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그리고 편안히
2개월. 2개월 만에 모든 게 달라졌다. 씩씩하게 두 발로 잘 걸어 다니시던 외할아버지의 병마는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5월까지만 해도 얼굴빛도 좋으셨고 음식도 잘 드셨던 외할아버지께서 갑자기 허벅지의 통증 때문에 불편을 겪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한 질병인 줄 알았는데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암이라고 했다. 80대 노인분들에게는 흔히 찾아오는 병이라며 항암은 힘드실 테니 약 처방으로 하루라도 편히 계시게 하는 게 낫다고 했다.
암이라니.
그것도 말기암이라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퇴근길, 엄마와 통화를 하며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 눈물이 왈칵 났다.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고 또 이렇게나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사실이 더 믿기지 않았다. 엄마는 그때부터 바빠지셨다. 더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우리 집에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삼시세끼 따뜻한 밥을 해드리며 시간을 보냈다. 나도 주말에 집에 내려가 외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함께 올림픽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외할아버지 몸속에 암세포가 있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건강해 보이셨다. 다만 씩씩하게 걷던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한 발짝 겨우 떼기 힘들어하시는 외할아버지는 내가 왜 이렇게 되었냐며 허허 웃으셨다. 안 그래도 마르신 외할아버지의 몸은 더 앙상해졌고 얼굴 볼살은 쏙 빠져서 살가죽만 겨우 붙어있는 정도였다. 얼굴빛도 흙빛으로 변해있었다.
하지만 식사도 잘하시고 예전에 우리 집에 오셨던 이야기도 하시며 정정하신 모습을 보이셔서 마음이 놓였다. 외할아버지께서 사 오신 과자를 같이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외할아버지와 셀카도 같이 찍었다. 며칠뒤, 외할아버지는 댁으로 돌아가시고 약 드시고 잘 계시는 줄만 알았는데 날이 갈수록 상태는 더 심해졌다. 약이 잘 안 들어서 더 아파하시고 힘들어하셨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넘어져서 다리가 아픈 줄 아시고 얼른 나아서 콩을 심어야 한다며 다음을 내다보고 계시는데 외할아버지의 다음이 언제까지 허락될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정정하게 계시던 외할아버지께서 이렇게 갑자기 몸이 악화되다니… 그리고 이렇게나 빨리 증상이 심해지시다니… 너무 갑작스럽고 마음이 아픈데 이 병이 나이가 많이 들면 찾아오는 병이라고 이야기하는 의사들의 그 아무렇지 않음이 더 마음을 사무치게 했다.
지난 9월 첫째 주 주말, 외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말씀을 듣고 나와 동생은 외할아버지를 뵈러 병원에 갔다. 눈도 못 뜨시고 극심한 고통에 팔을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너무 아팠다. 나와 동생은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리고 그동안 사랑 많이 주셔서 감사했다고 눈물로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얼마 전 외할아버지께서는 영영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
장례식장에 가서 영정사진을 보니 심장이 턱 막혔다.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가슴 아프고 안쓰러웠다. 외할아버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계속 나왔다. 입관식에서 외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뵈었다. 다들 저마다의 그리움과 후회를 안고 목놓아 울었다. 나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흐르는 눈물 속에 외할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발인날 장지에서 땡볕 밑에서 제사를 모시다가 엄마는 열사병으로 쓰러지셨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너무 울다가 뜨거운 햇빛에 탈진한 것이다. 가족을 보낸다는 건 이토록 아프고 슬픈 일이구나. 이별이 정말 아프고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또 외할아버지와 이별을 겪으니 그 아픔이 더 사무치게 와닿았다.
평소에 안부 전화를 드리면 늘 반가워하시며 고맙다고 말씀해 주시던 외할아버지. 새해에 절을 드리면 늘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아주시던 외할아버지. 연락을 자주 줘서 너무 고맙다며 내 손을 꼭 잡아주시던 외할아버지. 한 많은 대동강 노래를 즐겨 부르시며 김밥을 가장 좋아하시던 외할아버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슬프다. 외할아버지께서 주신 따뜻한 사랑을 마음에 품고 영원히 그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외할아버지, 사랑하고 또 사랑해요.
따뜻한 사랑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고통 없는 그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