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2 : 한나절

by 은혜은

Day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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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뒷산이나 어린이 공원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던 몽마르뜨 언덕이 생각보다 크고 예뻤고 사크레쾨르 성당도 정말 멋졌다! 성당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했다ㅠㅠ 여기서 할머니 드릴 묵주를 하나 샀다. 엄마아빠 기념품은 안 챙겨도 할머니 기념품은 챙겨야 한다. 잔디밭과 계단이 있는 쪽으로 내려오자 버스킹과 단체관광객이 많았고 악명 높은 몽마르뜨 사인단, 기념품 판매 상인들도 많았다. 사인 권유하던 여자를 겨우 지나쳤다. 혼자 왔으면 좀 무서웠을지도. 좀 더 밑쪽으로 내려오니 괜찮았다. 유럽은 겨울에도 잔디가 푸른 게 신기했다. 우리나라 잔디랑 품종이 다른가? 정말 누런 빛 하나도 없이 생생한 초록색이었다.


엄청 맛있었던 오리고기와 조금 짰던 샐러드, 그리고 실패작이었던 파스타... 를 먹고 나니 시간이 벌써 세시였다. 오르세는 여섯 시에 닫고 몽마르뜨에서 오르세 까지는 삼십 분이 넘게 걸렸다. 오르세를 두 시간 만에 후다닥 보고 나오기는 싫었다. 아침에 좀 더 일찍 나왔으면 오늘 일정이 틀어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근데 이미 틀어진 거 뭐 어쩌겠냐고 간신히 마음먹고.. 오르세를 마지막 날에 보고 노트르담 대성당을 오늘 가기로 했다. ‘오늘 하루 종일 성당만 보네’라는 동생의 말에 이게 누구 덕분인데 싶어서 조금 평정심을 잃을 뻔했지만... 오리고기가 달달해서 잘 참았다.


예상치 못하게 계획이 틀어져서 기분이 좀 가라앉았었는데 노트르담 대성당에 가니 또 참 예뻐서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틈틈이 소나기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는데 성당 앞에 앉아있을 때 딱 맞춰 날이 개어서 정말 예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구름이 흘러가는 게 그림 같았다. 성당 내부도 멋졌다. 유럽 성당은 어딜 가나 다 멋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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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을 둘러보고 나오니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급한 대로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비를 피했다. 비가 조금 그쳤을 때쯤 다시 나와서 주변을 산책하다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서점을 발견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싶어서 검색해 봤는데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서점이라고 한다. 가게 안에 들어갔는데 정말 너무너무너무 멋졌다. 렐루 서점이랑은 또 다른 느낌. 더 작고 따뜻한 헌책방 느낌이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앉아있고 싶었다.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읽어본 적 없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봤던 작가들이 살아 숨 쉬었던 공간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어서 기념품을 사 오지 않을 수 없었다......ㅎ 이참에 노인과 바다를 원서로 읽어볼까 하다가 렐루 서점에서 산 해리포터를 읽어야 함을 깨닫고 에코백만 사 왔다. 실용적이니까 괜찮다고 합리화해 본다. 하나 크게 아쉬운 점은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 고양이를 깨우지 마세요 같은 메모는 봤는데 막상 고양이를 못 봤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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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오리고기가 맛있는 것 같다. 저 날 먹은 오리고기 요리가 정말 맛있었어서 다음번 파리 방문 때에도 오리고기 요리를 먹었다. 몽마르뜨 쪽을 찾아갈 일정은 아니어서 시내의 다른 식당에서 먹었는데, 그곳의 오리고기도 아주 맛있었던 기억이다. 고기에 꿀을 찍어 먹는 건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의외로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2019년의 어느 날 노트르담 대성당에 불이 났다는 소식에 마음이 덜컹하니 아팠다. 짧은 한나절의 추억만으로도 이런 감정이 드는데, 평생을 그 오래된 아름다운 성당과 함께해 온 사람들은 얼마나 슬프고 허전할까. 초등학생이던 시절 숭례문이 불타던 뉴스를 집에서 지켜보던 것도 생각이 났다.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불이 언제 꺼질까 초조한 마음은 한참이나 지나서야 들었었던 것 같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더 오래오래 제 자리를 지켜주면 좋겠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산 에코백은 2년간 잘 쓰다가 2019년 교환학생 귀국길에 포스트엔엘의 택배분실로 영원히 내 손을 떠났다. 지구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지, 포스트엔엘의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파리 관광 기념품으로 사 오는 사람도 많고, 인터넷에 유통되는 유사 상품도 많아서 길거리에서 심심찮게 보이는데 길을 걷다 그 에코백을 보고 부들부들 대지 않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노인과 바다는 '언젠가 꼭 읽어봐야지' 리스트에 자리 잡은 지 오래인데 아직도 읽지 않았다. 고전명작은 뭔가 전혀 모르면서도 대략 아는 느낌이라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올해는 꼭.... 읽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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