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록스는 왜 다시 유행하게 됐을까?

못생김의 쿨함에 대하여

by 유정

2000년대 초반, 크록스는 그저 ‘편한 신발’이었다. 병원 간호사, 주방장, 아웃도어 매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이 구멍 난 고무 샌들은 ‘스타일’보다는 ‘기능’의 언어에 가까웠다. 못생겼지만 가볍고, 지저분해도 씻으면 되고, 말도 안 되는 색깔 조합에도 묘하게 존재감이 있었다. 하지만 한동안 ‘패션 테러리스트’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크록스가, 2020년대 들어 갑자기 다시 힙해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시 부는 못생김의 미학

크록스의 ‘재유행’은 단순한 레트로 열풍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문화적 전환이 있다. 우리는 지금 ‘아름다움’의 기준이 바뀌는 시대를 살고 있다. 단정하고 완벽한 룩보다는 어색하고 불균형한 감각, 즉 **‘못생김의 해방’**이 새로운 미학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 중심에 크록스가 있다. 크록스는 의도적으로 예쁘지 않다. 둥글고 투박한 실루엣, 무채색이나 형광처럼 극단적인 컬러감, 그리고 구멍이라는 조형 언어는 기존 신발 디자인과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그 ‘다름’이 지금의 패션 생태계에서는 오히려 ‘쿨함’으로 해석된다.


Y2K와 놀이문화의 귀환

크록스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다. ‘놀이’의 도구이기도 하다.
‘지비츠(Gibbitz)’라고 불리는 작은 참 장식들은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자, 지금 세대에게는 ‘꾸미기’의 즐거움을 상징한다. 스마트폰 케이스에 스티커를 붙이고, 텀블러에 키링을 다는 것처럼, 신발에도 캐릭터나 이모지, 음식 모양의 참을 달아 ‘나만의 크록스’를 만든다.

이는 과거 Y2K 키치 스타일과도 연결된다. 복고, 유치함, 과장이 미학이 되는 시대. 크록스는 그러한 감각을 정확히 겨냥한 아이템이다. 특히 Z세대에게는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 나답게 입을래”라는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상징이 됐다.


럭셔리 브랜드도 반응하다

이 흐름은 패션 하이엔드 씬에서도 포착된다. 발렌시아가는 2021년, 크록스와 협업한 ‘플랫폼 크록스’를 선보이며 패션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10cm가 넘는 굽에 핀 장식까지 더한 이 신발은 “못생긴 걸 더 못생기게 만든” 대표 사례로 회자됐지만, 동시에 하이패션의 규칙을 완전히 뒤흔든 상징물로 평가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프라이드 컬렉션, 콜라보 에디션, 마블과의 IP 협업 등 크록스는 ‘브랜드를 빌려오는 브랜드’가 아니라, 이제는 ‘브랜드들이 찾는 브랜드’가 되었다. 이는 기존 패션 문법에서는 좀처럼 상상할 수 없었던 전환이다.


편안함이라는 진심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크록스가 ‘편안하다’는 사실이 여전히 강력한 매력이라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우리는 더 이상 멋내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다. 운동화와 샌들, 슬리퍼의 경계가 허물어졌고, 애슬레저와 고프코어가 유행하면서 패션의 중심 키워드는 ‘기능성과 진정성’이 되었다. 크록스는 딱 그 지점에서 존재감을 발휘한다.

못생겼지만 편하다. 우습지만 솔직하다. 크록스는 '예쁘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의 자유를 제시한다. 지금의 유행은 단순히 과거의 재탕이 아니다. ‘예쁘지 않은 것’을 쿨하게 여길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의 등장이다.


못생겨도 괜찮아, 아니 오히려 좋아

지금 크록스를 신는다는 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그건 어느 정도의 ‘태도’다.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남이 보기엔 촌스러워도 내겐 즐거운 스타일을 택하는 취향, 그리고 유행을 넘어서 나를 중심에 두는 시선. 크록스는 그 모든 것을 발끝에서 이야기한다.

못생김은 더 이상 단점이 아니다.


그건, 지금 시대의 또 다른 패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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