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참 빠르게 변한다. 처음에만 해도 '라떼는 말이야'로 대표되는 꼰대에 대한 비판이 붐을 이뤘다. 동시에 온갖 매체에서 MZ라는 단어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사회도, 문화도, 경제도 뭐든지 MZ라는 키워드로 말을 만들고 설명하고자 기를 썼다. 이에 대한 반발 작용일까, 이제 MZ라는 단어 자체에 신물을 표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어느새 꼰대에 대한 조롱과 비난은 MZ에게로 타깃이 넘어왔다. SNL을 필두로 각종 콘텐츠에서 MZ는 희화화되고 비판의 대상이 된다. 어느덧 '구시대적 꼰대' VS '개념 없는 MZ'의 대결 구도로 사회 분위기가 흘러가는 양상이다.
'꼰대'로 통칭되던 고연차, 고직급의 상사들에 대한 비판부터 '요즘 것들'로 퉁쳐지는 MZ에 대한 비판까지 양 쪽의 이야기 모두에는 어느 정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동의하는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MZ가 가져온 긍정적 변화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MZ란 세대 자체에만 이목이 집중되고, 그들이 얼마나 미성숙한 사회인인지, 개념이 없는지에만 초점이 잡히는 게 안타깝다.
회사에 입사한 이래로 군대식 문화가 남아있던 시기가 3분의 1, 꼰대 담론이 성행하며 회사 문화가 크게 바뀌던 시기가 3분의 1, MZ에 대한 비판이 득세하던 시기가 3분의 1이다. 이 시간들을 겪으며 MZ로 비롯된 사회의 변화들이 회사 생활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바꿨나 이야기해보려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겠다.
MZ가 없는 회사, MZ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회사야말로 지옥이다. 단언해서 말하는데 MZ가 많은 회사, 많은 부서를 골라야 한다.
1. "요즘 MZ 말이야. 왜 이렇게 개인주의적이야? 자기밖에 몰라..."
맞는 말이다. 요즘 애들 정말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때론 이기적이고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남에게도 간섭하지 않고 오지랖 부리지 않는다. 타인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거나 충고하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누구도 타인에게 내 삶을 통제당하고 싶지 않다. 나를 길러준 부모님이 나 잘되라고 하는 잔소리조차 듣기 싫지 않나. 내가 사랑하는 연인이 내가 걱정돼서 행하는 간섭조차 계속 당하면 불편하지 않은가.
'우리'로 통칭되던 회사의 예전 인간관계는 나름의 정이 있고 끈끈함이 있지만, 대신 괴롭다. 거긴 '내'가 없다. 내가 싫어도 '팀'의 일이니 참여해야 한다. 내가 좀 피해를 보고, 희생을 해도 '우리'를 위해 참아야 한다. 우리니까. 팀이니까. 나 잘 되라고 하는 소리니까. 나에 대한 간섭도, 통제도, 싫은 소리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나'로 태어났다. 각자가 고유함과 특별함이 있다. 개인으로 태어나서 개인으로 살아간다. 그 누구도 '우리'로 태어나지 않았다. 나를 버리고 우리가 되는 건 본성에 역행하는 일이다. 개인이 좀 더 존중받고 개인에 초점이 맞춰지는 건 결국 절대다수의 행복에 훨씬 유리하다. '우리'라는 이름 아래 다수에게 영향력과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 외에는 사실 개개인일 때가 우리는 훨씬 행복하고 편하다.
그러니 개인이 먼저가 되는 분위기를 만든 MZ를 욕해서는 안 된다. 일부 지나친 소수의 사람들의 행동이 눈살 찌푸려질 때도 있지만, 사회화가 잘 된 개인들은 모두 '우리'가 되어야 할 때와 '내'가 되어야 할 때를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
2. "요즘 애들은 기본적인 업무 태도가 엉망이야!
출근은 업무 시작 직전에 하고, 칼퇴하고...."
맞다. MZ들은 상대적으로 출퇴근 시간도 칼 같고, 자발적으로 추가 근무를 하거나 일을 찾아 하지도 않는다. 상대적인 관점에서는 일도 덜하고 애사심도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왜 일이 우리 삶의 전부여야만 하는가 의문이 든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일하고 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출퇴근에 드는 시간과 회사에서 근무하는 시간을 모두 포함하면 한 주에 대략 60시간. 우리는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을 일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야근 없이 칼퇴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다.
여기서 무엇을 위해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걸까. 회사가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주지도, 나의 삶을 책임져주지도 않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확실하게 노력이 보상받지도 않는 데 말이다.
MZ에게 일과 생활은 별개다. 둘은 늘 밸런스를 이뤄야만 한다. 그래서 과하게 경쟁하지도 않고 과몰입하지도 않는다.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는다. 이전의 우리가 김 부장, 정 과장, 박 대리였다면 이제 요즘 친구들은 김지민, 정승민, 박수민이다. 내가 수단이자 부품이 되는 게 아니라 주체가 된다. 사람이 되고, 사람을 본다.
필요 이상으로 서로에게 압박을 가하지도, 싫은 소리를 하지도, 업무 스트레스를 주지도 않는다. 어차피 우리의 절대다수는 노동자다. 본인이 회사의 오너가 아닌 이상 일하는 시간이 줄고, 업무 스트레스가 덜하면 좋은 일이다. MZ가 만들어가는 사회의 분위기는 결국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다.
