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반맨 Apr 17. 2023

고독

49금 인문학 사전 17.

© sashafreemind, 출처 Unsplash

요즘 '고독사' 한 사람들의 사연이 심심찮게 기사화되고 있다.('심심찮게'란 표현이 좀 거시기하긴 하다만).
그때마다 '고독사'란 단어가 적절한지 의문이 생기는데, 병으로 고통받다가 죽으면 '병사' 라고 하듯이 고독이 원인이 되어 죽을 때 '고독사'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정작 그들은 '고독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고독하게' 죽은 것이며, 근인은 찢어지게 가난해서 죽은 게다. 그러니 고독사가 아니라 '가난사'라고 해야 더 정확할 듯하다.
작금의 초연결 사회에서는 경제적 결핍만이 '가난'이 아니고, 사회적인 연결이 결여된 상태를 바로 '가난'으로 봐야 한다니 이래저래 '가난사'란 표현이 더 맞겠다 싶다.
어쨌거나 어떤 죽음이든 또한 누구에게든 죽어가는 그 상황은 절대적인 고독과 마주하는 순간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쓸데없이, 죽음과 관련된 얘기로 어둡게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젊어서 사회생활을 할 때는 먹고사니즘이 지고의 가치였으니 고독하다거나 외롭다는 궁상스러운 감정이 껴들 여지가 없었지만, 나이가 들며 할 일이 없어질수록 시쳇말로 '외로움이 텍사스 소떼처럼 몰려오는' 걸 느낀다.
여기서 잠깐 '고독'과 '외로움'은 같은 말 아니면 비슷한 말 아니면 완전히 다른 말?
순전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고독'은 약간 철학적이고 고상한 표현인 듯하고, '외로움'은 좀 감정적이고 신파적인 느낌이 든다.
다만 이 글에서는 같은 의미로 쓰고자 함을 미리 말씀드린다.
혹자는 '고독은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불안해하는 외로움의 상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고독이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분리시킨 시간'이라면, 외로움은 '소통이 단절된 상태'를 의미'한다며 애써 구분 짓지만 어쩐지 말장난 같다.
물론 영어로 혼자인 상태를 말하는 'aloneness' 와 외로운 감정 상태를 말하는 'loneliness'는 분명 다른 의미이긴 하다.
우리가 못 견뎌 하는 건 'lonliness' 이지 'aloneness'가 아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부처께서 말씀하셨다.
온 우주에 오직 나만이 홀로 존재한다는, 좀 오만한 선언 같지만 그 뜻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절대 고독의 존재이며, 까마득한 고독의 심연까지 내려가야만 타자의 존재에 대한 열망과 이해와 존중이 생겨나며, 그 고독의 깊이는 공감의 넓이로 변환될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읽는다. 타인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에 전전긍긍하는 타인 지향적 삶의 태도를 버리고, 자신만의 뚜렷한 자아를 먼저 세우면 우주의 모든 중생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 말씀대로라면 나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아야 한다.
인간이 원래 유아독존인데 고독할 게 뭐 있겠나, 오히려 누군가 옆에 있는 게 성가신 거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동조했다.

니체는 “나는 고독이 필요하다"라며 “보라나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존재다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생각의 힘은 고독에서 나온다고 했고, 고독이 생각에 미치는 영향은 먹을 것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고도 했다.
독일어인데 (누구의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Die Einsamkeit ist meine Heimat.. 고독은 내 (영혼의) 고향'이라는 말도 있다.
인간의 절대 고독, 신 앞에서의 단독자인 인간의 고독함을 애써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일까?

