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룩이 쿨해진 시대
한때 '오피스룩'이라는 단어는 다소 낡고 진부하게 들렸다. 회색 수트, 흰 셔츠, 블랙 펌프스. 직장 생활의 상징이자 개성을 억누르는 제복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2020년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메종 마르지엘라, 발렌시아가, 심지어 미우미우까지 — 런웨이 위를 걷는 모델들은 하나같이 어딘가로 출근 중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왜 지금 ‘워킹 걸’처럼 입는 것이 가장 쿨한 일이 된 걸까?
현실과 판타지 사이, ‘출근룩’의 반격
패션은 시대의 감정을 입는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감정은 꽤 복잡하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며, 한동안 옷차림은 ‘편안함’에 집중됐다. 후디, 조거팬츠, 크롭탑이 유행했고, 누구도 딱딱한 정장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느슨함의 시대가 끝나자 다시 사람들은 구조적인 옷, 날카로운 실루엣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마치 현실을 회피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나 일할 거야’라고 외치는 듯한 태도. 루이비통이 선보인 셔츠 드레스, 더로우의 절제된 팬츠 수트, 그리고 틱톡 속 수많은 ‘오피스코어’ 스타일링은 바로 그 심리의 반영이다.
1980년대 파워우먼의 귀환
지금의 워킹걸 룩에는 1980년대의 향수가 짙게 배어 있다. 당시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직장 문화 속에서 ‘존재감을 증명’해야 했다. 그 수단 중 하나가 바로 패션이었다. 과장된 어깨 패드, 날카로운 테일러링, 넓은 팬츠와 핀 힐. ‘Power Dressing’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런데 지금의 오피스룩은 그 시대의 복제품이 아니다. 오히려 역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장난친다. 셔츠는 일부러 한 쪽만 넣어 입고, 수트 재킷은 미니스커트 위에 입는다. 미우미우는 셔츠 밑단을 과감히 잘라냈고, 톰 브라운은 ‘출근복’에 가깝던 그레이 수트를 미니멀한 유니폼으로 승화시켰다.
이 시대의 오피스룩은 더 이상 복종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일하고, 벌고, 움직이는 여성을 상징한다.
단순히 '회사에 다닌다'가 아니라 '나는 일하는 사람'이라는 선언.
틱톡과 넷플릭스가 만든 ‘워킹 룩 판타지’
SNS는 현실을 비틀고, 재현하며, 때로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최근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한 ‘That Girl’ 트렌드도 그 중 하나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아보카도 토스트를 먹고, 하이힐을 신고 업무에 나서는 그녀들. 현실의 직장인이라기보다 ‘출근하는 여자’라는 이미지 자체에 매혹된다.
이런 흐름은 넷플릭스 드라마에서도 포착된다. 『에밀리 인 파리』의 과장된 출근 룩, 『수퍼펌』 속 뉴욕 PR 여성이 입은 캐주얼 시크룩은 모두 현실과는 살짝 어긋난 ‘일하는 여자 판타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허구성이 오히려 해방감을 준다. 현실의 여성들이 ‘출근’에 대한 피로를, 스타일이라는 방법으로 비틀기 시작한 것이다.
일한다는 것 = 입는다는 것
결국 지금의 ‘오피스코어’ 유행은 단순히 멋있어 보이고 싶다는 욕망만은 아니다. 이 룩에는 자기 결정권, 능력, 태도 같은 가치가 묻어 있다. 더 이상 회사가 요구하는 유니폼을 입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출근복을 입는다는 메시지다.
일한다는 건, 곧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존재는 매일 아침 ‘무엇을 입을까’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