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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만 Jun 24. 2024

싸움의 기술?

백하는 유치원 때 이미 싸움을 연구했다.

"엄마, 싸움 그런 거 안 배워도 돼. 태권도 있잖아, (주먹 쥐고 앞지르기를 하며) 태. 권. 도. 이런 거! 근데 그런 거 안 배워도 나 자신만 잘 믿으면 싸움을 잘하게 되어 있어."

만 나이 일곱,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가  '나 자신만'이라고 하는 대목에선 손바닥을 가슴 위에 올리며 꾹꾹 눌러 담듯 말했다. 그만큼 진심이 느껴져 어안이 벙벙했다.


"어머! 백하는 그걸 어떻게 안 거야? 어른들도 잘 모르는걸?"

"그냥 생각하면 알게 돼"

"와! 정말 백하는 생각하는 힘이 대단하다."

"그거 유치원 때부터 안 거야. J 덕분이지"


J는 백하와 함께 유치원에 다녔던 친구인데, 초등학교는 다른 곳으로 입학하면서 요즘 볼 일이 없다. 하지만 백하는 아직도 유치원 때의 일들이 종종 떠오르나 보다. 백하의 말속엔 J와 Y가 자주 등장한다.

일 년 넘게 단짝으로 지냈던 백하와 Y, 그 사이에 J가 등장하면서 백하에겐 꽤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펼쳐졌다. J가 백하를 대놓고 무시하거나 나무라면서 Y와 친해지려 노력할 때마다 백하는 그런 장면들을 담아 계속 곱씹으며 싸움의 기술을 연구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유치원에서 욕도 잘하고 사나운 T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백하는 T가 자신의 스승이라고 했다. T가 가르쳤다기보다 백하가 T의 행동과 말을 유심히 보면서 '싸움은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T의 싸움 방식은 요즘 백하가 말하는 싸움의 기술과 사뭇 다른 걸 보니, 백하가 스승에게 배운 걸 응용했나 싶다.




#유치원 등원 준비 중인 백하


"나 오늘 정말 정말 특별한 옷을 입어야 해"

"오늘 무슨 날이야?"

"할로윈이잖아!"

"아!!! 그렇네, 할로윈! 그럼 이 옷은 어때? 이런 쉬폰 원피스, 특별하지?"

"아니, Y가 안 좋아할 것 같아."

"옹... 백하는?"

"...... Y는 싫어할걸?"

"음... 그럼 이건 어때? 반짝반짝! 정말 특별한데?"

"음... 검은색 이런 거여야 할 것 같아."

"왜 검은색?"

"그 영화 있잖아. 음... 막 손 돌아다니고 초능력 있고"

"아, 그 웬즈데이?"

"응! 거기서 주인공이 Y이고 난 그 친구야. 그래서 Y가 더 반짝이는 거 입고 난 음..."

"주인공은 누가 정했어? 같이 얘기했어?"

"Y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

"아, 그래? 음..."

"이것들은 Y가 싫어할 것 같아."

"백하는 어떤데? 역할을 그렇게 하자고 했어도 그건 Y가 시킨 거잖아. 백하가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리고 옷도 Y의 마음보다 백하 마음이 더 중요해. 백하가 입는 거잖아. 백하가 뭘 입을지는 백하가 결정할 수 있어. 백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야."

백하는 마음속에서 뭐가 건드려졌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후로 백하가 혼잣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는데 다소 신경질적인 대화 같았다. 깜짝 놀라 유심히 들어보다가 이런저런 상황을 두고 유추해 보니 이렇다.


자주 우는 친구가 있으면 계속 달래주고 잘해주다가 본인도 지쳤던 것이다. 삐지는 친구가 있으면 사과하고 기분 풀어주려고 노력하다가 본인이 계속 이래야 하는지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친구가 화를 내면 당황스러웠을 것이고, 나름 친구들에게 배려도 하고 양보도 하는데 그것이 계속 한쪽에서만 이루어진다든지 관계에 불균형이 지속되면서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런 감정이 뒤늦게서야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당시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혼자 풀어내는 백하.

'아뿔싸! 어쩜 이렇게 인간사 인생사는 아이나 어른이나 비슷할까.'


유치원 다닐 때 이런 경험과 감정을 경험하고 싸움을 잘하는 법을 나름 터득했다고 하니 짠하면서도 대견하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그 친구들을 안 본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백하는 과거를 회상하며 더 나은 싸움의 방식을 생각하더라. 점점 더 자신의 마음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자기 자신을 믿으면'이라니!

백하는 참 많은 걸 알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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