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자마자 삼성에 취업했다. 사회생활이라곤 그 흔한 알바 한번 안 해본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안타깝게도 팀 내에서 겉돌았다. 세대 차이 때문이었다. 한 번은 아침부터 배가 아파 출근하자마자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들 사이에서 역시 MZ세대라며, 출근을 일찍 하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렸다. 시간이 지나도 그들과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순 없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이 상황에서 벗어날 도피처를 찾아 다녔다.
내겐 그게 군대였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했던가, 딱 내 얘기였다. 사회에선 세대가 달랐다면 군대는 입대 날짜가 달랐다. 친했던 선임마저 계급이 낮은 내가, 라면을 먹었다는 이유로 눈치를 주자 큰 배신감을 느꼈다. 그는 내게 행동을 신병답게 하라며 충고했다. 누구도 내 감정을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책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고른 책 제목이야말로, 내가 그들에게 뱉고 싶은 마지막 말이었다. ‘공감은 지능이다’
이 책은 인간의 공감과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를 향상하는 방법, 그리고 인간관계와 사회적 갈등 해소에 대한 중요성 등을 다루고 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다음과 같다. “공감이 가진 힘이 얼마나 강한가?”
책 초반부에 나왔던 작가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작가가 8살 때 그의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국 이혼을 하게 되고 그 사이에서 작가는 부모님 중 한 분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망설이던 중,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아왔던 세계를 넘나들며 작가는 자명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누구를 선택하던 결국 후회할 것이라고. 그는 양극단에 있지만 두 분 모두를 존중하고 사랑하기로 했다.
극단적으로 다른 상태에 있는 무엇이라도 양쪽 모두가 진실하고 심오할 수 있기에.
내 군 생활을 돌이켜보면, 선임과의 세대와 경험이 달라 감정적인 갈등을 느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각자의 경험이 달라서 각기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함을 깨달았다. 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법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과거에 나는 선임들이 가진 시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행동과 말들이 때로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웠고, 상처를 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여러 사람과 함께 지내며 점차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게 됐다. 군대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는 ‘우리가 모두 하나의 집단’이라는 소속감이었다. 책에서는 ‘흩어진 개인일 때 우리는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함께 뭉치면 굉장한 존재’라 했다. 공감의 가장 큰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군인이라면 꼭 새겨야 할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향한 편견과 이에 근거한 행동을 했다. 하지만 양극단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책에서 나왔듯 증명된 사실이며, 군대에서 다른 세대와 함께 생활한 건 내게 큰 성장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모든 증오가 단순한 의사소통의 부족 때문임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이제는 후임들과도 가벼운 대화로 시작해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할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여러 후임이 들어왔다. 그들 중에서도 과거 나와 같이 세대 차이를 느끼는 후임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같은 기분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먼저 용기 내어 인사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도, 후임들을 대하는 것도 마냥 어색했다. 그러나 멀게만 느껴졌던 후임과의 거리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눈에 띄게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가장 행복했던 건, 내 주변 사람들이 점점 웃음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정말로 서로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공감은 변치 않는 기질이 아니다. 노력한다면 공감 능력을 기르고, 서로를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는 극명하기에 공감은 지능인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뱉고 싶었던 “공감은 지능이다”라는 말은 나 자신에게 해야 하는 말이었다. 나는 이제 곧 전역을 앞두고 있고, 도망쳤던 곳인 회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