月為連璧(이일월위연벽) 해와 달을 한 쌍의 구슬 장식으로 삼고,
星辰為珠璣(성진위주기)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진주와 옥 장식으로 삼고,
萬物為齎送(만물위재송) 만물을 저승길 부장품으로 삼을 것이다.
吾葬具豈不備邪(오장구개불비사) 그러니 내 장례에 필요한 도구는 완비되지 않았는가.
何以加此(하이가차) 무엇을 여기다 더 보탤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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