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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ure Oct 24. 2022

인종차별이야 뭐야? 한녀의 한을 풀다

차별당한 것 같은 찝찝한 마음을 개운하고 교양 있게 해소하는 방법



캐나다에 와서 만난 한국인 이민자 친구 둘과 오랜만에 만났다. 

특히 다운타운에 사는 한 명은 일 년 넘게 못 보다가 만난 거라 쌓인 얘기가 많았다. 그 친구가 예약한 레스토랑 패티오에 앉아 한참 먹고 떠들고 놀았다.



음식은 맛있었고 날씨도 좋았고 서버도 친절하고 다 좋았다. 좀 오래 앉아있었다 싶어서 뭐 더 시킬까 하던 중에 어떤 스탭이 와서 테이블 타임 리밋이 한 시간 반이라며, 10분 정도 있다가 일어나 달라는 투로 말했다. 

~투로 말했다고 한건 그가 정확하게 얘기하지 않고 다소 웅얼거렸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약간 벙쪘고 이런 상황이 늘 그렇듯 그라데이션으로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인종차별인 것 같다고 경고등이 울리는데, 확실하지는 않으니 은은한 기분 나쁨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다가 아무 때나 불쑥 치민다.


이거 인종차별인가? 아닌가? 나는 그때 왜 정확히 물어보지 못했지? 

인종차별이면 차별이니까 짜증 나고, 아닌 경우에도 내가 그 상황을 곱씹게 만든 게 짜증 나고.

샤워할 때 생각나고, 자려고 누우면 생각나고. 

큰 일은 아니니 얻다 대고 화내기도 애매하고 잔잔하게 계속 빡침이 올라온다.


우리 셋은 이 기분이 뭔지, 정당한 일이 맞는지,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한동안 의논했다.



- 그러니까 얘기해요 우리. 그냥 얘기나 해 봐요.

- 말은 해야 나중에 덜 빡칠거 아냐.



서비스를 받는 곳에서 유쾌하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이의를 제기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불편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기도 하고, 진상으로 보일까 걱정되기도 하고.


그런데 여기서는 팁도 내는데! 진상을 부리자는 게 아니라, 진짜 테이블 시간제한이 있는 건지 물어나 봐야 오늘 집에 가서 발 뻗고 잘 것 같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우리 중 제일 영어도 잘하고 캐나다에 오래 있었던 친구가 우리 담당 서버한테 상황을 설명했다.

아주 담백하게.



- 저 스탭이 와서 테이블 시간제한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게 맞냐, 사전에 제한시간에 대한 얘기를 해줬으면 좋았을 거다. 그가 awkward 하게 얘기해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 이런 얘기 처음 해 보는데 매니저랑 얘기하고 싶다.



우리 테이블 담당 서버는 적절하게 눈을 맞추며 경청했고, 상황에 대해 사과했고 매니저를 곧 불러주겠다고 했다. 곧 매니저가 왔고 역시 적절한 아이컨택과 함께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 예약 사이트에 테이블 이용 제한시간에 대해 적혀 있긴 한데, 테이블에 앉을 때 다시 한번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건 우리가 잘못했다. 그리고 그 서버가 기분을 좋게 하지 않은 것을 진심으로 사과한다, 미안하다. 여러분이 우리 레스토랑에서 좋은 기억만 남길 원하니 제발 있고 싶은 만큼 오래 있어달라. 우리 티라미수가 맛있는데 디저트까지 먹고 천천히 있다 가라.



이미 여기에서 기분은 다 풀렸다.

담당 서버와 매니저 모두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느껴졌기 때문에.

어떤 보상을 바란 것도 아니고 나중에 기분 찝찝할까 봐 말이나 해본 건데, 예상하지 못한 진정성 있는 대응에 공짜 디저트까지 얻게 돼서 우리는 (좋게) 벙쪘다.


잠시 후 아까 우리에게 웅얼웅얼 말했던 스탭이 와서 또 사과했다. 보니까 어리고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능숙하게 얘기하지 못한 것 같았다. 매니저가 조져서 어쩔 수 없이 굽실대며 사과하는 게 아니라, 그도 역시 담백하게 말했다. "마실 것 더 드릴 테니 원하는 드링크가 있음 말해달라" 고까지. 아이고, 이미 충분하다고 우린 동시에 손사래를 쳤다.






티라미수는 맛있었고 기분도 좋아졌다.

작은 승리,라고까지 말하면 너무 거대한 것 같지만

우리는 스스로와의 내적 갈등에서 승리한 것과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들에서 그동안 별 말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런 것들이 있었겠지.


어차피 이 사람들도 시급 노동자일 텐데 피차 불편한 상황 만들면 뭐하나

진상으로 보이기 싫다

감정이 앞서서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할 것 같다

큰일도 아닌데 대충 넘어가자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서 나 스스로의 기분은 안 보이는 척 뭉개고 넘어가기. 아마 다들 이런 경우가 많지 않을까. 나 자신보다 사회적 시선을 우선시한 경험은 하수구의 기름때 찌꺼기같이 켜켜이 마음속에 쌓여 나를 힘들게 한다. 타르 같은 응어리가 속에서 끈적이는데,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지 방법을 알지 못해서 이날 이때까지 그냥 놔뒀던 것. 그런데 해결책이 너무 간단해서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말하면 되는구나. 그냥 담백하게 말하면 되는구나.

내가 예민한 거 아닌지, 피해의식 느끼는 거 아닌지 고민하지 말고.

상황도 짜증 나고 말 못 한 스스로에게도 짜증 나는 여러 겹의 부정적 여파를 끊을 수 있구나.

이제 자다가 이불 차지 않아도 되니 내 건강과 수명에도 도움이 되는구나.



천년 묵은 한녀의 한을 한큐에 풀어준 친구에게 건배.

그의 소셜 스피킹 스킬에 건배.

마치 영어 듣기 평가같이 모든 발화자가 세련된 대화를 나눈 전체 상황에도 건배를.


아마도 나는 이 레스토랑에 구글 평점을 후하게 줄 것 같고,

패티오에서 친구들과 행아웃 하는(!) 쿨해 보이는(!) 토론토니언에(!) 조금은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싶다.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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