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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길 Dec 23. 2022

겨울 나목도 성찰의 옷을 입었네요.

- 설국

큰 눈이 내린다는 예보를 뒤로하고

눈발 잉잉거리는 에움길로 나절가웃

발목이 푹푹 잠기는 한 산간에 든다.


함묵이 딛고 오른 눈부신 고요의 층계

단 한 번 미동에도 와르르 무너질까

숨죽여 마음 조리다 이내 나무가 된다.

 

여린 날 생채기를 감싸는 곡선의 눈발

벌거숭이 겨울나무 꽃을 피우는 동안

솜이불 끌어다 덮은 그 안쪽이 푹하다.


-  김진길의 정형시  '설국' 전문.(『한울문학』여름호, 2017).



며칠 눈이 내리더니 한파까지 와서 장관이다.

지대가 높고 인적이 드문 산간일수록 적설량은 많다.

아무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은 미답의 설원을 배경으로 겨울 나목에 눈꽃이 만발했다.

어쩌면 하얗게 덮은 저 솜이불의 안쪽에선 이미 겨울을 건너는 모의가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니까...  


벌거숭이인 채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도 한 벌 옷을 입었다. 

저 얼붙은 옷이 녹아내리기 전에 성찰의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거울 앞으로 나를 밀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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