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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만 Jul 04. 2023

안아주는 나무, 계수나무

나를 풍요의 세계로 이끄는 시간-공간-사람들의 이야기 2

봉봉한가의 봉끄럼틀에 1년생 계수나무를 심었다. 지금은 내 키보다 작지만 몇 년 지나면 훌쩍 자라서 내가 그랬듯이 계수나무의 동글동글한 그림자가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폭 담기길 희망한다.




몇 년 전 친정엄마는 서울 아산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으셨다. 다행히 수술이 아주 잘 되었다. 엄마의 대장암은 간까지 전이가 된 이후에 발견했지만 "두렵고 무서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다"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라서 그런지 모든 것이 잘 될 것같이 담담하고 평온한 느낌이었다.


전북대학병원에서 대장암 판정을 받고 아산병원으로 가 곧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암 판정에서 수술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안이 위급했기도 했지만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다. 그즈음 대구에서 신천지로 인한 코로나 팬데믹이 심각하게 된 상황이라 대구와 경북의 환자들을 서울에 있는 3차 상급종합병원에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엄마는 그들의 고통에 빚을 지는 마음이 들었다. 수술이 잘 되었으나 아주 조용하게 감사함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이후 주기적으로 아산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엄마와 동행했다. 아산병원에 갈 때면 꼭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아산병원 정원에서 마음의 평화를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정원 벤치에 앉아 있으면 높다란 계수나무의 동그란 하트처럼 보이는 잎사귀들이 햇빛을 받아 땅에 아른거리고 반짝거리는 그림자들이 좋았다. 그것은 꼭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빛나는 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항암치료 다음 날 한겨레 신문에 아산병원 정원을 설계한 정영선 조경가의 이야기가 대문짝만 하게 실린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처음 이 정원을 설계할 때 아산병원이 전국에서 죽음을 앞두고 오는 환자들이 많다는 것과 그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몰래 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원을 환자와 보호자가 위로를 받는 공간으로 설계했다는 내용을 보았다.

아... 내가 그 위로를 받고 있었다.

공간이 사람에게 이처럼 평생 잊지 못할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하여 훗날 나의 공간에 꼭 계수나무를 심으리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 계수나무의 동그랗고 다정한 잎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반짝이는 위로를 선사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동글동글 빛나는 나뭇잎 그림자.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에게 위로의 손짓을 하는 존재들이 참 많다.


봉봉한가는 참 힘들었던 공간이다. 공사를 시작한 지 며칠 만에 한옥 기둥 하나 내려앉은 것에 한옥 건물 전체가 뒤틀어졌다. 이에 모든 계획이 틀어졌고 이를 시작으로 돈과 사람에 시달리는 일이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그야말로 본래의 계획대로 된 것이 어느 것 하나 없었고 힘들기만 한 그곳을 한때는 포기하려고도 했었다. 정말 꼴도 보기 싫어 그 앞을 지날 때 고개를 반대로 돌려 걷기도 했었다.

그곳은 꼭 세상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듯 굴었고, 굴복하지 않으려 방법을 찾고 체념하지 않으려 용을 쓰다가도 나자빠지기를 여러 번 하고 나니 어느 순간 '순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회오리같이 몰아쳤던 시간이 지나가자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힘들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은 나의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일이라서 그랬겠다고.

남들에게 실패를 보이기 싫어서 더 몸서리치게 싫었던 것이라고.

그래서 나를 안아주는 법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채근하며 그 시간을 버티려고 애썼던 것이라고.

결국 여러 해가 지나고 강풍처럼 몰아치던 공포가 걷히자 공간에 관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공간이 내게 와준 것에 감사하게 되었고, 나의 뜻과 꿈이 꼭 내게서 완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해방이 되었다.

그러자 그곳에 나무를 심고 싶어졌다. 잠시 잊고 있었던 땅의 기운도 다시금 느끼고 싶어졌다.

이때 엄마와 서로를 의지하며 오고 갔던 병원의 정원, 계수나무가 떠올랐다.

잊고 있었던 꿈이 떠올랐다.

그날 그 정원에서의 따뜻함과 감사함을 느꼈던 바로 그 마음을 불러들이고 싶다.


봉봉한가는 우리 집 다음으로 의지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곳에 계수나무가 자라고 있다. 처음 계획대로 되었다면 마당에 건물이 들어서서 계수나무를 심을 마땅한 곳도 없었을 것이다. 봉봉한가 정원은 재개발로 사라졌지만, 한때 사람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정원의 나무와 화초, 흙을 몇 달간 손수 퍼 나른 곳이다. 그곳엔 동네 아이들이 친근하게 올 수 있는 봉끄럼틀도 있다.

많은 것들에 '다행이다'가 깃들어 있다.


봉봉한가 계수나무야,

아직 넌 작지만 곧 크게 자라서 사람들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나무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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