본인의 역할과 책임을 회피하고,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는 MZ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예전의 '성실한 근로자'의 관점에서 MZ의 일에 대한 태도를 지적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요즘 애들은 돈만 많이 받으려 하지, 일은 성실하게 안 하려 해!"라는 식으로 비판하기 전에 그 이전의 사회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매일 업무 시간 1~2시간 전에 출근하고, 일이 없어도 눈치를 보느라 퇴근하지 못하고 야근하던 날들. 상사의 지시가 있으면 주말이고 휴일이고 없이 출근하던 날들. 그야말로 내 인생의 모든 순간들이 회사와 일에 저당 잡히던 과거를 떠올려 봐야 한다. 그게 정말 본인이 원하던 삶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아니라면, 현재 MZ에 드리워진 불성실하다는 낙인은 변화에 대한 저항, 익숙한 관습이 깨지는 데서 오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인간은 모두 '나'로 태어났고 '나'로 살기를 원하는 존재다. 이를 위한 움직임을 동일한 주체이자 개인으로서, 구태여 비난하고 공격할 필요가 있을까.
3. "요즘 애들은 쓸데없이 SNS에 미쳐서 사진 찍고, 사치 부리고, 허세...."
확실히 MZ세대들 그리고 더 아래로 내려갈수록 SNS의 이용이 과하기는 하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 온갖 플랫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곤 한다. 또 이에 대한 폐해도 굉장히 많다. SNS는 득 보단 실이 많다. 그럼에도 이런 SNS의 일상화가 만들어 낸 MZ들의 특성이 있다고 본다. 바로 끝없는 재사회화와 열린 사고다.
SNS 상에서는 매 순간 온갖 사회적 이슈와 사건사고, 각종 현상들에 대한 게시물들이 올라온다. 사람들은 거기에 활발히 댓글을 단다. 이에 MZ들은 변화하는 사람들의 의식, 심리, 태도 등을 실시간으로 학습하고 새로운 사회 규범을 내재화하며 끊임없이 재사회화된다.
예를 들어 가장 대표적인 게 성인지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회적으로 인식이 부족할 땐 직장 내에서 성차별적인 발언이나 성희롱성 발언이 빈번했었고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웠다. 내가 입사했던 초반만 해도 휴가를 사용한다고 하면 상사들에게서 "해외여행 가? 여자친구랑? 숙소는? 같이 자냐? 좋겠다. 예쁘냐? 사진 보여줘. 뜨거운 밤 보내겠는걸." 따위의 말을 무차별적으로 들어야만 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이럴 때 이런 고연차의 상사들을 제지하고 나섰던 건 항상 내 동년배의 MZ 선배들이었다. "에이 부장님, 요즘 그런 말씀하시면 큰일 나요!" 부장은 그렇게 MZ에 의해 재사회화 됐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반열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문화적으로나 시민의식에서나 구시대적인 부분이 남아있는 곳이 많다. 이런 부분이 가장 민감하고, 솔직하고, 빈번하게 다뤄지는 장소가 바로 SNS다. '성차별적 발언을 하면 안 된다', '외모 평가나 지적을 하지 말라', '서비스 직종 종사자들에게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와 같은 말로 표현해라', '반려견 목줄을 꼭 착용시켜라'와 같은 생활 전반에서 변화된 규범들을 MZ들은 SNS로 끊임없이 학습하고 스스로의 행동을 교정한다.
그 결과 이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쾌감을 주는 일, 문제의 소지가 있는 언행 등을 지양하게 된다. 예전에는 괜찮았지만 이제는 안 되는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빠르게 배운다.
이외에도 수많은 타인들의 삶과 의견들을 접하며 조금 더 열린 사고와 태도를 가지게 된다. "쟤는 도대체 왜 저러냐? 이해가 안 되네. 아오 답답해."에서 "아 저 친구는 MBTI가 나와 달라서 그래. ESTJ 여서 현실적이고 계획적이지 않으면 스트레스일 거야. 이해해야지."와 같은 태도가 되는 것이다.
하다못해 연인 앞에서 다른 이성의 깻잎을 떼어주는 게 문제냐 아니냐라는, 일견 사소해 보이는 문제까지도 격렬하게 토론하며 각자의 생각을 주고받는다. 이전까지 우리의 직장이 하향식 의사결정과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소통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MZ에게서부터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유연함과 자유로운 의사소통은, 당연하겠지만 변화하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조직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고 있고 말이다.
물론 SNS의 과한 이용에서 오는 문제도 많다. 과한 비교 문화, 상대적 박탈감, 사치와 허세, 지나친 자기 검열 등 이를 옹호할 생각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SNS와 떼려야 뗄 수 없는 MZ들의 특성이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이끄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모든 것에는 명과 암이 있다. 무조건 옳은 것도 무조건 틀린 것도 없다. 최근의 사회적으로 MZ들의 특성이 일방적으로 희화화되고 평가절하됨에 반해 그 특성들이 불러온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논의는 굉장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MZ의 편에서 한번 그들을 옹호해 봤다. 때론 치우쳤을 수도, 내 주장이 과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듯 현상의 양면을 보자는 거다.
회사생활을 하며 다른 회사와 다른 부서의 친구들을 보며 생각이 조금 더 확고해졌다. MZ가 많고, 그들이 존중받고 있는 회사와 부서가 조금 더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곳일 확률이 높다는 거다.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고, 일 외적인 부분에서 나를 괴롭히지 않을 곳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이런 곳이 삶의 질을 더 만족시켜 준다는 거다.
결국 다들 먹고살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안간힘들 쓰고 있는 거다. 같은 일개 노동자로서 서로의 발버둥을 짓밟지 말고 좀 더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