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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만 Jul 03. 2023

나의 '풍요의 세계'

나를 풍요로 이끄는 시간-공간-사람

 삶은 나를 어디에 두느냐의 선택에 달렸다.

 세상은 결핍의 세계와 풍요의 세계로 나뉜다고 한다. 결핍의 세계에선 나의 꿈을 끌어내리고 나의 의지를 주저앉히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너도 다를 바 없어."라는 시선이 가득하여 그들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하는 것 자체가 나를 소진시키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반면 풍요의 세계에서는 나의 꿈을 지지하고 도움을 주려는 손길이 있어 지극히 허황된 꿈이라고 할지언정 그 1퍼센트의 가능성을 더욱 큰 가치로 만드는 것에 조력하는 힘이 움직인다. 이런 곳에 나를 데려다 놓으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신비로운 힘을 경험하게 된다.

 결핍과 풍요의 세계를 오가며 좌절과 자괴감, 감격과 감사함의 반복적인 파도를 거치면서도 나의 시선은 늘 풍요의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무시를 느끼면서도 그에 굴하지 않으려 내내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 내게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나를 둘러싼 환경을 풍요로 채우는 것에 몰두했다. 그렇게 결핍의 세계가 따라오지 못할 만큼 풍요의 세계를 더욱더 크게 만들어가는 것을 택했고 그 안에서 가슴이 벅찰 만큼의 신비로움을 경험하고 있다.


 2019년도에 사회 혁신가들에게 수여하는 체인지메이커를 수상했을 때 나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뜻을 두고 시작했던 새로운 사업에 난항을 겪었고 악재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마치 이것이 지옥이 아닐까 하는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던 터였다. 그때 구원의 손길이 있었고 그 손길 덕분에 그간의 나의 노력을 인정하고 독려해 주는 체인지메이커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는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나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에 주변의 상황이 단번에 좋아지지도 않았고 다른 어딘가에선 나에 관한 배타적인 인식을 더욱 키워 그 어디에도 발 붙이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그 손길들에 나는 더욱 마음을 쏟으며 하루하루 견디려 안간힘을 썼다.

 그 후로도 4년여간 지난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몇 번이고 포기하려는 생각, 벗어나려 도망치는 선택도 했었다. 하지만 나를 빛으로 이끄는 어떤 힘, 그 자그마한 실마리를 꼭 쥐며 더듬더듬 나아가 지금 이곳에 있게 되었다. 지금 나는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은 채 묵묵히 그 자리에 있다. 아니, 하루하루 불안과 싸우며 꼼짝달싹 못했다고 생각했으나 결과적으로 나는 나의 자리에서 천천히 나의 세계를 더욱 단단하고 크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4년이 지나는 동안 나의 세계가 어떻게 커졌는지, 내가 지나온 점들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이번 연수를 통해 깨달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코로나로 인해 체인지메이커 부상이었던 해외연수가 미뤄졌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나 암스테르담과 파리로 연수를 가게 되었다. 애초에 미국이 유력한 후보지였지만 여러 이유로 네덜란드와 프랑스로 바뀌었다. 이런 변경된 여정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며칠 전만 해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바로 어제 소름 끼치도록 놀라운 우연을 알아차리면서 이는 우연이 아니라 마치 무언가의 계획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작년에 전주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다른 지역에서의 삶을 계획하고 떠났었다. 내가 먼저 가서 일에 적응하고 계획대로 잘 되면 가족 모두 이주를 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다시 쓰라린 경험을 하고 다시 전주로 되돌아와 오랜 기간 침잠하게 되었다. 내가 지향하는 세계의 정 반대편으로 몰아넣었다는 미안함에 전주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자신을 치유해야 했다. 뭔가 글을 쓰고 싶어도 글이 써지지 않아 그림을 그렸다. 글을 쓰면 부정적인 언어가 튀어나와 또 그것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아서 조용히 펜을 잡고 그림을 그렸고 정원과 텃밭을 가꾸고 책으로 헛헛함을 채우고 그간 무지했던 돈에 관해 공부를 하였고 주변의 감사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일상의 소중함을 마음 깊이 새기며 지냈다.

이처럼 가족들 품 안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말을 듣고 좋은 기운을 얻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 과정에서 반가운 일들도 종종 일어났다. 2018년에 처음 만나 인연을 쌓았던 하이브아레나의 최종진, 황혜경 님의 소개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한국에 방문한 스테판 가족을 만났다. 작년 7월, 우리 집의 사랑채와 같은 인봉집에서 최종진 님 가족과 스테판 님 가족, 그리고 체인지메이커 수상할 때 인연이 된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허성진 차장님이 아들과의 여행길에 인봉집에 들러주어 우리 가족까지 네 가족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모두 아이가 있는 집이라서 마당에 풀장을 만들어 아이들은 원 없이 물놀이를 하였고 부모들은 자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다음엔 꼭 암스테르담에서 다 같이 모이자고 웃으며 헤어졌다.

2022년 7월, 인봉집에서 즐거운 시간
2022년 7월, 인봉집에선 처음 만나는 아이들도 이처럼 신이 남
2022년 7월, 인봉집에서 헤어지면서

 그 후로 꼭 1년이 되는 시점에 해외연수 도시에 암스테르담이 있었고 우리가 방문하는 기관에 작년에 만났던 스테판이 일하고 있었으며, 스테판이 직접 우리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담당자라는 소식을 접했다. 작년에 함께 만났던 분들과 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외에도 이번 해외연수 여정 중 2017년도에 만났던 작가님을 파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최근 도시 관련 사안으로 인연을 맺게 된 분의 소개로 파리에서 도시 디자인을 공부하는 분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파리에서 만나는 두 분은 7월과 8월에 다시 전주에서 만나 뜻깊은 자리를 함께 하기로 하였다.

당초 계획했던 미국 여정이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이 아니라 3년 전에 연수를 가게 되는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더 감격적인 여정이 될 수 있었을까.


 늘 혹은 때때로 이러한 기가 막힌 우연과 지켜가야 할 인연을 만난다. 그때마다 감동과 감사, 경이로움을 느끼면서도 기록은 하지 못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나를 풍요의 세계로 이끄는 시간-공간-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처럼 과거의 점들이 미래에 어떻게 이어지고 확장되는지에 관한 신비로운 경험을 하며 풍요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세계엔 나의 기쁨에 함께 기뻐하고 나의 행운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는 나의 사람들이 있다.

나의 미래, 나의 '풍요의 세계'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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