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요리를 배워서 한국에서 뭐하려고?

변화는 두렵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더 큰 고통이다

by clay


기존에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난 정서연봉이 낮았다. 회사 안에서 내 몸값이 올라가고 있다는 감각도 없었고, 숨은 쉬고 있지만 정신은 서서히 죽어가는 느낌이었다.


"나가면 죽는다." "밖은 춥다."

직장에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인식은 이미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하지만 그런 식의 버팀이라면 신체는 살아 있어도 정신은 죽을 수 있다는 걸 작년 한 해동안 뼈저리게 느꼈다.

끊임없이 스스로 물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뭐지?', '일단 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자아실현에 이 회사가 부합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월화수목금금금이라도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계속 다닐 수 있었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어렵게 들어온 곳이라도 퇴사 생각은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일은 일이다'

하며 깊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난 부럽다. 나로선 하루에 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60%의 시간을 나의 강점을 살릴 수도 없고, 높은 강도의 업무를 정신없이 쳐내며, 만나고싶지 않은 사람들과 부대낀다는 게 마치 감옥과 같은 삶처럼 느껴졌다.


남은 하루의 40%의 시간도 온전한 나의 몫은 아니다. 회사에서 잔뜩 받은 스트레스는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묻어있고, 그걸 잘 털어내는 것까지가 업무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겠다.


큰 회사의 부속품으로써 다음 날 정상 컨디션으로 기능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기분을 회복시키기 위해 취미생활도 하고 일기도 써봤다만, 이제 한계에 부딪힌 기분이랄까. 회복이 잘 안 된다.

금융치료? 부동산, 코인, 주식으로 몇 천을 날려 본 전적이 있어 그런가.. 돈에 대한 감각은 무뎌진지 오래다. 월급날 통장에 찍힌 숫자를 봐도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


나 또한 '일은 일이다'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처럼 마지노선에 간당간당하게 올라온 스트레스를 어찌저찌 잘 감당해 보려 온갖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3년 휴직]이라는 exit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그래 밖은 춥겠지.. 알겠는데,

하지만 이 일을 1년 더 지속해야 한다 생각하니 숨은 턱턱 막히고, 내년이 전혀 기대가 되지 않는데 어찌할꼬?


살긴 살겠는데...

사람이 다 빠진 콜라, 생기없는 로봇이 되어버릴 것 같은데..



최근에 읽고 있는 책 『월든』 속 위 구절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조용한 가운데 절망적인 삶을 산다. 체념은 곧 절망으로 굳어지기 십상이다.'


'우리는 절망의 도시에서 절망의 시골로 들어가 밍크와 사향쥐의 용기*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다.'

* 여기서 밍크와 사향쥐는 덫에 걸렸을 때 다리를 물어 잘라 내서라도 절망의 덫에서 빠져나온다고 한다.




3년 휴직을 내고 프랑스에 요리 유학 간다하니 사람들이 요즘 묻는다.


“그럼 3년 뒤에 흑백요리사 나가는 거야?”
“식당 차릴 생각이야?”
“아예 한국 안 돌아오는 거 아니야?”


나는 그런 거창한 계획 따윈 없다.
방송에 나갈 생각도, 식당을 차릴 생각도,
요리를 평생 업으로 삼을 만큼의 뜨거운 열정도 없다.

다만 한 번쯤은 이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기를
내 인생 전체를 길게 놓고 봤을 살펴봤을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했을 뿐.


2026년 1월 시점으로

올해 8월 학교 지원까지 약 7개월이 남아있다.


초급 수준의 프랑스어를 원어 수업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막상 큰 결정을 하고나니 막막하기도 하고 겁도 나고 불안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설렌다.


어차피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고통은 따르기에...

기왕 힘들 , 내가 성장하고 싶은 환경에서 견뎌보려고 방향을 조금 조정했을 뿐. 그 끝에 어떠한 목표도 없다.


그저 이 선택이 좀 더 내 삶에서 흥미로워 보이는 선택지였고, 나는 그저 망설임이 없었을 뿐이다.


https://www.instagram.com/reel/DOn-ApfEbsq/?igsh=MXVoM2dwaWR3bHU3bQ==




기준을 낮춰보자


프랑스라는 환경,
요리라는 새로운 분야에 나를 '하나의 실험체처럼 놓아보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언어실력이 부족해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더라도 어학원을 다니고 프랑스에서 일을 하며 살아보는 경험만으로도 내 기준에선 실패가 아니다.
기준을 낮춰버리니 아등바등하지 않게 되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누군가는 커리어로 살릴 것도 아니면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고, 부모님은 중요한 결혼적령기에 헛짓거리하지말고 빨리 시집이나 가라고 하지만,

그래도 한 번 왔다가는 인생에
이런 일탈이 그렇게까지 나쁜 선택일까?


난 등산하면서 저쪽에 난 예쁜 오솔길로도 한 번 가보고 싶은데 말이지. 그 샛길이 막다른 길이라서 다시 되돌아 와야 할지라도, 등산이 꼭 정상을 봐야 의미가 있느냐 말이다.


만약 이 무모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도전으로

내가 언제, 무엇을 할 때 더 행복해지는 사람인지

조금 더 선명히 알게 된다면, 물질적 성공보다 그 깨달음이 내 삶에 더 큰 가치를 준다면, 그것 역시 내 나름의 정답 아닐까.


시작했다 하더라도 끝맺지 않고, 더 흥미로운 것이 보이면 미련 없이 방향을 바꾸는 사람.

이랬다 저랬다 변덕스레 생각을 바꾸고

모순투성이지만 자유로운 삶.

누군가에겐 별 볼 일 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는 그런 태도가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La convivialité

최근에 배운 프랑스어 단어 convivialité(함께 즐겁게 산다)는 함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누고 시간을 공유하는 경험에 대한 단어이다.

프랑스에서는 식사가 빨리 끝내야 할 일정이 아니라, 두세 시간을 들여 천천히 머무는 시간으로 여겨진다.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은 먹고, 말하고, 웃고, 때로는 말 없이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다.

​요즘 드는 생각은
지역아동센터 같은 곳에 봉사활동을 가서

그런 시간을 아이들과도 나눠보고 싶단 것이다.


조금 생소한 음식을 앞에 두고

웃고 떠들며 하나의 추억으로 가져가는 경험.


프랑스 음식이라 해서

비싸고 어려운 요리가 아니라,
평소에 경험해보기 힘든 문화권의 음식을 통해 다른 세계를 간접적으로 만나는 감각과
음식을 사람들과 나누는 관계 속에서 느끼는 ‘따뜻한 정’을 느끼게해주고싶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유학을 다녀와서 어떤 목표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뭘 이루고픈 건 없는데, 저런 종류의 해보고 싶은 일은 있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음식을 통해 문화적 지평을 넓히는 새로운 경험을, 가까운 친구들과 대화하며 느긋하게 음식을 즐기는 아늑함을, '현재'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그런 경험을

선물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것.


그거 하나 있겠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