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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옵니언 Oct 24. 2023

끊임없이 생동하는 록의 현재

실리카겔 - Tik Tak Tok


  "무리 없이 잠에 드는 피앙세"과 "빗살 같은 날짜들". 그 모든 걸 아울러 보는 "매콤한 환각"이거나 "영원을 손금처럼 쥐고" 같은 표현들. 낯설게 엮인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를 단번에 파악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문장의 구조를 정확하게 맺지 않은 채 끝을 흘리는 종결은 그 자체로 의미가 한 군데로 응집되기보단 마치 어딘가로 휘발되기를 바라는 듯 보이기도 하다. 이를 담아내는 낮고 불분명한 보컬은 친절하게 발음되지 않으며, 오히려 발화하고 있는 순간의 에너지 자체에 집중하는 듯 여겨진다. 다소 잠잠하게 시작된 록 사운드는 "Tik Tak Tok'으로 결집되는 후렴을 통과하는 곳곳에서 윤곽이 돌출되었다가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황소윤의 파트에서도 이는 비슷하게 적용된다. 천막으로 감싸져 있던 정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건 곡의 진행이 3분 정도를 넘어간 이후부터이다.


  관건은 두 가지 트랙을 하나로 엮은 것 같은 분량 속에서 한 갈래 테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테마는 실리카겔이 바로 직전에 발매한 EP인『Machine Boy』에게로 고스란히 수렴된다. Machine boy란 무엇인가. 기계적인 무한함을 담보한 동시에 인간의 군상 중 하나인 소년을 함께 품고 있는 형태, 분명 생동하고 있지만 생명체의 본질적인 약속을 어그러트리고 있다는 점에서 생명-비생명의 경계를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존재.「Tik Tak Tok」은 그런 사유들이『Machine Boy』의 연장선처럼 돋보이는 트랙이다.『Machine Boy』의 말미에 자리한「T」가 「Tik Tak Tok」의 전주곡처럼 자리하게 되면서 서로 긴밀한 연결성을 확보하던 것과 같이.


  예컨대, "to the depth of consciousness"같은 표현은 무의식적인 층위에 가닿기 위함이기보단, 의식 저편에 감춰져 있던 또 다른 정체성의 발굴하기 위함으로 보는 편이 어울려 보이고, "멍청한 우리 결속"을 통해 기존 주축하고 있던 유기체적 체계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흥분되는 D-1"라고 칭하는 이유엔 새롭게 재탄생되려는 암시가 엿보이기도 한다. "hormone asstes", "출력된 유서"는 각각 삶과 죽음으로 환유되어 유기체가 필수적으로 소유하는 최소한의 정보값이자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숙명과도 같은 과정으로 묘사되곤 한다. 이러한 수식에 적절히 동조하면서도 동시에 배반하는 Machine Boy는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마땅한가.


  이에 관해 실리카겔은 Machine Boy의 존재를 정확히 무엇일 거라 지칭하지도 그 속성에 대해서도 정의 내리지 않는다. 대상에 대한 지칭이 섣부르게 규정되는 순간, 그것은 개인만의 문제도 아닐뿐더러 사회적인 맥락 안에서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간을 닮았더라도 인간이라고 급히 말할 수 없듯,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적인 면이 함께한다는 걸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또한 다분히 인간중심적인 시선에서 설명되었기에, 편협하다고 일컬을 수도 있겠다. 다만, 공통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그 두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역동성에 있다. 자의든, 타의였든 움직임이 주는 역동적인 면은 분명 생명이 아니었던 것도 생명처럼 보이도록 변모시키는 "매콤한 환각"을 준다. 가사에서의 낯선 의미가 한순간 소거되는 3분 이후의 진행들도 그러하다. 3분 이전 다소 뚝뚝 끊어지듯 연주된 일렉 기타는 3분이 넘어간 시점에서 주도권을 잡고 날카롭게 연주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가라앉는 것이 아닌 오히려 분출하면서 부피감을 키운다. 계속해서 체급을 높이며 속도감을 높이는 일렉 기타의 현란한 연주이거나, 솔로 파트로서 트랙 안에서 각인되는 것이 아닌 독립된 개체로 생명력을 지닌 채 연장되는 듯한 후반부의 흐름은 앞선 논의된 역동성을 기저로 둔다. 낙차를 경험하면 더 큰 낙차가 기다리고 있고 그 사실을 원동력으로 자체적인 움직임은 계속된다. 


  결국엔 모두를 하얗게 불살라 버리는 것처럼, 뮤직비디오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실리카겔 자신들의 역동성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었는지 명징한 답이 아니더라도 쉬이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과거의 자신들이 오버랩되는 연출을 통해 현재로부터 오히려 역행하는「Tik Tak Tok」의 정취는 자신들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기인하였는지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되었다. 그 정체성이 어딘가에 꼭 들이맞는 경우를 혹여 찾게 될 지라도(그럴리 만무하겠지만), 이들은 꾸준히 움직일 것이다. 거침없이 음악을 해야한다는 믿음 하나로. 그것이 여전히 실리카겔을 용감하게, 그리고 유의미하게 기억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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