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아닌 일상의 연장선이고 싶은 마음
오키나와사람들은 대게 여유롭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도 행동도 모든 면에서 여유롭다. 내가 살던 곳에서 나는 느린 인간이었지만, 오키나와에서 만큼은 아니다. 실컷 내 느림을 받아들이고 행동해도, 모두가 그렇기에 나는 이곳에서 만큼은 일반적인 사람이다. 여유는 공간을 비우는 것이 아닌 ‘공백(空白)’ 으로 채우는 것이었다. 내 일상 모든 곳에서 여유로 채워져 있어 ’조급함‘의 마음이 들어 올 자리가 없도록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힘껏 여유라는 공백을 채워가고 있는 것이었다.
일상을 공백으로 채워 여유라 부른다. 여행에 온 이상 특별한 걸 먹어야겠다는 마음을 뒤로하고, 내가 좋아하고 일상적으로 자주 먹는 걸 먹기로 했다. 그리고 애당초 조금만 움직여도 체력이 한계였달까.
나의 최애 메뉴는 ‘눅눅해진’ 맥도날드 감자튀김이다. 꼭 눅눅해야 한다. 유레카!! 5월 말미의 오키나와는 습해서 아주 쉽게 감자튀김이 눅눅해졌다. 눅눅한 감자튀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거센 비로 인한 습도는 아주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후였다.
내가 오키나와를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 아니 이게 가장 큰 이유다. 빈티지/구제샵. 오키나와의 구제샵은 내가 가장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 중 하나로 손꼽힌다. 옷뿐만 아니라 다양한 컵, 식기 등등 뭐 하나 거를 것 없이 보물이 가득한 보물 창고 같다. 옷장의 절반 이상이 빈티지샵에서 구매한 제품이고 옷을 사랑하는 나에게 이 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난 빈티지라는 말이 좋다. 헌 옷, 헌책 등등 누군가 사용했었던 물건이지만 충분히 사용가치가 있는 보물들을 찾는 걸 좋아한다. 빈티지샵에 갈 때면 마치 내가 해적왕이 된 듯이 이곳저곳을 누비며 보물을 수집한다. 단, 나만의 조건이 있다. 빈티지에 프리미엄을 붙이는 건 사치다. 지구 위해서도 꼭 업사이클이나 빈티지샵을 이용하는 게 좋다. 하지만 빈티지에 프리미엄을 붙여 ’ 빈티지가 오히려 더 비싸다 ‘ 는 이미지가 생기게 되면 대중성을 잃어 꽤나 곤란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헌 책방에서 오키나와에 관련된 책이 나열된 구역에서 한참 책을 골랐다. “오키나와에서 살다”라는 제목의 책인데, 오키나와 역사 사진집 형식의 책이었다. 명소 관련 책자를 찾고 있던 나에겐 맞지 않았지만, 이 책의 제목을 평생 마음에 두고 살아가게 될 것 같아 사진으로라도 남겼다.
구제샵 중심엔 오키나와에서 제작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얼마나 강한지 약한지 알 수 없고, 용도도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쓰임이 있는 유리로 만들어진 컵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진 컵들을 보며 행복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모든 면이 같은 컵이 아닌 어딘가 투박하고, 컵 바닥 부분에 제작 과정이 고스란히 보이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이 컵들이 좋았다. 눈에 띄는 몇 개를 골라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로 마음먹었다.
귀가 길에 마트를 들려 보니, 입구엔 처음 보는 과일이 진열되어 있었다. 중국에서 살면서 별별 과일은 다 먹어봤다고 자부했지만, 이 세상에서 내가 존재조차 모르고 살아갈 과일이 아직도 아주 아주 많을 걸 생각하니 아찔하게 느껴졌다. 이번 여행에선 꼭 먹으리라. 여전히 식욕이 부진하기에 꼭 배가 고플 때, 다시 찾아오려고 사진으로 남겼다. 이야기가 여기저기 난무하게 튀어버렸지만 그냥 이대로 두려 한다. 아주 많이 좋아하는 걸 설명하며 횡설수설하는 사람으로 귀엽게 넘어가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