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퇴근 후에 운동을 합니다.](6)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

by 전창훈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대학 시절 함께 몰려다니던 녀석이었는데, 임용고시에서 낙방한 후 연락이 끊겼다가 4년 만에 갑자기 연락이 왔다.

퇴근을 하려 짐을 챙기고 컴퓨터를 끌 무렵, 핸드폰 화면에 뜬 반가운 이름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대낮부터 친구의 목소리에는 취기가 가득했다. 그리 놀라울 것도 없었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워낙 술을 좋아하여 방에 2L짜리 페트병으로 소주를 구비하고 다니던 친구였으니 말이다.

그는 잔뜩 취한 목소리로 나에게 안부를 전했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왜 그동안 연락이 없었냐.


상투적인 인사가 오갔고, 우리는 그동안의 시간을 물으며 4년의 공백을 메웠다.

그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친구는 임용고시에서 고배를 마시고 재수를 선택했다.

수능에서도 한 번 미끄러진 후 재수를 했으니 큰 부담은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임용고시 재수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더 이상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 어려워 집을 나와 자취를 시작하니 생활비가 부족해 기간제 교사를 하니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고,

성인이 되어 유흥의 달콤함을 알아버리니 눈에 술이 아른거려 집중이 될 리가 없고,

무엇보다 다른 동기들은 먼저 합격하여 멋지게 교사로 살고 있는데 혼자만 뒤처지는 것 같아 도저히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친구는 재수에도 실패하고 더 이상 군대를 미룰 수 없어 입대를 선택했다고 한다.

원래는 재수에서 실패한 이후 연락을 하려 했으나, 당시 내가 군에 입대하여 훈련소에 있던 때라 연락을 못했다고 한다.

인터넷 편지라도 보내지, 야박한 녀석.

아무튼 그는 내 뒤를 이어 군대에 입대하고 바쁜 생활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나와 멀어졌다.

그러다 전역 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내 이야기가 나와 문득 그리워져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가 보고 싶었다.

매일 붙어 다니며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고 함께 자취방이나 기숙사에 널브러져 잠에 드는, 말 그대로 가족보다 더 자주 보는 친구였으니 그의 안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하지만 그만큼 친구의 상황을 너무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기에 굳이 연락을 먼저 건네지는 않았다.

언젠가 마음이 추스러지고, 현재의 아픔이 아물어 고목나무껍질처럼 단단하고 까슬한 추억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그는 까치처럼 반갑게 돌아왔다.


친구는 요즘 다시 공부를 한다고 했다.

군대에서 말뚝을 박을까도 생각은 했지만, 아무래도 지금까지 노력한 것이 아까워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합격할 수 있는지를, 어떻게 해야 끝에 가서 지치지 않을 수 있는지를.

그래서 이야기해 주었다. 나도 모른다고.


우리는 항상 끝에 가면 지치기 마련이다.

모든 시험에서 끝이 가까워짐을 인식하는 순간, 몸에 힘이 빠지고 무기력해지며 마음속에는 초조함만이 가득해진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정해진 운동량을 다 수행하려 하다가도 끝에 가면 무게를 줄이고, 횟수를 조절하며 스스로와 타협한다.

이만하면 됐어, 충분히 노력했어, 하고 말이다.

나도 수많은 시험을 경험하며 그러한 과정을 거쳤고, 매일 운동을 하며 내 안에서 속삭이는 연약한 부분과 타협점을 찾기에 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끝에 가서 지치지 않을 수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끝이 언제인지를 인식하는 순간 스스로 한계를 정한다는 것이다.

한계는 한자로 한정할 한(限)에 경계 계(界)를 쓴다.

직역하자면 정해놓은 경계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한계라는 말 안에는 누가 정했는지 모를, 대개의 경우 본인이 정해놓은 넘을 수 없는 경계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스스로 정한 한계에 만족하지 말고 이를 과감하게 부숴라!'라는 흔해빠진 열정론을 펼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정한 경계를 과도하게 인식하며 살아간다.


몸과 정신의 유기적인 관계가 어찌나 경이로운지, 우리가 경계를 정하고 그것이 한계점임을 인식하는 순간 긴장이 풀리고 몸에 부하가 걸린다.

부하가 걸린 몸은 더 이상 힘을 내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런 육체 앞에서 정신은 너무나도 무기력해진다.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지만 몸이 받쳐주지 않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위에서 말했듯이 나도 모른다.

의지가 강한 사람은 한계를 극복할 것이고, 애초에 체력이 좋아 한계점이 높은 사람은 별 무리 없이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그리고 친구처럼 극히 평범한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글쎄? 그냥 하는 거지 뭐, 아무 생각 안 하고 꾸역꾸역. 밥 먹고 씻고 화장실 가는 거랑 같다고 생각해.


전화를 끊고 나니 과연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현실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비가 와서 쑤시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습관처럼 운동을 하러 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치열하게 고뇌하고 고민하며 사는 삶은 너무나 훌륭하고 멋진 삶이지만, 누구나 철학자처럼 세계와 나에 대해 고민하며 살 수는 없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습관의 반향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래도 겁없이 비 내리는 날 하얀 운동화를 신지는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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