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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사람이다 Dec 05. 2024

해장도 관심도 필요한 신랑

오랜만에 함께한 아침 식사

회식을 한다던 신랑, 평소에 회식을 해도 11시 이전에 들어오던 사람인데, 늦는다.

전화도 문자도 답장도 없다.

예감이 좋지 않다.

기다리다가 잠이 든 순간, 벨 소리가 울리고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혹시 집 앞으로 나와주실 수 있나요?"

"네~ 지금 나갈게요~!"

예감이 좋지 않더니, 우리 신랑이 취했구나!

1년에 두세 번 가는 회식자리, 술도, 술자리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취했다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승진 시기인데 설마.






택시가 도착하고 신랑은 말없이 몸만 겨우 움직일 수 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물어보고 싶지만 말을 아끼고, 집까지 헉헉거리며 겨우 부축하고 올라와 눕히고 재웠다.

6시 알람이 울리고 신랑을 깨우긴 했지만 걱정되어 하루 연차를 쓰라고 권했다.

평소라면 절대 안 쓰는 사람이 오전 반차를 쓴다.

힘들긴 힘든가 보다.

아, 진짜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또 말을 아끼고 재웠다.

아이와 함께 등교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아이가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확인하고는 곧장 해장이 될만한 식당을 검색한다.

이른 아침 문 연 식당은 설렁탕집뿐이다.

"2인분 포장이요~!"






집으로 오자마자 냄비에 팔팔 끓여 한 그릇 담아낸다.

그래, 함께 먹는 얼마만의 아침 식사야.

아침을 잘 안 먹는 나도 한 그릇 담아 겸상하기로 한다.

"오빠~ 해장해~!"

조용히 일어나는 신랑, 우리 신랑이 제일 무서운 순간이다.

평소에도 농담은 없고 진중한 성격에 차분한 사람인데 술 마셔도 주사가 없다.

결혼 10년 차로 술 취해서 들어온 경우는 오늘로 세 번째다.

조용히 아무 말도 없이 스르륵 누워 미동도 없이 자고, 스르륵 일어나 아무 말 없이 씻는다.

늘 코 고는 소리가 백색 소음으로 느껴지지만 술에 취할 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불안해서 잠도 못 자고 신랑이 숨 쉬는지 확인한다.

오전 반차로 인해 여유가 있으므로 식탁에 바로 앉는 신랑, 말 한마디 내뱉는 순간 긴장이 조금은 풀린다.

"아.. 죽겠다."

"어제 얼마나 마신 거야?"

"얼마 안 마셨어~ 왜 필름이 끊겼는지 모르겠어."

"일단 국물부터 따듯할 때 먹어~!"






숙취가 있긴 한가보다.

밥은 못 먹고 국물만 조금씩 삼켜내는 신랑, 평소보다 더 조용한 분위기, 회식 자리에서 승진 이야기가 나왔을지 물어보고 싶지만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

가장 편해야 할 사람이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다시 조용히 말을 아끼고 술은 신랑이 마셨지만 내가 해장하듯이 다진 양념 잔뜩 풀어 얼큰하게, 야무지게 먹는다.

적막한 분위기를 깨고 신랑이 말한다.

"인사처장님께서 어제 승진 얘기 슬쩍하셨어."

그래, 알지. 나도 촉은 있다. 빨리 말해라.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밥에 김치 올려 한 입 크게 넣으며 말을 이어간다.

"웅, 뭐라고 하셨어?"

"걱정하지 말래, 내가 0순위래."

"오~! 그럼 승진 발표는?"

"아마 다음 주엔 승진 예정자, 그다음 주엔 확정자 공지 올라오지 않을까 싶어."

우리에겐 정말 다행이고 좋은 일이지만 신랑의 입장은 난처해질 상황이다.

20년 만년 대리님도 수두룩 하고, 가장 친하게 지내는 직장 동료 역시 공채 출신도 아닌 5년 차 대리, 육아휴직을 썼던 앞 기수 선배 등 모두 줄지어 승진 시기다.






사실 작년에도 0순위였으나 기재부 승인에 따라 각 처마다 1명만 올라갈 수 있었고, 당시 같은 팀에 5년 차 대리님이 계셔서 새로 오신 사장님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었다.

그리고는 결국 아쉽게 오르지 못했다.

올해는 될 것이라는 믿음도 확신도 있고 모두가 응원하고 있지만 아직은 모른다.

그래도 인사팀으로 옮기고 인사처장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제 긴장이 풀렸었나 보다~! 필름이 끊기다니!"

"그런가 봐. 이번에 좀 다른 건 작년엔 가산 점수가 간당간당했는데 올해 계산해 보니까 내가 월등히 높아, 그런데 또 모르지."

"아니, 이번엔 분명히 될 거야. 걱정 마~^^"

웃으며 될 수 있다고 기운을 넣어주자 분위기가 바뀌고 신랑은 말이 많아진다.

그래, 되든 안 되든 운명이니 당장 분위기는 살려야 한다.






식탁을 정리하는 사이 신랑이 출근 준비를 한다.

어제도 잔뜩 구워놓은 쿠키를 주섬주섬 쇼핑백에 담아 신랑에게 출근길에 가져가라고 했다.

"오빠네 회사 사옥 커피 저렴한잖엉? 이따 조금 일찍 출발해서 센스 있게 커피 사들고 올라가. 회사 식구들하고 같이 나눠 먹어~!"

"응, 그래야겠다. 고마워~!"

신랑이 나가고 나서야 나도 긴장이 풀린다.

오랜만에 가져본 아침 겸상이 굉장히 낯설고 무거운 느낌의 피로로 다가왔던 걸로 보면, 신랑이 그동안 얼마나 걱정을 하고 신경을 썼는지, 그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진 것으로 보아 신랑에게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 내지 않던 사람이라 늘 묵묵히 그 자리에 있는, 뿌리 깊은 나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신랑도 역시 사람이었다.

우리 가정의 화목과 신랑의 사회생활도 순탄하길 바라며 내조에 더욱 신경 써야겠다.

소중한 사람, 가까운 나의 사람부터 관심 갖고 들여다보는 지혜를 가져보기로 다짐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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