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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반맨 Aug 08. 2023

꼰대라떼

49금 인문학 사전 18.

최근에 개 때문에 ‘개망신’을 당한 적이 한 번 있다. 

개끈을 하지 않고 산책 나온 아줌마에게 한마디 했는데, ‘개거품’(실은 게거품이 맞는 말이다)을 물고 달려드는 바람에 피가 거꾸로 솟았던 ‘개차반’ 같은 씁쓸한 경험이었다.  

요즘 들어 괜히 쓸데없이 나서고, 시비 붙고, 세상에 삿대질을 해대는 일이 많아지면서, '꼰대'라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는 자격지심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나 정도면 양반이다. 

지인 중에는 자신의 무용담을 침 튀기며 전하는데, 정말 내가 창피할 정도의 꼰대짓을 하고 다니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나 소싯적에 방귀 좀 뀌었다 하는 작자들이 이런 ‘꼰대’ 짓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한창 잘 나갈 때 갑질 하던 버릇을 아직 놓지 못한 것이다.

젊은 직장인들의 절절한 하소연을 넘어, 이직이나 부서 이동의 심각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게 바로 상사들의 ‘꼰대짓’이다.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주구장창 읊어대는 확인 불가의 소싯적 무용담, 국가 경영을 넘어 세계 평화를 책임진 양 핏대 세워 떠들어대는 정치 신념, 쌍팔년도 풍속 사범 단속을 연상시키는 용모(특히 머리와 치마 길이)에 대한 관심을 넘는 간섭 등등..

집에서도 지긋지긋하게 듣는 잔소리를 공적인 관계에서도 하루 종일 들어야 하니 이런 ‘꼰대’들의 언행은 젊은이들에겐 거의 사회적인 공해에 다름없다.


꼰대의 6하 원칙이란 게 있다. 

1. who 내가 누군지 알아? / 2. when 나 때는 말이야 (‘라떼’다) / 3. where 어디서 감히 / 4. what 네가 뭔데? / 5. why 내가 왜? / 6. how 어떻게 나한테..

누가 만든 말인지 모르겠지만 ‘꼰대짓’을 온몸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의 처절하고도 예리한 통찰이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공해 수준의 ‘꼰대짓’이 지금 이 시대 이 나라에만 있는 현상이 아닌, 거의 생물학적 연원이 있어서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조금 위안이 될까? 

아니 위안이 아니라 더 심한 절망감을 느끼게 되려나?


‘라떼’로 시작하는 ‘꼰대짓’은 사실 중년 이상 남성의 보수화 경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 나이를 들면 이렇게 ‘보수꼴통’이 되고 ‘틀딱’이 되는 걸까? 

이런 말이 있다. ‘젊어서 좌파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거고, 늙어서도 좌파이면 머리가 없는 거다.’ 

이 말에서 좌파를 진보로 대치하면 늙어서도 보수주의자가 아니면 머리에 든 게 없는 사람이란다. 

늙으면 모두 보수주의가 된다는 말이다.


왜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될까?

뇌신경학적으로 설명하면, 늙어가면서 뇌의 신경세포가 감소하면서 인지능력이 저하된다는 것. 

또한 나이가 들면 전두엽보다 편도체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공포나 두려움을 관장하는 부분이 편도체란다. 

전두엽이 발달한 젊은 시절에는 불안정한 변화에 적응을 잘하나, 나이가 들어 전두엽이 아닌 편도체에 많이 의지하게 되면서 보수화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명이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 컬리지 런던 박사팀의 ‘도파민 호르몬 연구’에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생리적으로 쾌감을 느끼도록 하는 도파민 호르몬의 분비가 나이가 들수록 감소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뇌 구조 자체에도 변화가 생기는 생체적 이유도 있다. 즉 우측 후두정엽 회백질의 양이 나이가 들수록 감소하는 경향이 있으며, 후두정엽의 회백질 양이 적은 사람일수록 보수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덧붙이면 ‘연령효과이론’도 있다. 

나이가 들면 신체적. 정신적 대응 능력이 점점 퇴화되고, 기대수명이 줄어들면서 일종의 방어기제가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규범 지향성과 지배성이 강해지면서, 자신이 성취한 것을 지키려는 마음과 자신에게 익숙한 생각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점점 강화된다고 한다. 

또한 경험과 지식이 점차 쌓이다 보니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더욱 신중하게 고민하는 경향을 띌 수밖에..


인간이 이렇게 타고나고, 그렇게 진화해 왔다고 하니 그 역사적 사례야 말해 무엇하겠는가마는...

기원전 수메르 문명의 벽화에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라고 쓰여 있다는 말은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가 "요즘 아이들은 사치를 좋아한다. 버릇이 없고 권위를 조롱하며, 어른을 존경하지 않고 일하고 행동하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한다. 요새는 어른이 방에 들어와도 일어서지 않는다. 부모에게 말대꾸하고 수다스럽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스승에게도 대든다."라고 한 말은 역사적 사실이다.(아니, 그렇다면 플라톤이 그렇게 대들었나?).

