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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너의 손가락과 한숨

나의 첫, 사랑 큰 딸에게

by 아는 사람 가탁이

이젠 기억이 희미해져서 몇 시쯤이었는지, 무슨 요일이었는지, 그 시간에 왜 엄마가 그곳에서 너를 보았는지 알 수가 없어. 엄마 컨디션이 좋지 않아 휴가를 냈는지, 조퇴를 했는지 그랬어. 그래도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게 있단다. 지금도 그날 그 시간을 떠올리면 가슴 밑바닥에서 차롤라오는 게 있어. 네가 네 살 때 봄이었나봐 그날이...


너의 그 귀엽고 보드라운 손가락,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그 곳에 그리던 그림 그리고 네 마음...


동그라미였는지 무슨 모양인지도 기억나지 않아.

종일반으로 다니던 어린이집에 있는 딸이 보고 싶었고, 엄마를 보고 한달음에 엄마품으로 뛰어들어올 모습만 기대하며 어린이집에 사전 연락도 않은 채 네가 있는 곳을 찾았지.

'점심 먹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 친구들과 한참 놀고 있겠네'

엄마는 책이나 TV를 너무 믿고 있었나 봐. 그게 현실일거라 믿었나 봐.

오후 세시쯤이었을까 이곳저곳 기웃거려 봐도 아이들도 너도 보이지 않았어. 아무데서도 보이지 않던 너를 찾아 헤매던 엄마 눈에 들어온 아이가 있더라. 작은 창으로 겨우 들어온 햇살이 내려앉아 있던 방구석에서 창문 한 번 보고, 물끄러미 방바닥에 들어온 햇살 한 번 보고 손가락도 한 번 보더니 손가락으로 방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가 있었어. 그림을 그리는가 싶더니 고개를 들어 창문을 쳐다보고 여린 숨을 내쉬고, 엄마의 시선이 창문으로 쫓아가면 어느새 방바닥으로 내려온 시선은 손가락으로, 손가락에서 방바닥으로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그림 또 그림...


그 아이는 바로 너였어, 엄마의 첫 번째 보물.


너를 부를 수 없었어. 부르기는 커녕 네가 엄마을 볼까봐 들었던 뒤꿈치를 내리고 몸을 돌려버렸단다.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 나른한 오후에 손그림으로 누군가를 간절히 부르고 있었을까...

온몸이 아프더라 날카로운 송곳이 온몸과 온마음을 사정없이 찌르고 쓸고 지나가서 한참을 꼼짝 못한채 서 있었어. 너를 등뒤에 두고, 혹시 엄마 숨소리를 들은 네가 엄마를 부르기라도 할까봐 숨을 제댈 쉴 수 없었어.


인형놀이나 소꿉놀이를 하는 중간에 바닥에라도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지 모른다고, 다른 방에 있거나 늦잠에서 꺤 친구들이 와서 너의 외로운 그림을 어리럽히며 소란스럽게 될 거라고, 꼭 그래야 된다고 다짐 같은 기대를 하며 울고 또 울었어. 하지만 한참의 시간이 지날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고 어떻게 알았는지 원장선생님이 한달음에 달려오셔서 엄마의 모습에 당황해하셨어. 눈물범벅이 된 두 눈이 부풀대로 부풀어 있었겠지

"몇 안되는 종일반 친구들이 오늘따라 일찍 갔네요"


그날 엄마는 알게 되었어 종일토록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는 너와 너보다 한 살이 많았던 원장선생님 아들뿐이었음을...

매 순간이 그리움으로 가득했을 너의 외로움을 그제서야 제대로 알게 된 거야.

무엇을 위해 살아간다고 너를, 너의 마음을 너의 외로움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을까...

아무리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다고 해도 너무 서툴고 모자람 많았던 엄마라서 미안하고 미안해 아가...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오랜만에 마음을 씁니다.

오래전에 발행한 글의 일부를 발췌했지만,

마음은, 그 시간에도 뒤돌아보는 이 시간에도 머물러 있습니다.

솜씨는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마음은 부족하지 않으려합니다.

진심으로 가득한 글을 다시 써보려합니다.


#브런치10주년작가의꿈 #브런치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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