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 코인세탁, 혼고기
연말에 마신 와인이 맛있어서 오랜만에 와인에 꽂힘. 그러나 위에 빵꾸난 자는 폭음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참다참다 맛있게 한 잔 마신다. 이 날도 하루종일 참다가 못 견디고 새벽에 편의점서 한 병 사 왔다. 마트보다는 쪼끔 비싸지만 이 정도면 뭐. 쇼핑백도 없이 그냥 덜렁덜렁 손에 들고 걸어오는데 뭐랄까 프랑스 영화에 나오는 술 주정뱅이 같더라. 병나발이라도 불었어야 하나. 안주도 없이 새우깡에 마셔도 맛있더라. 역시 혼술은 예쁘고 맛있는 술을 마셔야 우울해지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코인 세탁소에 이불을 빨러 간다. 집에도 건조기가 있지만 아무래도 겨울이불은 대형 세탁기랑 건조기로 말려야 다 마르니까. 우리 동네에는 코인 세탁소가 한 군데밖에 없어서 시간을 잘못 잡으면 대기가 엄청나다. 이날도 퇴근길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갔는데 고 사이에 교회 관계자들이 세탁기를 점거하고 있었다. 그래도 매너 있으신 분들이라 자기네들 많다고 먼저 하라고 양보해 줘서 그나마 덜 기다렸다.
세탁기 돌아가는 걸 보고 있으면 잡생각이 사라져서 좋다. 무한 돌돌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사람 없는 시간에 가면 괜히 횡재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다음 달에는 제발 아무도 없게 해 주세요.
혼밥의 최고 레벨이라는 혼고기를 그동안은 하지 못했었다. 민망해서가 아니다. (사람 바글거리는 주말 빕스도 혼밥 하는 나) 3인분이 많아서도 아니다. 고기를 못 구워서다. 우리 집은 고기 굽기나 뚝배기 나르기처럼 뜨겁고 위험한 건 전부 아빠가 한다. 아빠가 그렇게 버릇을 들여놨다. 그래서 내 손으로 고기를 구워 본 적이 없다. 집에서 혼자 먹을 때는 가스레인지에 달린 생선 그릴이나 오븐에 굽는다. 내가 집게를 드는 순간 그 고기는 못 먹는 고기가 된다. 그래서 그동안은 불판 고기가 먹고 싶어도 친구들 만날 때만 기다렸는데, 최근에 구워주는 고깃집의 존재를 알게 됐다. 꼭 먹으러 가야지 벼르다 드디어 갔다. 평일 오전 11시부터 혼자 고기 먹는 사람 나예요 나. 고기 구워주는 직원분 최고. 역시 뭐든 전문가가 해야 한다. 단 하나의 허튼 손짓 없이 자글자글 익힌 고기를 앞접시에 부지런히 날라 주시는 그 손길. 먹방 보면서 먹는 고기 정말 맛있더라. 진짜 한 점도 안 남기고 싹 다 먹었다. 하나 아쉬운 건 게장 비빔국수 먹고 싶었는데 고기 3인분에 탄수화물까지는 무리였다ㅠ 다음엔 고기를 남기는 한이 있더라도 꼭 먹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