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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영 May 06. 2024

홍상수 감독의 <여행자의 필요>

오래 음미하면 할 수 록 색 다른 맛이 나는 영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보게 되었다. 이전에 아무런 정보도, 이 감독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이 영화를 보았다. 전적으로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처음 접한 사람의 시점에서 느낀 인사이트들이기에 편협한 시야일 가능성이 크다. 이 점을 꼭 양해하며 나의 인사이트아웃을 읽어주길 바란다.


이 영화의 시작은 벽장 가득 책이 있는 책상에 나란히 앉은 두 여성의 대화로 시작된다. 이리스라는 프랑스인 여성이 이송이라는 한국 여성에게 감정으로 불어를 가르치는 장면이 긴 호흡으로 영화의 시작을 이끌었다. 개인적으로 시작 장면부터 너무나도 불편했다. 내가 가장 먼저 불편하다고 느낀 부분은 이리스의 ‘태도’였다. 이송과 이리스 모두 영어를 사용하며 대화한다. 직관적 사실은 둘 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소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리스의 태도(말투, 행공, 제스처 등) 여전히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리스는 이전에 불어 교육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고, 이 날 일을 처음 시작하는 입장이지만 이리스의 태도에서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입장이 크게 바뀌었다고 느꼈다. 이리스는 이송과의 대화에서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을 굽히거나 망설이는 모습이 없다. 이에 반해 이송은 자기주장을 하면서도 어느새 이리스의 말을 따르게 된다. 이송이 피아노를 연주를 들려주던 중 듣다가 나가버리는 등 연주자에게 꽤나 무례한 행동을 일부러 하는 듯한 느낌을 벗어날 수 없었다. 연주가 끝난 후 이리스는 이송에게 연주를 하며 느낀 감상을 묻는다.


이후 둘은 밖으로 나가 걷게 된다. 아파트 입구에 새워진 비석 뒤 새겨진 이송의 아버지 이름에 대해 둘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감정이 북받쳐 오른 이송 앞에서 이리스는 감정을 불어로 적어내는 모습을 보고 잠깐이지만 이 사람이 불어 교육에 진심인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리스는 타인의 인생에 대한 관심은 없어 보였다. 오로지 타인의 가장 고지점으로 느끼는 ‘감정’을 불어로 표현해 내는 일, 그리고 그 일을 업으로 일정 금액을 버는 것이 이리스 관점에서 이송과 이리스의 관계의 전부다. 사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왜 이리도 이질감이 느껴지는지는 의문이다.

언어를 가르치러 가고, 상대가 악기를 연주하고 그 상대의 감정을 묻고 그걸 불어로 인덱스카드에 적어주는 일, 그리고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연습하게 하는 일. 같은 흐름이 3번 반복된다.


3번 같은 일이 반복되지만, 분명 모두 차이가 있었다. 두 번째 이리스의 불어 학생이 된 사람은 부유한 중년의 삶을 즐기고 있는 원주이다. 체계 없이 불어를 가르치는 이리스를 향해 원주는 이송보단 날카롭게 질문을 던진다. 오히려 이리스를 당황시키지만 원주가 기타를 연주할 때 이리스는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가버리고 결국 원주 역시 마지막에는 다음 주를 기약하며 이리스에게 일정 금액을 전달한다. 이상한 매력을 가진 여성이라 말하면서 말이다.



마지막은 젊은 한국인 남성 인국이다. 동거인이자 친구로서 사랑하고 있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이리스는 인국의 집에서 생활비, 집세 아무것도 내지 않고 산다. 하지만 저녁메뉴를 물어보는 인국에게 이리스는 인국이 만든 빵을 원한다고 말한다. 이에 인국은 이리스가 만든 샐러드를 먹고 싶다며 식사준비를 일종의 동참하라고 말을 하지만, 끝내 인국의 빵만을 고집하는 그녀였다.


한 영화 안에서 이렇게 다각적인 시선을 바라볼 수 있게 장치를 만든 홍상수 감독에게 경의가 나왔다. 영화가 끝난 후 5시간 동안은 분노, 상심, 경외 등 다양한 감정이 솟구쳐 글을 제대로 쓸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몇 명의 현대 예술 작가들과 같이 작품의 의미를 작품에서 찾는 게 아니라 이 작품을 보는 ‘나’ 에게서 찾아야 했다. 1시간 40분 정도의 러닝 타임동안 아주 단조로운 대사와 인물의 행동을 통해 이 장치를 구현해 낸 홍상수 감독의 재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전적으로 나에게 투영되어 보이는 영화다. 각자의 인생에 맞춰 모두 다 다른 관점으로 보이는 투명한 유리와 같은 영화였다. 이 영화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 중 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겠다.



