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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우 Oct 09. 2022

36년 만의 고등학교 반창회

새까만 교복의 까까머리 친구들 생각이 밀려들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현대인의 생활 패턴이 많이 변하고 있다. 특히  카톡이나 밴드 등은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 가는 느낌이 들 때도 없지 않지만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면 많은 편리함을 제공해 준다.

    지난 정월 초나흗날 서울에서 고등학교 반창회가 있었다. 고3 때 반장이 중국에서 다니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열성적인 친구가 카톡에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반창회를 추진하였다. 그동안 각 지역별로 동기회는 있었지만 같은 반 친구들이 모임을 가진 적은 없었다. 카톡에 친구들이 호출되기 시작하더니 학창 시절 있었던 추억들을 소개하며 카톡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자습시간에 다른 친구를 꼬드겨서 학교를 몰래 빠져나가 파전에 막걸리 마시던 이야기, 반 학생들의 채변검사 수거 불이행으로 반장이 담임으로부터 밀대자루로 40대를 맞았던 이야기, 서로 사돈 하자는 이야기, 어떤 친구는 카톡에 들어오는 방법을 모르니 가르쳐서 동참시키라는 등 온갖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나의 마음은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평일날 밤 서울에서 행사를 하기에 지방에 사는 나로서는 마음을 내기가 쉽지 않기에 반창회가 있는 당일 아침까지도 마음의 결정을 못하고 망설였다.

    마지막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 36년 전 새까만 교복을 입고 함께 젊음을 불살랐던 친구들 생각이 밀려들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무작정 역으로 갔다. 미리 예매를 하지 않은 터라 좌석은 없었지만 나는 친구들 얼굴을 한번 보겠다는 일념으로 입석으로 KTX를 탔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카톡은 끊임없이 울렸고, 나는 기차 안에서 친구들에게 그 순간의 내 마음을 카톡으로 전했다.


몰아치는 이 그리움!

옛 친구에 대한 그리움일까,

내 지난 추억에 대한

그리움일까?

망설임의 종착역에서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며칠 전

내 나이에 또 하나를 보탠 것이 억울해서,

36년 세월 속에 빛바랜

내 기억의 스틸을  찾으러 길을 나섰다.


입석 KTX는 처음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한없이 설렌다.


오늘 밤

내 인생 중간역에서,

조각난 추억의 파편들을 찾아

함께 타임머신을 탈

친구들의 얼굴이

차창밖  풍경들과 오버랩되어

내 눈앞에 아롱거린다.


   내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감동을 받았느니, “너를 3반 최고의 로맨티시스트로 인정한다.”느니 하는 답글이 올라왔다.

    서울에 도착해 여기저기서 길을 물어가며 인사동 골목에 들어섰다. 인사동은 골동품 가게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지라 어떤 골동품이 있는지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내게는 골동품에 대한 가치 기준이 없다.

    약속시간이 되자 그토록 그리워했던 친구들이 한 명 두 명 모여들기 시작했고, 우리는 뜨거운 포옹으로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친구들 중에는 그동안 여러 행사에서 얼굴을 보았던 사람도 있지만 36년 만에 처음 보는 친구들도 많았다. 예전 모습 그대로인 친구도 한두 명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의 얼굴에는 세월의 발자국들이 다양하게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서 뜨거운 밤을 보냈다.

    살아가면서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늘 그리움과 따뜻함을 안겨주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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