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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사람이다 Nov 07. 2024

배려가 습관이 된 나에게

다 돌아오는 거니까 안심해도 된다고 말한다.

2년 넘게 가까운 이웃에게 뒤통수에 대고 인사했다.

그녀는 나처럼 내향인인 게 분명하다.라고 믿고 싶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순간 그녀는 자세를 틀고 고개를 돌린다.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존중하지만, 나도 모르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나오는 인사말에 굳이 내 입을 틀어막을 이유도 없다.

어느 날, 그녀의 딸이 손이 다쳐 깁스를 한 상태였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어머, 애기 손 다쳤네?"

그러자 그녀는 살짝 당황한 듯 보이더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내게 처음으로 고개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아, 네~ㅎㅎ 올라가세요~^^"

그녀에겐 나름의 커다란 용기일 수도 있다.

"네~ㅎㅎ 들어가세요~^^"

어쩌면, 나보다 더 소극적인 사람도 있다는 것이 때로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편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나에게도 오지랖이라는 게 존재했다.

같은 동네에서 오며 가며 눈만 마주쳤던 그녀였다.

인사도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가듯 무심히 지나가는 사이었다.

하루는 그녀가 머리를 자르고 염색을 했다.

눈에 확 띄었다.

탈색한 긴 머리였던 그녀가 단발로 자르고 까맣게 염색했는데 모를 수가 없지 않나,

횡단보도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녀에게 나도 모르게 또 말이 새어 나왔다.

"머리 되게 잘 어울리세요~^^;;"

그녀는 당황했지만 끝내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 어떻게 아셨어요? 저도 가끔 마주쳐서 여기 사시는 분이라고 알고는 있었는데^^;"

"노란 긴 머리가 눈에 틔었었는데 이젠 짧아지고 까매졌잖아요^^; 모를 수가 없지요~~ 훨씬 잘 어울려요^^;"

그렇게 인사를 트게 된 순간도 있었다.

어찌 보면 그녀는 나의 관심에 무시해도 됐었지만 마음 상하지 않게 나를 배려했다.

칭찬이라는 건 어쩌면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심리적인 만족감을 높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참 쉬운데 다들 살기 바빠서인지 여유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게 안타깝다.

내가 듣고 싶은 말, 내가 보고 싶은 표정, 내가 보고 싶은 행동으로 상대에게 먼저 신뢰를 주는 것이 안 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속상하기도 하다.








하긴, 내가 그렇게 선한 행동을 보여도 가끔 통하는 상대가 있긴 하다.

나는 늘 상대의 눈빛, 표정, 말투, 행동 등 모두 관찰하는 습관 아닌 습관이 있다.

그러나 상대가 기분이 안 좋아서 나오는 태도 외에 그 사람만의 버릇이 드러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고칠 수 있을까, 그저 마음 깊이 단단하지 못 한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고 마음을 감추고 표정관리를 하며 애쓰는 수밖에 없다.

상대의 태도에 따라 내가 나에게 피로를, 불평을, 불안함을 줄 때면 한숨이 나를 집어삼킨다.

가끔 이렇게 세심한 성격이 나의 감정을 격화시키고 한없이 우울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 자신에게 경각심을 주며 자극시킨다.

"절대 부정적인 사고로 키우지 말자!"

"배려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더 이상 나의 나약한 모습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내가 단단해져야 내 자식도 단단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느끼는,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 노력한다.

침착하자, 잠시 쉬자, 속은 쿵쾅쿵쾅 난리 나지만 겉으로는 차분하게, 거울이라도 앞에 있으면 금세 표정관리가 가능해지는 걸 보면 나도 나름 잘하고 있다.








가만히 듣다 보면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정작 나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있는 것인지, 혹은 진짜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인지, 아예 집중을 못 하는 것인지 등등 헷갈리게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굉장히 난감하다.

배려라고 포장하지만 이상하게 나만 듣고 있는 것이 묘한 분위기로 돌아온다.

나의 의견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결국 대화다운 대화가 없다. 소통 자체가 안 되는 경우로 끝난다.

여기서 상대의 말을 일부러 끊어가며 일방적으로, 독단적인 생각을 전하게 되면 불필요한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결국 침묵을 선택한다.

아무런 소득 없이, 들어주다 끝나는 일시적인 관계가 되면서 결이 맞지 않는다로 결론 내며 무언의 거리 두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나 예외도 있다.

수개월이 지나고 그들은 나를 다시 찾는다.

신기하게도 듣는 태도가 달라져 있다.

그렇다면 나도 기회다.

신나게 이야기하고 신나게 들어주고, 이제야 주거니 받거니가 된다.

결국 관계라는 것도, 상대에게도, 듣는 자세와 마음 말고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스치고 지나갈 사람들에게 표정이라도 펴보자.

첫인상이라는 게 가장 기억에 오래 남듯이 인연이라는 게 언제, 어느 시점에서 닿을지 모른다.

나는 오늘도 앉은자리에서 표정을 풀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글을 쓴다.

지금 카페에 앉아있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나는 그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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