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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에르떼 Mar 06. 2024

내 마음의 중정

옷깃을 날카롭게 파고들던 바람이 어느새 아기 살결처럼 보드라워졌다. 봄이다. 봄이 온 것이다. 봄은 참 신기한 계절이다. 매년 맞이하는데도 불구하고 어쩜 이렇게 만날 때마다 설렐까. 아무래도 봄이 가져다주는 느낌 때문에 그런 듯하다.


봄에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두꺼운 점퍼를 벗고 움츠렸던 몸을 펴는 계절, 모든 게 새로 시작되는 것 같은 계절이라 매년 만날 때마다 설레는 것 같다. 한결 따뜻해진 봄날씨를 피부로 느끼니 내 마음도 둥둥 뛴다.


예전의 나는 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봄만 되면 우울해졌다. 겨울에는 다 같이 앙상한 채로 있었는데 봄이 되면 나만 빼고 모두들 푸른 잎과 예쁜 꽃을 피워내는 것 같았다. 초라한 내 모습이 더 돋보이는 것 같아 난 봄이 반가우면서도 미웠다.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에 파묻혀 있는 겨울이 더 좋았다. 겨울의 우울감이 더 편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봄에 대한 반감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올해는 내 마음의 나무에도 새순이 돋을 것 같다. 아직 꽃까지는 아니지만 예쁜 연둣빛 새순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불안했던 20대에서 30대에 접어들며 안정감을 찾은 걸까? 이제 내 마음의 나무도 새살이 돋아나는 듯 간지럽기 시작했다. 내 마음의 중정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20대는 찰흙으로 나를 빚어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30대는 빚어낸 나를 섬세하게 조각하는 느낌이다. 20대에는 친구들이 좋다는 걸 따라 하고 남들이 재밌다는 걸 챙겨 보곤 했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걸 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 다른 사람을 따라 하지 않고 나의 주관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더 분명해졌다. 몽글몽글한 어떤 생명체에서 윤곽이 드러나는 생명체가 되었다. 40대에는 또 어떤 느낌이 들까? 우선 지금은 30대에 집중하며 살아야겠다. 좋은 에너지로 나를 채우고 나라는 사람을 잘 알아가고 싶다. 나를 분명하게 알고 다른 사람에게 나를 설명하는데 주저함이 없도록 말이다.


나는 풍경이다. 나는 세계이다. 나는 내가 가진 전부이다. 나는 나의 집이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이다. 그러니까 나는,


요즘 읽고 있는 여름의 피부라는 책의 한 부분이다. 나는 이 문장들에 계속 눈길이 갔다. 나는 내가 가진 전부, 나의 집이며 내가 살아가는 곳이라는 말이 먹먹하게 다가왔다. 나를 미워하고 비난했던 어리숙한 20대의 내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다른 사람에게는 따뜻한 말을 잘도 건네었으면서 왜 나에겐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왜 나를 절벽 끝으로 밀어붙이며 모질게 굴었을까.


30대가 된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끌어안고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다. 스스로를 더 아껴주고 또 위해주며 나에게 집중하고 싶다. 다양한 조각칼로 나라는 사람을 섬세하게 조각하여 더 많은 새순을 키워낼 수 있는 자양분을 만들고 싶다. 언젠가 피어날 예쁜 꽃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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