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비싼 청소기, 고양이, 치과, 꽃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와서 잠을 못 자고 엉엉 울었다. 처음에는 머릿속에 딱따구리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누가 내 머리를 빨래 짜듯 빨끈 쥐어짜는 거다. 위궤양 때문에 진통제를 최대한 참고 있어서 약도 못 먹고 질질 짜면서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수업도 바꿔가면서까지 병원엘 갔는데 스트레스성이래. 무슨 개복치도 아니고 툭하면 스트레스성 질환이야. 진통제랑 진정제 때려 넣고 주말 내내 캄캄한 방에서 잠만 잤더니 그나마 좀 났더라. 근데 그럼 뭐 하나. 스트레스 원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에에에에에에에에속 아플 텐데. 인간 정말 싫다 진심 싫다 토하고 싶다.
청소기를 이렇게 비싼 돈 주고 살 날이 있을 줄이야. 청소할 때마다 짜증에 짜증을 내다 결국엔 으아아아아아아악!!!!!!!!! 소리 지르면서 할부 긁었다. 청소기를 청소해야 할 때마다 귀찮음에 몸서리를 쳤는데 먼지통 자동 비움이라니, 신세계구나. 젊을 땐 젊은 기력으로 무릎 꿇고 손걸레질도 했는데 이제는 그냥 돈 쓰고 편하게 사는 게 최고라는 걸 깨달았다.
비싼 청소기를 사고는 괜히 찔려서 엄마한테 나 미쳐 가지고 70짜리 청소기 샀어- 했더니 ‘잘했다. 문명의 이기는 누리고 살아야지 ‘라는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가 나보다 더 신녀성이었네.
고양이는 왜 귀여울까? 아무리 험악한 프로필을 가진 애도 그냥 귀엽다.
요즘 운동량이 최악이라 점심때 일부러 근처 공원을 산책한다. 갈 때마다 산책 나온 강아지들 보면서 힐링하는데 오늘은 얘 때문에 육성으로 꺄악- 소리 질렀다. 세상에 뭐 에런 귀여운 생명체가 다 있을까. 10시 10분 눈매에 ㅅ자 입매, 저 완벽한 삼각귀. 거기다 어찌나 야무지게 도르르 말고 있는지 두드려 맞을 걸 알면서도 저 앞발을 빼보고 싶은 욕망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지 예쁜 걸 아는지 한참이나 사진을 찍어도 꼼짝도 않는다. 그저 꿈뻑꿈뻑 미천한 인간을 치켜볼 뿐.
3월에만 치과를 두 번 갔다. 사과를 먹는데 갑자기 앞니가 헐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싸-한 기분을 느끼며 혀로 더듬어보니 유지장치가 똑 떨어져서 너덜거렸다. 아, 서울까지 언제가.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예약하려는데 교정치과가 인테리어 공사로 한 달 휴진이라고. 타 치과에서는 안 붙여주는 경우가 많대서 근처 치과 검색하고 리뷰 보고 전화해 봤더니 금액이 비싼데 괜찮으시겠어요? 하더니 오란다. 간 김에 스케일링받고 검진도 했는데 얼마 전부터 근질근질하던 어금니에 충치가. 하아- 어금니니까 레진 안될 거고 보험도 안 되니까 꼼짝없이 30은 나가겠구나. 그래도 가만 놔두면 돈 더 들 거 아니까 당장 다음 주 예약을 잡았다. 아슬아슬하게 신경 근처까지 썩어 있어서 더 늦었으면 신경치료할 뻔했다. 잊지 말자 치실, 다시 보자 어금니.
매주 꽃을 산다. 내 인생의 소소한 사치랄까. 예전에는 꽃 시장에 직접 갔었는데 버릴 것도 많고 양도 많아서 요즘엔 그냥 근처 꽃집에서 조금씩 사 온다. 꽃이 있어봤자 너만 보는데 안 아깝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나만이라도 즐거운 게 좋아서 꽃을 산다. 그리고 꽃을 사면 조금 부지런해진다. 매일 물을 갈고 시든 꽃잎을 정리한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잘 드는 창가에 두고 신선한 공기를 쐬어 주고 자기 전에 화장대 위에 들여놓으면 스탠드 불빛에 은은히 비친 꽃을 보며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