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자화상'은 작품이라고 하고, 스마트폰은 상품이라 한다. 이는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얼마의 비용을 들였는지와는 관계가 없다.
상품과 작품을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유일한지, 혹은 대량 생산이 가능한지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책은 어떠한가. 당연히 상품인데, 나는 출판편집 일을 시작하고서도 한동안 이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비단 나만 버리지 못한 게 아닌 듯했다. 여타 편집자를 위한 강의나 출판 마케터들의 강의를 들어보면, 대부분 가장 먼저 "책은 상품입니다."라는 것을 인지시킨다.
책을 한 권 만들어볼 때까지는 몰랐다. 왜 책이 상품인 것을 알아야 하는지, 왜 너도나도 그걸 인지시키려고 하는지 말이다. 어느새 내 손으로 만든 책이 쌓이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다. 출판업도 사업이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책이 작품이기만 하면 '비용'을 고려하지 않게 된다. 이는 결국 내 책의 수명과도 연결된다. 오래도록,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좋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꿈으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두는 것과 다르지 않다.
원고를 보기 좋게 다듬고, 튼튼하게 엮어서 하나의 완성된 물성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책인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자. 책은 개정증보판도 있고, 개정판도 있다는 것을. 너무 힘주어 만들기만 하면, 오히려 독자들의 손에 닿지 못하고 창고에서 먼지옷을 입기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왕이면 작품 취급 당하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공부하고 고민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