그러나 이 시구절을 한번 음미해 보시길 바란다.
'그 사막에서 그는/너무도 외로워/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오르텅스 불루의 시 '사막')
그렇다. 타인이 없는 곳은 바로 '사막'과 다름없다.
인간이란 존재는 오직 '공동존재(le co-esse)를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내며, 나의 존재를 인정해 줄 너' 너의 존재를 인정해 줄 '나'가 없을 때 즉 '외로움'을 죽음만큼 견딜 수 없어 한다.
인간은 자신을 인간으로 알아주는 상대 앞에서만 인간으로 존재하며 그런 상대가 없는 곳에서는 자신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타인에게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기를 확인하게 된다.
오죽하면. 마르틴 부버는 '태초에 (말씀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가 있었다'라고 했을까?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시작해서 겹겹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관계를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그 관계없인 살 수 없는 게 인간의 한계라면 한계다.
그래서 모두들 관계 중독에 빠져 있고,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위의 시구절처럼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이라도 있어야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누구나 그렇게도 처절하게 외로워하면서도 누구하고도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 않으며,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카톡 질을 하는데도 그 누구도 진정하게 만나지 못하는 것이 또한 현대인들이다.
사실 우리가 외로운 것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진정한' 만남이 없어서임을 깨닫지 못한다.

'고독한 군중 The Lonely Crowd'이란 책이 있다.
군중 속에 있기에 더욱 외로워지는 개인, 즉 타인을 통해서만 개성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현대인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이런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현상이 되었고,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고독 사회, 분노 사회, 사회적 우울증 등이란 말들이 이미 꽤나 익숙하게 들린다.
영국에서는 '외로움 장관 Minister for Loneliness'이라는 새로운 부처가 생겼다고도 한다.

모든 것이 그러하지만, 고독이니 외로움이니 하는 인식이나 감정도 양가적일 수밖에 없다.
적당히 견딜만한 외로움, 자기 스스로를 정화하기 위해 택한 고독은 긍정적이다. 법정 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옮긴다.

"사람은 때로 외로울 수 있어야 한다. 외로움을 모르면 삶이 무디어진다.
하지만 외로움에 갇혀 있으면 침체된다.
외로움은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이라 할까...
그런 바람을 쐬고 나면 사람이 맑아진다.'

스티브 잡스는 하루에 5시간 이상을 혼자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우스개로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것이 혼자 있기, 혼자 생각하기라고 한다.
제발 모여서 목청 높여 쓸데없는 정치 얘기하지 말고, 고독을 훈련해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서만 또 다른 자신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다.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들의 15가지 특성을 밝힌 연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초월성'이다.
즉 혼자 있어도 상처받거나 불안해하지 않으며, 고독과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는 특성을 말한다.
이러한 초월성은 주위 사람들에게 냉정함, 애정의 결여, 우정의 부재, 적의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그건 그저 평범한 자들의 편견일 뿐... 옛 말씀도 그러하다.

靜坐然後知平日之氣浮 (정좌연후지평일지기부) 고요히 앉아본 뒤에야 보통 때의 기운이 들떴음을 알았고,
守默然後知平日之言燥 (수묵연후지평일지언조) 침묵을 지키고 나니 지난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省事然後知平日之費閒 (성사연후지평일지비한) 일을 줄이자 평소에 시간을 허비했음을 알았으며,
閉戶然後知平日之交濫 (폐호연후지평일지교람) 문을 닫아걸고 나서야 평일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끝으로 고독을 즐기며 혼자서 술 마시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마친다. 

花間一壺酒 (화간일호주) 꽃 숲속에 술 한 병 놓고 
獨酌無相親 (독작무상친) 벗도 없이 홀로 술을 마신다
擧盃邀明月 (거배요명월) 잔을 드니 마주치는 밝은 달
對影成三人 (대영성삼인) 그림자 비치니 어느새 셋 일세
月旣不解飮 (월기불해음) 달은 원래 술을 마실 줄 모르고 
影徒隨我身 (영도수아신) 그림자는 그저 나를 따르는 움직임
暫伴月將影 (잠반월장영)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하며
行樂須及春 (행락수급춘) 봄날의 행복을 스치듯 느껴본다
我歌月排徊 (아가월배회) 노래를 부르면 달은 서성이고 
我舞影凌亂 (아무영능란) 춤을 추면 그림자는 덩실댄다 
醒時同交歡 (성시동교환) 취할 때 까진 함께 맘껏 즐기지만 
醉後各分散 (취후각분산) 취한 후엔 조용히 흩어 진다
永結無情遊 (영결무정유) 정에 얽매이지 않는 긴 사귐 
相期邈雲漢 (상기막운한) 먼 은하에도 다시 계속되었으면
작가의 이전글 존엄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