• 대중의 드라마에 단골 주제는 ’ 재벌‘, 부유층들의 영화나 예술작품의 단골 주제는 ’ 가난‘


이 영화에서 이리스에게 불어를 배우는 3명의 한국인은 모두 영어를 구사하고, 악기를 연주한다. 여기에서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서 보게 되었다. 유럽권에서는 ‘부’의 상징 중 하니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 여부이다. 이송은 일단 집이 햇빛이 잘 드는 탁 트인 집에 가정용 피아노가 있다. 원주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기타를 연주할 수 있고 더 강조한 것처럼 막걸리를 와인 디켄터에 담아서 나눠마신다. 그리고 인국 역시 전자 건반이 있다.


서민의 삶 혹은 일반인들의 삶을 영화에 담아내려 한 것 같은데 너무나 허구적이라 헛웃음이 나왔다. 기억해 보라 구몬선생님이 처음 집에 방문하는 날, 구몬 선생님에게 피아노나 기타를 치겠다며 보여주는 성인이 몇이나 있을까. 그리고 너무나 당연히 모두가 악기를 다룬다는 점, 모두가 프로가 아님에도 수준급 이상을 바라고 있다는 점에서 헛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과연 20~50대의 성인이 몇이나 그런 생각을 할까. 당장생활하기에도 박한 세상이다.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재벌이나 의사의 모습이 현실과는 전혀 다르듯이 이 영화의 타겟층은 일반 대중이 아닌 극소수의 상위 몇 퍼센트 만을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에겐 재벌, 회사 사장 등 부유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드라마 소재로 큰 ‘재미’가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말해, 초부유층들에겐 대중의 삶이 그렇게 비친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상위 몇 퍼센트들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불편함이 지속되었다. 일부러 의도된 불편함인지 서민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연출자의 경험 부족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차라리 선자라고 믿고 싶다.


더구나 인국이 엄마에게 월세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서 방이 최소 2개 이상인 인테리어가 아주 잘되어있는 집이 월 1000/ 50이라는 소리에 그 누구도 의심을 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집을 구하기에는 터무니없는 돈이다. 이 영화 전체가 ‘가난코스프레’ 하고 있는 것인가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마지막 이리스의 형편없는 리코더 실력을 듣기 전까진.



감정으로 언어를 배운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한평생을 언어만을 배우며 살아왔다고도 느끼며 살아온 내 입장으로서, 감정으로 언어를 그르친다 혹은 배운다는 이리스의 교육 방식은 그녀의 말처럼 새롭게 그녀가 창조해 낸 방법이 아닌 겨울이 지나면 봄이온 다는 이치처럼 너무나 당연한 말을 반복하는 듯 느꼈다.


언어를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현지에 살게 되면 감정의사표현부터 배운다. 싫고 좋음을 표현해야 정말 살아남을 수 있더. 생존언어는 감정어부터 시작된다. ‘싫어요’ , ‘좋아요’ 이런 일정의 감정언어를 배운 후 차차 일상에 필요한 단어나 용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애초에 감정 어는 살기 위해 급하게라도 모두가 장착하게 된다. 너무나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표현하는 이리스와 다른 등장인물의 반응을 보며 이 이야기가 현실과 동떨어진 허구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현실 속 일상인척 하는 가상의 일상 같은 영화라고 느꼈다. 이상하게 미장센으로 뒤덮여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 하는 듯했다.



사실 나에겐 너무나도 불편한 영화였다. 다각적인 시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든 감독에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그 시야로 바라본 영화는 그리고 내 삶을 투영한 이 영화는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웃기지도 않았다. 너무나도 수치스러울 정도로 직접적인 대사들은 이를 더 우수워보이게 했다. 과연 아주 열심히 진지하게 살아가는 상위 몇 퍼센트에 속하지 않은 평범한 인간의 삶이 이런 우스운 모습으로 비친다는 생각이 들어 불편하기도 수치스럽기도 했다. 전적으로 내 삶에서, 내 생각으로 바라본 영화에 대한 인사이트니 아, 이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 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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