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어떤 민족일까. 한의 민족이라고도 하고 백의민족이라고도 한다. 최근에는 배달의 민족이 제일 친숙하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국민성을 생각하면 우리는 공부의 민족이다.초중고에서 대학입시와 취업준비까지 전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한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재테크와 각종 자기 계발에 매진한다. 은퇴할 시점쯤엔 제2의 인생을 위해 자격증을 따고 다시 시험 준비를 한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공부에 진심이다. 공부가 생활화돼 있고, 무엇이든 시작부터 잘하기 위해 이론과 기술을 먼저 습득하려는 태도가 몸에 깊게 배어 있다. 운동이나 요리나 게임이나 여행이나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무언가를 시작할 때면 온갖 곳에서 정보를 얻고, 최신 자료를 긁어모으고, 효율적인 방법을 연구한다. 근데 나는 여기서 한 가지가 궁금하다. 이렇게 공부에 진심이면서, 모든 걸 지나치다 싶을 만큼 열심히 공부하면서 왜 행복에 대해서는 공부하지 않는 거지.
돈을 많이 벌려는 것, 운동을 통해 아름다운 몸을 만드는 것,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업을 얻는 것, 이 모든 것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 아닐까? 근데 왜 정작 행복에 대한 연구나 공부에는 게으를까.자기 계발도 공부도 이렇게 열심히 하면서 늘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애쓰는 민족이다. 그렇게 애쓴 결과가 전 세계 자살률 1위, 출산율 꼴찌, 행복도 최하위라는 결과다.
우리는 좀 더 행복해야 하고, 이를 위해 행복에 대해 좀 더 공부해야 한다. 무엇보다 더 좀 더 '잘' 행복할 필요가 있다.가령 가치투자를 공부한다고 모두가 워런 버핏이 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확률적으로 무작정 아무 종목이나 샀다 팔았다 하는 사람보다는 돈을 더 벌 확률이 높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행복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깊게 생각하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해 본 사람이, 조금 더 행복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결국, 행복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공부의 기술처럼 요리의 기술처럼 정답에 가까워지는 기술을 안다면 더 오래, 더 쉽게, 더 빠르게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 역시 행복해지려고 발버둥을 치며 살아왔다. 늘 행복하고 싶어서,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외롭고 슬플 때도 빠르게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행복에 대해 공부했던 것 같다. 확실히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배운 행복해지는 방법 세 가지를 공유하려 한다.
1. 내 마음 통제
행복 = 만족/욕망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나 불교에서 노자와 공자까지, 위대한 현자들이 말하는 행복론은 일맥상통한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리가 불행해지는 이유가 외부의 것들을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외부의 상황, 사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 등 나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도 우리는 마음대로 통제할 능력이 없다. 그런데 이를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또 통제하려 하는 데서 좌절과 실망이 찾아온다는 거다. 통제할 수 있는 건 나 자신, 그중에서도 내 마음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내 마음을 다스린다면 외부의 것에 흔들리지 않고 늘 평안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불교에서도 모든 고통은 욕망에서 온다고 말한다. 욕망이란 건 끝이 없고, 하나의 욕망은 충족되는 순간 또 다른 욕망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욕망을 없애지 않으면 결코 해탈할 수 없다고 말한다. 노자는 만족을 만족으로 알면 늘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공자 역시 행복을 본인 키보다 높거나 낮은 곳에서 구하지 말고 본인의 키높이에서 구하라고 말했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여러 연구나 이론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좋은 집도 늘 누리면 무뎌진다. 인간은 여기서 더 이상 어떠한 만족도 자극도 얻지 못하게 된다. 결국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고.
결국 쉽게 말해서, 행복하려면 무언갈 이루려 노력할 게 아니라 마음을 통제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행복을 가장 직관적이고 짧게 정의해 보면 다음과 같은 공식이 나온다. 행복=만족/욕망. 이 공식으로 본다면 분자인 만족은 그 수치가 정해져 있다. 어떤 자극도 일정 수준이나 기간을 넘어서면 무뎌진다. 만족이 지속되면 인간은 곧 이에 적응해서 더 이상 만족스럽지 않게 된다. 이에 반해 욕망은 끝이 없다. 외부에서 수시로 새로운 욕망이 주입되고, 하나의 욕망을 충족하면 다른 욕망으로 대체된다. 분모는 무한정 커질 수 있고 분자는 한정적이다. 행복은 요원해진다. 그래서 분모, 즉 욕망을 줄여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다.
어차피 욕망이란 건 끝도 없다. 뛰면 걷고 싶고, 걸으면 서고 싶고, 서면 앉고 싶다. 1억을 벌면 2억이 벌고 싶어 진다. 오늘 치킨을 먹으면 내일은 고기가 먹고 싶다. 내 신상 가방에 만족하다가도 친구의 샤넬백을 보고 나면 내 가방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욕망은 채워봐야 늘 다른 형태로 다시 찾아온다. 늘 새로운 욕망이 생겨난다.
결국 이를 확실하게 충족시키기란 요원한 일이다. 우리는 욕망을 이루기 위해 무언갈 성취하려고만 하지 말고 욕망이란 것 자체가 더 커지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그게 훨씬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다.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만족할 것, 외부의 것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 내가 욕망하고 있는 게 내 욕망이 맞는지 주입된 욕망은 아닌지 구별할 것. 이렇게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게 행복의 유일한 방법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 같다.10억을 버는 건 어렵지만, 10억을 벌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압박을 버리기는 쉽다.
일기를 써보면 좋겠다. 지금 내 불만은 무엇이고 내가 얻고자 하는 것,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걸 왜 원하는지, 이루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내 안으로 파고 또 파고 들어가며 해부해 보자. 어느 순간 그 욕망이 하잘 것 없고, 사소하며, 굳이 충족시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란 현타가 올 때가 있을 것이다.
이건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나 우리나라의 N포 세대가 행복을 달성한 세대는 아니지 않은가. 다만 수많은 욕망들로 인해 늘 괴롭고, 힘들고, 뒤척여야 했던 스스로를 다독였던 방법을 공유하고자 함이다. 늘 열등감과 박탈감과 압박감에 쫓겨 살던 내가 책을 읽고 공부하며, 스스로를 구원했던 기술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두 번째, 세 번째 방법은 다음 편에서 이어가도록 한다. 가끔은 지옥일 수 있는 이 세상을 모두가 저마다의 속도로 평안하게 건너갈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