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숲그림책도서관 최지혜 관장님 인터뷰 (글 박현진 사진 윤재혁)
바람, 숲, 그리고 그림책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 그리고 그곳엔 도서관에 와서 그림책만 보다 가지 말라고 당부하는 관장님이 있다.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에 자리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은 부평 기적의 도서관을 일구셨던 최지혜 관장님이 퇴임 후 2014년 허름한 농가를 매입해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그림책도서관이다. 2019년엔 도서관을 신축했고, 신관은 도서관으로 구관은 북스테이로 운영하고 있다. 그림책을 좋아해 숲도서관을 꿈꾸던 사서의 꿈은 강화에서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영글어가고 있다. 좋은 바람이 불던 가을날, 더 좋은 사람이 있는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을 방문해 보았다.
Q: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의 새로운 공간을 소개해 주세요.
A: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이하 바람숲)은 네 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들, 산, 숲길 그리고 숲인데요. 들어오자마자 펼쳐진 넓은 공간인 ‘들’엔 일반 창작 그림책들이 있어요. 바람숲은 다른 도서관과는 다르게 서명 별 구성으로 서가를 배치해요. 그림책 독자들은 그림책을 작가로 기억하기보다는 제목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들’엔 서명 순으로 기역부터 시옷까지 배치해 두었어요. 계단을 올라 ‘산’으로 올라가면 창문엔 마을 곳곳의 풍경이 한눈에 보여요. 그곳엔 이응으로 시작하는 그림책을 집중 배치해 뒀어요. 설계할 당시 창문 모양이 책의 모양과 비슷하기도 하고, 창밖에 펼쳐진 모습 또한 한 권의 책과 닮아있다고 생각해서 서가 사이사이를 창문 책 느
낌으로 만들었어요. ‘들’ 옆에 난 사잇길은 ‘숲길’ 이에요. ‘숲길’의 왼쪽은 주제별로 인권․평화․환경․인물․지리․문화․시 그림책 등을 색으로 구별해 두었어요. 오른쪽은 라오스에서 도서관 만들기를 하며 만들었던 그림책과 바람숲에서 동네 주민과 함께 만들었던 그림책이 모두 전시되어 있어요. ‘숲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오면 작은 ‘숲’ 공간이 있어요. ‘숲’엔 식물․동물․나무․열매 등을 주제로 한 그림책이 있어요. 계단 아래 공간을 동굴처럼 만들어서 숨바꼭질을 좋아하는 어린이 이용자들이 참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간혹 가족 이용자 중 누워있고 싶어 하는 아빠의 공간이기도 하고요. 또한 영유아를 위한 팝업책과 빅북도 비치해 두었어요. 그 외에 옛이야기나 글밥이 있는 책들은 구관에 비치해 두었어요.
Q: 관장님께서 직접 서가 배치와 구성을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서가 배치를 할 때 특히 염두에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A: 우선 그림책은 표지 자체가 하나의 명화라고 생각해요. 설계할 당시에도 책을 전면 배치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어요. 그래서 들, 산, 숲길, 숲 모든 공간에 전면 서가가 있어요. 바람숲엔 복본을 두지 않지만, 전면 서가의 위쪽에 손이 닿지 않는 곳의 책은 제목만 보고 아래에서 보실 수 있게 두었어요.
Q: 다른 도서관과는 달리 답답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좋아요. 2019년에 이 공간을 만드신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A: 바람숲은 공간 설계부터 기둥, 벽돌 하나 놓는 것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지었어요. 설계 단계에서 무작정 ‘공간 건축’으로 설계를 기부해주십사 메일을 보냈어요. 6개월쯤 지났을 때, 공간 건축 대표님이 많은 건물을 지었지만 이렇게 특별한 건물을 지은 적은 없었다며 흔쾌히 기부해주시겠다는 연락을 주셨어요. 그래서 양남철 소장님이 설계를 맡아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죠. 기둥과 벽돌은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하나씩 세울 수 있었고요. 도서관 로고 또한 후원자이신 윤재혁 선생님이 만들어 주셨어요. 대문은 최근에 동네에 이사 오신 은퇴한 교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셨어요.
Q: 새로 짓겠다는 결심을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어떤 도서관을 만들고 싶으셨나요?
A: 제가 설계 소장님과 현장 소장님께 여러 번 부탁드렸던 것은 최소한 100년은 갈 수 있는 도서관으로 만들어 달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다들 이 돈으로는 불가능하대요. 그래도 최대한 오래갈 수 있는 튼튼한 건물로 지어주셨어요. 그리고 말씀드렸던 건 이용자가 따뜻함을 느끼는 자연친화적인 공간이길 바랐고요, 또 하나는 한눈에 책이 들어오고, 손을 뻗으면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면 했어요. 이야기하고 보니 다 이루어진 것 같네요.
Q: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도서관을 짓고, 또 운영도 하고 있는 상황이네요. 후원해주시는 분들은 주로 원래 인연이 있었던 분들인가요?
