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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May 11. 2023

도망치지 않기

2023년 5월 11일의 기록






 브런치에 마지막 글을 올린 지 반년이 되어간다. 나는 여전히 휴학 중이고, 이제 이번 학기 휴학이 끝나면 로스쿨 재학생에게 주어지는 2년의 일반휴학 기간이 끝난다. 복학을 해야 한다는 말인 동시에, 더는 휴학을 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정말 앞만 보고 나아가야 한다.



 내가 그러한 준비가 되었느냐 묻는다면 전혀 아니다. 조금 나아지는 듯 하던 컨디션은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고, 눈 뜨지 못하는 아침은 괴롭고 잠들지 못하는 밤은 더더욱 괴롭다. 정신과 약을 복용한지 무려 4년 반이 되어간다. 그동안 나는 분명히 나아졌다. 이제 더 이상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를 해하고 싶다는 생각은 줄었으며, 조금 더 또렷한 정신으로 책상에 앉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성장이다. 나는 아직 하루 3시간 공부하기도 힘들고 30분의 집중시간이 버겁다. 30분씩 6번을 도전하면 겨우 3시간을 채운다. 그 여섯 번의 도전동안 나는 엉망으로 무너졌다가 썩은 동아줄일지도 모르는 희망 같은 것을 붙잡고 일어서길 반복한다. 그리고 지쳐 나가떨어진다.


 그렇게 두 달을 지냈다. 3월과 4월. 차곡차곡 쌓이는 순공시간이 뿌듯했고, 나의 발전을 옆에서 함께해주는 애인을 사랑했고, 일반적인 의미의 ‘일상’을 찾아가는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공든 탑은 쉽게도 무너졌다. 위태롭게 쌓은 돌들이 작은 바람에도 와르르 무너져버리듯 겨우 쌓아올린 내 일상들도 그랬다. 생리 기간 날뛰는 호르몬이 나를 잡아먹는 동안, 가벼운 열 감기를 앓는 동안, 예방접종 후유증을 겪는 동안. 겨우 만들어 놓은 일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또 내가 망치고 말았다는 자괴감은 쓰러진 탑의 잔해처럼 남아 즈려밟을 때마다 아프게 바스라졌다.



 당장 6월에 있는 모의고사가 졸업시험을 대신하기에 마음이 바빴다. 하지만 몸이 따라오지 않는 바쁜 마음은 결국 절망이 될 뿐이었다. 해낼 수 있는지 의문이었고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고 결국은 회피하고 도망치는 것만이 내가 한 전부였다. 이 공간도 그러했다. 내가 자리를 비운 몇 달 동안 새로운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느냐고. 하지만 잘 지내지 못해 답글을 달 수 없었다. 어떠한 종류의 걱정으로 안부를 물었는지 잘 알면서도 차마 괜찮다고 하지 못했다. 그 또한 내 도망의 일부였다.



 3주마다 돌아오는 정신과 예약이 있는 날이었다. 오전 예약이라 전날부터 바짝 긴장하고 잠들어 겨우 양치만 하고 병원을 다녀왔다. 요즘 병원을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가 해결 해나가야 하는 문제들임을 강조하신다. 복용하는 약들이 그렇게 세지도, 많지도 않은 환자인 나는 아마 경증에 속하는 듯 하다. 나도 내 과거와 비교하면 확실히 경증임을 안다. 여전히 나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즐겁지 않고, 이렇게나 힘이 드는데도 말이다.


 우울증과 불안증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고 시간을 보내는지 더 이상 모르겠다. 한때 나도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그때의 내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나의 상태가 일상적인 우울감인지 병증의 악화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상담 선생님 말씀처럼, 내 감정을 잡고 늘어지며 그 안에 빠지지 않고 흘려보내려고 노력하는데 잘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기쁨이든 슬픔이든 행복이든 우울이든 지나가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기쁨과 행복은 오래 누리고 싶고 슬픔과 우울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모른 채 하고 싶은 건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나아가야 하고, 나아져야 하므로 오늘 오랜만에 글을 썼다. 그동안 나의 안부를 궁금해 했을 여러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할 수는 없어도 ‘밥은 잘 챙겨 먹는다.’고 말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도망을 멈추려고 한다. 고통스럽지만 내 상황을 직면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조금씩 해나가 보려고 한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 많으면 한 시간에 한 번은 같은 다짐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해내보려고 한다.


 성공은 직선형이 아니라고 하니, 나의 회복도 분명 직선형은 아닐 거다. 그래도 그 수많은 추락을 경험하고 나면 생존형 낙법이라도 배우겠지. 앞만 보고 나아가고 싶다. 경주마처럼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나보다 앞선 것 같은 동기들, 후배들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의 목표를 좇으며 나아가고자 함이다.


 그렇게 매일 한 발짝이라도 앞을 향해 가면 어느 순간 정상에 서있겠지. 그리고 정상 후엔 또다시 내리막인걸 알면서 또 걸어 나갈 것이다. 내 인생에 정상이 하나는 아닐 테니.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 순간을 함께 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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