17세기 어느 수녀님은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제가 늙어 가고 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제발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는 않게 해 주십시오. 특히 제가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오죽하면 기도하면서도 ‘꼰대짓’ 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을까?

이렇게 뇌과학적으로도 생리학적으로도, 게다가 역사적으로 풍부한 ‘꼰대짓’이 기왕에 있었으니, 이제  위풍당당하게 ‘꼰대’ 짓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기도 한다만...


그렇담 ‘요즘 것들’은 이러한 ‘꼰대짓’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물론 모든 꼰대짓이 말도 안 되는 억지 거나 자기주장만은 아니라는 건 안다.   

그러나 예전에 유시민 씨가 장관 할 때 들은 말을 ‘꼰대’들이 되새겨봐야 한다. 

‘어쩌면 저렇게 옳은 얘기를 저 다지도 싸가지 없게 말할 수 있는가?" 

내 가족에게조차도(아니, ‘특히’다) 되지도 않게 지적질을 당하거나 간섭이 들어오면 싫은데 하물며...

젊은 세대가 살아갈 세상이고 책임질 인생인데, ‘꼰대’들이 나설 일이 아니다.

사실 그들이 ‘꼰대’를 혐오하는 데는 세대 간의 갈등이 깔려 있다. 

압축고도성장기의 과실을 알뜰하게 따먹은 ‘꼰대’들에 비하면, 그들 밀레니얼 세대니 MZ세대들의 앞날은 암울하기만 하다. 

국민연금은 노인네들이 먼저 다 받아 처먹어 30년이면 고갈될 상황이고, 건강보험료도 그네들 뒷바라질 하느라고 해마다 인상되기만 한다. 

그러니 누릴 거 다 누린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자산과 소득을 ‘세대 착취’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을 수밖에 없다. 

날만 새면 파스 처방받으려 병원을 노냥 안방 드나들 듯이 하며 건강보험 축내는 ‘틀딱’들이 전철 무임승차도 눈꼴 신데 노약자 보호석에 ‘쩍벌’하고 앉아 다니는 게 꼴 보기 싫다.

정치적으로도 ‘보수 꼴통’이 되어 태극기 들고 다니면서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 되고, 미래 사회를 위한 변화와 개혁은 안중에도 없다. 

뛰는 가슴을 세월과 함께 내팽개친 ‘꼰대’들의 머리는 철저히 이기적이고 교활하기조차 하다. 

선거 때만 되면 나대는 보수 개저씨들 때문에 좌와 우, 진보와 보수는 극렬하게 갈라선다. 

결국 이념도 없고 철학도 없는 진영 논리로 승패가 갈리고, 정치는 실종된다.


반면에 '꼰대'들이 모두 잘못됐고 항상 그른 것만은 아닐 테다. 

젊은 세대의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생각과 행동, 공동체의 미래보다는 개인의 현재를 우선시하는 소비적이고 감각적인 태도 등이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찌 됐든 미래는 그들의 것이다. 말아먹든 비벼먹든 더 중요한 당사자들은 바로 그들이다. 

그러니 그들의 미래를 우리의 관점과 기준으로 바꾸려들면 일종의 월권이다.

공자는 네 가지의 마음이 전혀 없으셨다고 했다. 이른바 공자의 자절사(子絶四)는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이다. 무슨 일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고 함부로 단언하지 않으며 자기 고집만 부리지 않고 아집을 부리는 일이 없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말씀으로 새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세대 간의 갈등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갈등,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갈등, 좌와 우의 갈등 모두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협함에 다름 아니다.

그러하니 세대, 성별, 이념, 종교 등이 가져오는 모든 갈등을 뛰어넘는 지혜와 안목을 '꼰대'들이 갖춰야 할 때다. 


그리고 이젠 그간의 고생을 끌어안고, 차근히 역사의 뒤안길로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江中後浪催前浪 世上新人趕舊人(강중후랑최전랑 세상신인간구인)…장강의 뒷물결은 앞물결을 재촉하고 세상의 새사람은 옛사람을 쫓는다.’는 자연의 섭리다.

‘桐花萬里丹山路 雛鳳淸於老鳳聲 (동화만리단산로 추봉청어로봉성)... 오동나무꽃 가득한 산길에 어린 봉황이 늙은 봉황보다 더 청아한 소리를 내는구나.'도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여명투표권을 찬성한다. 

일인 1표인 투표권을 60대는 0.8표, 70대는 0.5표, 80대는 0.3표, 이런 차별적 투표권은 많은 '꼰대'들한테 돌팔매질 당할만하지만 말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젊은이들의 넓으신 아량을 기대하며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Fui quod es, eris quod sum’ (I once was what you are, and what I am you also will be.) 로마의 장군 묘비명에 새겨져 있는 문구란다. 대충 ‘나도 한때는 당신 같이 젊었었고, 당신도 언젠가는 지금의 내 모습이 될 것이다.’

역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향적 상기'가 필요하다.  즉, 앞을 내다보기 위해서는 '라떼'로 얘기되는 뒤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한하는 뜻이렸다. 

아무튼 끝까지 꼰대스러움을 용서하시길 바라며, 엄청 늙은 가수 서유석의 노래를 추천해 본다. 

제목은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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