A: 그런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어요. 기억에 남는 후원자 중 한 분은 50대 여자분이신데, 아들이 강화도에 해병으로 근무해서 면회 왔다가 들렀다고 하시면서 오셨어요. 아들이 근무하는 동안은 후원하겠다고 약속하시고 실제로 군 복무 2년간 후원해 주셨어요. 또 한 분은 18개월 된 남자아이를 키우는 동네 주민인데요. 이사 오고 며칠 뒤 본인이 원하는 책이 다 있어서 좋다며 최소한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바람숲이 꼭 있어야 한다며 20년 장기 후원 서약을 하셨어요. 이 후원자는 아이 앞으로 매달 나오는 양육수당을 모아서 개관 당시 모두 기부해주시기도 했어요. 모두 더없이 소중한 분들이죠.
Q: 보통 도서관은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있는 것이 보통인데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은 그렇지는 않네요. 강화에 자리를 잡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바람숲은 신안나 선생님이 실무를 맡아주고 계세요. 바람숲이 강화에 오게 된 것도 안나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시작된 거죠. 전 기적의 도서관을 운영할 당시부터 20여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숲 속 도서관을 시작할 만한 곳을 물색했었어요.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던 중 춘천 남이섬에서 안나 선생님과 인연이 닿았고, 제 꿈을 이야기했더니 흔쾌히 재미있는 일이라며 저의 꿈을 지지해 주셨어요. 그 뒤 안나 선생님은 강화가 어떻겠냐는 추천을 해주셨고, 함께 강화를 둘러보던 눈 쌓인 어느 날 도서관 뒤에 있는 작은 산이 좋아 보자마자 구관인 작은 집을 계약했어요.
Q: 20년 전부터라면 그림책도서관을 꿈꾸신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원래 어린이를 좋아했어요. 인표어린이도서관에서 근무할 당시 동화책에 흥미를 느꼈고, 그림책 공부를 하면서 행복함을 느끼게 되었죠. 그렇게 그림책을 좋아해서 한 권 두 권 샀던 게 삼천 권이 넘었고 다 모아두었어요. 잠시 남편의 직장 때문에 프랑스에 거주하게 되었는데 그때도 그림책 삼천 권은 가지고 나갔다가 그대로 가지고 들어왔어요. 그곳에서 포도주 박스도 틈틈이 모으기 시작했어요. 포도주 박스에 책을 꽂거나 담아 두면 근사할 것 같았거든요. 처음 구관에서 개관할 당시에 대부분의 책은 포도주 박스에 담겨 있었어요. 지금은 크기와 보관 방법 때문에 포도주 박스는 인테리어 용으로만 쓰고 있지만요. 좋아하는 것을 막연히 동경하고 꾸준히 모으고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그림책도서관 관장이 되어있네요.
Q: 하필 새로 개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는데요. 그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A: 외부 강연도 모두 취소가 되었고, 사실상 도서관을 유지할 최소한의 운영비에도 문제가 생겼죠. 그래서 문을 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다 보니 예약제로 시스템을 바꾸었어요. 오전․오후 3시간씩 거리두기가 가능한 만큼의 인원만 5,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어요. 공공도서관에서만 근무했던 저로서는 도서관 이용에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이 많이 불편했어요. 하지만 개관 직후 2019년 당시 하루에 100여 명의 이용자가 다녀갔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지금이 바람숲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아무래도 자신의 시간과 돈을 기꺼이 내고 오시기 때문에 이용하시는 분의 마음가짐이 다른 게 느껴지거든요. 기부나 후원의 문화가 더 활성화되어서 운영 유지에 어려움이 없는 날이 오기를 꿈꾸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치 있는 문화를 누리기 위해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인식 전환도 필요한 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입장료의 대부분을 좋은 책을 구입하는 것에 쓰고 있어요. 그걸 알아봐 주는 이용자가 올 때마다 힘이 나고요. 요즘 일어나고 있는 작은 책방 활성화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긴 한데요. 반면에 작은 도서관이 소외되는 모습은 많이 아쉬워요. 바람숲과 같은 사설 도서관은 공공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부분을 채워주지만 개인이 운영하기엔 많이 힘든 게 사실이에요. 내 일처럼 함께 해주는 운영진이 있어 다행이지만, 책방과 더불어 작은 도서관도 많은 관심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관장님은 또 어떤 꿈을 꾸시나요?
A: 제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도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숲 때문이잖아요. 저는 이런 숲 속 그림책도서관을 전국 곳곳에 계속 만들고 싶어요. 물론 지금 하나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막연히 그림책도서관을 꿈꾸었고, 그게 이루어진 거니까 아주 불가능한 꿈은 아닌 것 같아요. 또 라오스에도 계속 그림책도서관을 만들고 싶어요. 코로나 때문에 작년과 올해는 방문하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허무주의에 빠진 아이들에게 그림책이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꿈꿀 수 있게 돕고 싶어요. 그래서 전 이용자들이 방문하셔서 최대한 책을 많이 읽고 가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오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함께 온 자녀에게 시간 얼마 안 남았다고 빨리 읽으라고 독촉하는 모습을 보면 사실은 좀 속상하기도 해요. 마당도 넓고, 숲길로 올라가면 딱따구리뿐만 아니라 온갖 살아있는 자연 생물들이 많거든요. 그 모든 것을 누리고 갔으면 좋겠어요. 책은 조금 덜 읽더라도 이곳에서만큼은 마음껏 상상하고,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꿈꿀 수 있는 시간이길 바라요.
2020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