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탈피의 여정 7

by 코치 나결



나와 남편은 산을 좋아해서 지리山 설악山, 덕유山, 한라山 그리고 오대山 등 전국에 있는 큰 산을 찾아들곤 했다. 입산 수도자의 마음은 아니었다 해도 잠시나마 나무와 풀처럼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었나 보다. 걷고, 먹고, 쉬는 지극히 단순한 일과는 그 전체가 사유의 시공이었던 그런 山行이 좋았다.


큰 산마다 큰 절이 있었기에 불자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절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템플스테이 같은 프로그램은 따로 없었던 시절이라 하산 길에도 문득 허락을 구하면 묵어 가게 하는 절이 많았다. 산을 자주 찾던 터라 우리는 절에서 자주 묵었다. 그래서 절 밥도 참 많이 먹었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정말 없었다. 수년 뒤 3년 6개월간 집중 수행했을 때 내 소임이 밥 하는 공양주였기에 하는 말이다. 공짜로 먹었던 무수한 절밥때문에 불교에 인연이 닿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밥 빚은 웬만큼 갚은 것도 같은데 이 또한 모를 일이다.^^




산사寺山에 머물면 맑은 공기와 더불어 간혹 바람 따라 들리는 처마 끝 풍경 소리가 심금을 울렸다.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뎅그렁~뎅그렁” 바람결에 온전히 제 몸을 내맡긴데서 저절로 나오는 풍경 소리는 듣는 순간 잡다한 생각을 쉬게 했다. 내맡긴다는 생각조차 없는 내맡김이 주는 편안함일까?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긴장까지도 놓아버리는 힘이 있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소리가 지닌 묘한 힘이 따로 있기라도 했던 걸까? 묘한 힘을 지닌 소리는 또 있었다. 새벽녘 찬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지던 종소리. 새벽 공기와도 같은 청량한 스님의 도량석 소리도 그랬다. 새벽의 고요를 더욱 고요하게 만드는 소리들 이었다. 그 시절 도량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들이 내게는 한 맛으로 통했다. 무슨 맛인고 하면 바로 고요의 맛. 그런데 그땐 몰랐다. 그건 소리가 지닌 힘이 아니라 소리로 인한 고요를 아는 내 마음이 지닌 힘이라는 것을.


예불시간에는 부지런히 절을 했었다. 스님들이 낭송하는 예불문에도 리듬과 음률이 있다. 그 흐름 따라 한 배 한 배 절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참 편안해졌다. 편안하면서도 내면에 힘이 느껴졌다. 파워풀한 경험이었다. 단순히 절하는 행위가 주는 편안함은 아닐 터 아마도 절이라는 행위를 지속하면서 순간 순간 고요를 맛봤던 거 같다. 그 경험이 좋았던 모양인지 그 후로 절에 가기만 하면 자연스레 법당에 들어가 절을 하곤 했다. 어떤 날은 습관적으로 108배를 시작했다가 ‘괜히 했다, 그만할까? 왜 이렇게 힘들지? 생각은 또 왜 이리 올라오는 거야’ 내 마음인데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지지배배 시끄럽기도 했다.


자발적 행위였지만 순간순간 마음을 모으지 않으면 어느새 생각은 꿰고 올라오기 마련이다. '오만가지 생각'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힘들다는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아 일파만파 퍼지고 끊임없이 꼬리를 문다. 그게 생각의 습성이다. 몸은 법당에서 절하고 있지만 마음은 시공을 넘나들며 떠다니는 걸 여실히 목격했다. 108배를 한 덕분이었다. 생각 없이 사는 삶은 무의미하다 치부했던 시절을 지나온 그때의 나는 불필요한 생각들을 잘 다스리며 관리하는 주인된 삶을 살고 싶었다. 어떤 상황과 관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무엇보다 내 오랜 습관에 질질 끌려 다니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책에서 ‘절’을 ‘자기를 꺾는다(꺾을 절折)’는 의미로 새기는 걸 본 뒤로 내게 절은 스스로를 꺾는 의식이 되기도 했다.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꺾는다는 의미는 확 부러뜨리는 강함이 아니라 부드럽게 휘어지는 유연함이다. 유연함의 힘! 이십 대 중반, 노자의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문장에 끌려 한동안 출퇴근 길에 노자사상을 벗 삼기도 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물이 최상의 선이라는 문장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해도 유연함을 최고 덕목으로 삼고 싶었던 내게 직관적으로 통하는 게 있었다.



자신을 꺾을 줄 안다는 것은 내게 최고의 유연함으로 와닿았다. 정말이지 그렇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러려면 청산해야 할 것들이 내 안에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불편할 때 나를 바라보면 그야말로 대나무처럼 '나라는 나'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를 꺾는다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었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평안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란 생각도 있었다. '어떻게 마음을 쓰며 살 것인가'를 고민하던 내게 노자님은 '상선약수上善若水' 라는 화두를 던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