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이상'부터 현실의 좋은 '사람'을 꿈꾸기까지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는 어렵다. 나 자신이 누군지도 잘 모르는데, 내가 좋아하는 ‘타인'을 몇 가지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니. 종종 소개팅을 해주겠다며 이상형을 물어보면 ‘나는 만나봐야 아는 타입'이라며 얼버무리곤 했다. 그래도 되돌이켜 보면 내가 이성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갖고 만났는지는 정리가 된다. 10대부터 20대, 30대 중반에 들어서기까지, 나의 이상형의 변천사를 소개한다.
10대 : 이 세상에는 없는 ‘이상'을 찾던 소녀
나의 10대는 연애와는 거리가 먼 시간이었다. 고등학생 때에는 주위의 귀엽고 아기자기한 커플을 봐도 내 관심사는 ‘대입'뿐이었다. 중학생 시절은 달랐다. 중학생 시절에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따라 좋아했다. 바로 전설 속의 그룹 ‘동방신기'. 그 당시는 크게 ‘동방신기'를 좋아하는 무리와 ‘SS501’을 좋아하는 무리로 나뉘었다. 나는 대세를 따라 동방신기 덕질을 했고 나도 대학에 가면 이런 남자와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꿈꿨다. (역시나 그런 일은 없었다.) 이미지 메이킹이 잔뜩 들어간 TV 속에서의 모습을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라 믿으며, 이 세상에는 없는 이성을 쫓던 티 없이 맑은 소녀였다. 하교 후 TV를 쳐다보며 헤벌레 웃던 내 모습이 그리워질 정도로 해맑음이 묻어나던 다시는 없을 시절.
20대 : 상상에서 현실로, 좋은 ‘남자'란 어떤 사람일까
20대에 들어와서 이상이 아닌 현실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때에는 여러 사람들을 처음 만나보며 크게 상처받고 데인 경험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20대의 나는 10대 때보다는 현실에 발을 붙였지만 되려 눈은 천장을 뚫고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남자라면 나를 공주처럼 대접해줘야 하고, 대학이나 직장은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하며, 운동도 해야 하고, 가끔은 해외여행도 나가야 했다. 이 모든 것이 나와는 접점이 없더라도 당연히 갖춰져야 하는 것들이었다. 20대의 사랑은 순수함이 가득 묻어난다고들 하는데, 나는 세속의 끝을 달렸다.
덕분에 20대에는 좋은 기억만큼이나 몹쓸 기억도 쌓였다. 인턴을 할 때 만나게 된 동기 오빠 A는 대학부터 회사, 키, 외모까지 두루 갖춘 사람이어서 지인으로 삼기 좋았다. 동기로 지내던 관계는 인턴이 종료될 때 즈음 모호한 관계로 바뀌었다.
하루종일 카톡과 통화를 하며 일상을 서로 공유했다. 이렇게 보면 당연히 썸이지만, 웃기게도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은 없었다. 당시 겹치는 지인들이 많아 무서웠던 나는 만남을 피했다. 그렇게 몇 달을 끌었을까, 나는 마침내 만남을 다짐했다. 20대 남녀가 매일을 공유하는데 굳이 참는 것은 어리석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A는 만나기로 한 전날 할머니 건강이 안 좋으시다며 약속을 파투냈다. 딱 이틀 후였다. A가 그날 소개팅했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된 것은.
이때 끊어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미련하게 ‘나도 곁을 안 내려주려 했으니 쌤쌤이다’ 생각하며 연락을 이어갔다. A 역시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가벼움의 끝이었다. 지인에게 보여주게 내 사진을 달라지를 않나 (이유도 가관이었다), 기껏 만나면 담배 연기를 힘들어하는 나를 앞에 두고 담배를 피우지를 않나. 나쁜 남자 흉내를 내고 싶어 하는 나쁜 ㅅㄲ였다.
이렇게 미련한 사람이 있을까. 나는 이후로도 약 반년 간 이런 관계를 이어왔다. 이때의 나는 A가 나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며 이 모든 것을 외면하고 있었다. A에게 여자친구가 생겨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을 때에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후로 나는 사람을 겁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 다가와도 ‘A 같은 사람도 나를 그렇게 대했는데,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날 좋아해 줄 리 없어'라며 물러나기 일쑤였다.
20대, ‘사람'을 볼 줄 모르고 스펙만으로 ‘남자'를 평가하던 나는 된통 당하고 혼자 20대의 후반을 마무리하기에 이르렀다.
30대 : 좋은 ‘사람'에 대한 갈증
30대에는 계속해서 고민을 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까. 좀 더 신중하게 사람을 만나야 하는 시기인 만큼 ‘남자'로서 이성을 보기보다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키와 외모, 학교, 직장, 집안을 보기보다는 그 사람의 성품을 보고자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사람인 이상 이 중 몇 가지는 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20대 때에는 성격이 후순위였다면 30대에 이르러서는 다른 조건들 보다도 성품을 가장 우선시해 보고 있다. 아직 30대의 1/3을 보내온 나는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2/3이나 남은 나의 30대는 조금 욕심을 내어 보겠다. 아직 놓지 못하는 감정인 ‘설렘'을, 그리고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인 ‘안락함'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