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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ta Nuova

by 수에르떼

요즘 나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결혼을 해서 달라진 부분도 있지만 본가에서 키우던 강아지 깜순이를 데려오고 나서 확실히 달라졌다.

올해 8살이 된 깜순이는 원래 본가에서 키웠었다.


잔디가 있는 마당에서 여기저기 다니며 자유롭게 살던 깜순이. 엄마의 세심한 돌봄으로 하루에 4번은 꼭 산책하는 100% 실외배변 강아지인 우리 깜순이.

하지만 마당에서 생활하니 날씨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아야 했고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했다. 예전보다 세심하게 지켜보고 챙겨야 할 부분이 많아졌다.


엄마가 깜순이를 맡아주고 계시지만 실질적인 보호자는 나였다. 깜순이가 우리 집에 온 날부터 깜순이와

사랑에 빠졌고 내가 책임지고 깜순이를 키우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취준과 대학생활, 그리고 회사생활을 하며 죄송하게도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 깜순이를 키울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꼭 데려오고 싶었다.


연애할 때 오빠에게 종종 깜순이의 이야기를 했고

강아지를 좋아하는 오빠는 강아지를 키우는 게

어릴 적 꿈이라며 같이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해준 오빠가 참 고마웠다.

깜순이의 밀착 케어가 필요할 시기가 오면 신혼집에 데려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그 시기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언젠가부터 찐득한 까만 눈꼽이 자꾸 생기는 깜순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는데 아무래도 실외보단 실내에서 키우는 게 눈에 자극도 덜하고 낫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깜순이는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마당에서 이곳저곳을 활보하다가 아파트에 두려니

걱정도 되고 괜히 내 욕심 때문에 오히려 깜순이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깜순이는 고맙게도 적응을 매우 잘해주었다.


100% 실외배변인 우리 깜순이를 위해선 나도 매우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본가에서처럼 하루 4번 산책은 불가하겠지만 산책할 수 있는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 산책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기상시간은

새벽 5시로 바뀌었다.


출근 전에 여유롭게 씻고 산책을 시키려면 일찍 일어나는 게 편했다. 처음에는 새벽 기상이 힘들었다. 알람을 듣고 눈은 금방 떴지만 산책하면서도 잠이 덜 깨서 라디오를 듣거나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퇴근 후에는 소파에 퍼질러져서 숏츠를 보며 쉬는 게 일상이었는데 그 일상도 사치가 되었다.


이제는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있었던 깜순이의 격한

반김을 온몸으로 받아주며 바로 산책 나갈 준비를

한다. 산책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깜순이는 1시간은

기본으로 걷는다. 처음에는 힘들어서 집에 가자고

끌어도 봤지만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자기 의사 표현을 하는지…

깜순이의 생각 회로와 행동들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이 생활이 몸에

익으니 내 신체리듬도 점점 아침형 인간으로 변했다. 원래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으면서 책도 보고

글도 쓰고 TV 보면서 놀기도 했는데 이제 그런 생활은 꿈도 못 꾼다. 생각 없이 늦게 잤다가 다음날 지옥을 경험하고 난 뒤 현명하게 일찍 잠자리에 눕기로 했다.


깜순이 덕분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른이가 된 것이다. 깜순이와 새벽 산책을 하며 보는 다양한 광경도 참 재밌다. 아파트 단지 내 정말 열심히 운동하시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출석률 90%를 자랑하는 그분은 참 열정적으로 운동하신다. 허리 돌리기를 남들의 2.5배로 빠르게 하시는데 너무 신기해서

자꾸 쳐다보게 된다. 감히 따라 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새벽 거리는 조용할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새벽의 거리는 생각보다 꽤 분주했다. 삼삼오오 모여 달리기를 하는 러닝크루가 세상에 그 시간에도 있던 것이다. 나는 깜순이를 산책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일찍 일어나서 산책을 하는 건데 그분들은 자의적으로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는 게 아닌가.


정말 엄청난 분들이다. 심지어 혼자 뛰는 분들도 꽤나 많았다. 출근 전에 이렇게 부지런하게 움직이다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덕에 새벽의 거리는 활기차고 건강미가 넘쳐났다. 나도 깜순이 덕분에 새벽 거리의 건강한 에너지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생각보다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분들도 많이 보였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는 차들을 보며 이 시간에 출근을 하다니 정말 장난 없구나 생각했다. 회사가 멀어서 그런 걸까, 새벽부터 일을 시작해야 해서 그런 걸까. 안쓰럽기도 대단하기도 한 그분들의 새벽 출근을

괜스레 응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벽 배송을 하는 분들도 많이 봤다. 샛별배송이니 로켓배송이니 말로만 들었는데 이렇게 눈앞에서 부지런하게 배송을 하고 있는 분들을 보니 정말 힘드시겠구나 싶었다. 이분들의 발 빠른 배송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배송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문 앞에 놓여있는 택배를 보면 반갑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분들의 노고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정말 감사하고 대단한 분들이다.




퇴근 후 집에 가면 몰려오는 피곤에도 불구하고 산책을 원하는 깜순이의 눈을 보면 힘이 절로 난다.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열심히 걷는 깜순이의 뒷모습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깜순이 덕분에 우리 동네에 여러 공원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쁜 새소리를 듣다 보면 무지개에서 소리가 난다면 이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어떤 음악보다도 맑고 아름다운 새소리가 참 좋다.

1시간 정도 산책한 뒤 집에 오면 만족한 듯이 웃고 있는 깜순이를 보면 뿌듯해진다. 깜순이 덕분에 내 일상이 부지런해지고 건강해졌다.


비록 퇴근 후 쉴 수 있는 저녁시간이 줄어들고 예전보다 글을 자주 못쓰지만 깜순이와 함께 하는 이 일상이 더 행복하다. 퇴근하고 집에 갈 때마다 헬리콥터마냥 흔들어대는 꼬리로 격하게 환영해 주는 깜순이 덕분에 나와 오빠는 새로운 행복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새롭고 건강한 행복을 알려준 깜순이에게 정말 고맙다.

우리 앞으로 쭉 이렇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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