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길 Dec 27. 2022

공복으로 맞는 이 아침이 편안하다.

- 덕장에서

한 마리 치어가 자라 성어(成魚)가 되기까지

바닷속 물길은 몇 번이나 바뀌었을까

할복장, 

몸으로 익힌

심해도를 해부한다.


낯선 길 나설 때면 술렁이던 풍문 뒤로

무수한 격랑 속을 헤엄쳐 온 노정들이

동장군 하얀 계엄에 덕대 위로 내걸린다.


때 이른 섣달 추위

되려 생기 도는 덕장

간간한 흰 눈발로 공복은 채워지고

설야에 황태 익는 소리

누렇게 광이 난다.


- 김진길의 정형시 '덕장에서' 전문[집시, 은하를 걷다](모아드림, 2009)





 한파가 몰아치는 이즈음.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황태덕장에서는 줄지어 내걸린 명태들이 익는다.

 눈과 바람, 추위를 견디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겨우내 누렇게 황태로 변해 가는 것이다.


 지난날 바닷속을 힘차게 헤엄치던 힘의 원천인 내장기관들을 다 들어내고 허공에 달려있는 덕장 옆을 지날 때면 사뭇 경건해진다. 

 춥고 깊은 계절 속이지만 날것인 채 공복으로 맞는 이 아침이 편안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작가의 이전글 겨울 나목도 성찰의 옷을 입었네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